도로 건설·송전탑·골프장 공사로 신음하는 가야산에서 천막농성하는 스님들
▣ 가야산=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충남 가야산은 할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온화한 산이다. 1천 년의 세월을 버텨온 개심사가 있고 일락사도 있다.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간 폐사지도 많다. 그중에는 보원사지처럼 현재 발굴되고 있는 절도 있지만, 그저 바람이 전하는 말 속에서 문득 여기였겠구나 느끼게 되는 터도 있다. 백제시대에는 이 깊은 산에 108곳의 절이 있었다 하니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사진설명: 선광 스님은 개심사 뒤 산 중턱에 보현선원을 지어 25년간 경허의 선풍을 되살리는 일에 매진해왔다. 그는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 스님(서울 화계사 주지)과는 예산 덕숭산 수덕사에서 동자승 때부터 함께 뒹군 도반이다. 그럼에도 수경 스님이 선방을 나가 환경운동에 나서자, “제발 속히 선방으로 돌아오라”고 채근하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가 “억장이 무너진다”며 가슴을 부여잡고 선방을 나와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
또 가야산은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이 숨어들어 마지막으로 기도를 올린 곳이고, 사람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라 믿었던 동학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고 만물을 공경하는 힘으로 새로운 하늘을 열려 했던 동학군들이 그 꿈을 삼키며 영원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간 곳이기 때문이다.
고단한 현대인의 삶을 정화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생태계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청정지역으로 서산·예산 지역의 식수와 농업용수의 발원지이다. 이곳에 최근 순환도로 건설, 송전탑 설치, 골프장 공사 등이 한꺼번에 이뤄지면서 주변 사찰의 주지인 서산 개심사 선광(56) 스님, 보원사 정범(39) 스님, 비구니 도량인 일락사 삼서(48) 스님이 지난 3월부터 가야산 중턱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기도 정진’으로 맞서고 있다. 이들이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곳은 보원사지 뒤편의 철탑공사 현장과 순환도로 공사 예정 지역이 겹쳐지는 해발 400m 지점. 농성장에서 만난 선광 스님은 “삼존부처님의 천 년 미소를 터널, 철탑 따위와 바꿀 수 없다”며 “위법망구(爲法忘軀·불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의 각오로 문화재 훼손과 생태계 파괴를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현재 가야산 도로 철탑 공사는 일시 중단된 상태다.
(△사진설명: 산 위에 서면 아래로 송전 철탑이 내려다 보인다. 흉물스러운 것이 육중하기까지 하다. 저 송전철탑과 비교하면 조선인의 기를 빼겠다고 일본인들이 박아넣은 쇠말뚝은 그래도 애교 있는 것이었다.)
(△사진설명: 보원사지 발굴현장.현장을 본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단호했다. “도로 내는 일을 기획할 때 역사적인 문화재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되죠.” 이미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사적지 붕괴가 예상되는 도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유 청장은 고압 송전철탑들은 더 심각한 문제지만 그것은 문화재청 소관이 아니기에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사진설명: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
(△사진설명: 7월12일 오전 9시30분 가야사의 옛 터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남연군묘 앞에서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야산 자락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위령제’가 열렸다.)
(△사진설명: 도로와 송전탑이 설치되는 지역을 표시해놓은 조감도. 정범 스님은 “현재의 도로보다 5분 정도밖에 빨라지지 않는 새 길을 내기 위해 문화유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두 동강 내는 일을 방관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현재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보원사지 주변과 가야산을 보전지역으로 지정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설명: 가야산 능선 곳곳은 고압 송전철탑을 세우기 위한 터닦기 공사로 이미 나무가 베어지고 흙이 파헤쳐져 있었다. 선광 스님은 철탑을 세우기 위해 파헤치고 있는 구덩이에 뛰어들어 목탁을 쳤고, 정범 스님은 폭약 상자에 걸터앉는 등 몸을 던져 공사 현장의 인부들을 돌려세웠다. 현재 가야산 철탑 공사는 일시 중단된 상태다.사진제공 가야산연대 지난 3월 )
(△사진설명: 위령제를 지낸 뒤 대한불교 조계종 7교구 본사 수덕사 소속 선원의 대중스님 200여 명과 신도 300여 명 등 모두 500여 명은 ‘백제의 미소길’을 따라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지에서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의 보원사지까지 9km 구간을 걸었다.)
(△사진설명: 위령제에서 축원문을 읽고 있는 설정 스님도 추모사를 통해 “오늘 가야산님의 싱그러운 품에 안겨 걷고 또 걸으면서 사죄합시다. 지켜내겠다고 확인합시다. 모처럼 몸과 마음이 일색이 됩시다”라고 결의를 다졌다.)
(△사진설명: 주민들의 소원이 적힌 펼침막들. 정범 스님은 “가야산을 지키다가 ‘국립 선방’(감옥)에 가면 영광 아니겠소?”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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