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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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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트레일러의 절망

등록 2005-12-10 00:00 수정 2020-05-03 04:24

경력23년차 화물운송 노동자 임병준씨와 함께 달린 24시간
‘동북아 물류 중심 국가 건설’구호는 화려한데 삶은 비루하네

▣ 사진·글=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40피트 대형 트레일러로 장거리 운행, 심야 운행하는 게 일상인 경력 23년차 화물운송 노동자 임병준(43)씨.

약속된 하차 지점에 짐을 내려주는 것만 중요할 뿐, 그가 시간 안에 닿으려고 어떻게 애썼는지,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며 새우잠을 자면서 대형 사고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렇게 도로에서 쓰러져간 동료들을 여럿 보았다.

경기도 의왕의 컨테이너 기지에서 20피트짜리 컨테이너 2개를 트레일러에 얹고 일산의 의류 공장과 김포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 들러 화물을 싣고 부산을 향해 출발한 시간이 저녁 7시. 밤 9시부터 통행료가 50% 할인이 되기 때문에 화물차량들은 심야에 고속도로를 달린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칠곡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2시경. 잠깐 눈을 붙이고 4시30분에 다시 출발해 구마고속도로를 지나 아침 7시쯤 서부산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전국에서 온 화물들이 몰려드는 부산 감만항. 조금이라도 빠른 순서에 짐을 내려야 그만큼 쉴 시간이 생긴다. 컨테이너를 내리고 나니 10시30분이다.

한숨 돌리고 운송회사에 서울행 화물을 문의해보니 허탕. 오후 1시가 넘어도 일거리가 없다. 빈 차로 올라갈 순 없으니 내일을 기약하고 하룻밤 묵어야 한다. 부둣가 도로에 비슷한 처지의 빈 차들이 많이 보인다. 거의 포기했는데 인천으로 향하는 철근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녹산공단으로 달려가 철근을 싣고 오후 4시경 서울로 출발. 마음이 놓이니 졸음이 밀려온다. 휴게소까지 가지 못하고 갓길에 주차하고 1시간 정도 눈을 붙인다. 저녁 9시30분 신탄진 화물 휴게소에서 전날 서울을 출발한 이후 처음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선 운전석 뒤 잠자리에 들었다. 어이쿠, 벌써 새벽 5시다. 늦잠을 잤다. 부지런히 달렸지만 인천에서 출근시간에 걸려버렸다. 송도의 공사현장에 철근을 내려놓고 다시 의왕 컨테이너 기지로 향한다.

“운임의 차이는 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평균 50만원 정도예요. 부산에서 서울은 화물량이 적어 평균 40만원 정도죠. 서울~부산 한탕을 뛰면 90만원 정도라고 보시면 돼요.”

정확히 말하기를 꺼렸지만 임씨는 이번 운행에서 90만원이 조금 넘는 운임을 받았다. 운임은 다단계라는 운송회사 하청 구조를 얼마나 거치냐에 따라 다르다. 전화 한 통화를 거칠 때마다 알선료 명목으로 2만원씩 줄어든다. 2003년 화물연대 파업 때 다단계를 엄격히 단속하겠다고 정부가 약속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다.

“가장 많이 드는 비용은 기름값이에요. 60%가 기름값으로 나가요.”

이번에는 서울~부산 왕복하면서 497ℓ, 약 57만원어치의 경유를 사용했다. 분기마다 180만원 정도의 유가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실제 도움이 되려면 면세유 지급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에 통행료, 상차비 등까지 부담하니 운임의 약 75%가 비용으로 나간다. 하지만 운임은 3개월짜리 어음으로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상황에 딱지라도 하나 떼면 입에서 절로 거친 말이 나온다.

차를 세워놓아도 할부금에 지입료, 보험료는 잘 빠져나간다. 개인사업자라 1년에 두 번 부가가치세도 챙겨낸다. 도로 위에서 먹고 자며 밤낮 없이 달리다 주말에야 집에 들어가지만 생활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화물운송 노동자들은 정부가 나서 운임을 현실화하고 면세유를 지급하고 불법 다단계 등을 해결해주길 바란다. 나아가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길 바란다. 하지만 정부는 미봉책으로 당장의 물류 대란만 막으려 할 뿐,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나 대책 수립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물류 중심 국가 건설이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절망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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