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네 살의 나이에 서울 회현동 2가 명동 입구에서 구둣집 부스를 열고 있는 예창기씨. 그의 구두닦이 경력은 의외로 짧았다. “여기서 이거 한 지는 한 4년 된 거 같은데?” 한국전쟁 때 부모를 잃고 초등학교도 졸업 못한 18살 소년이 서울로 올라와 할 수 있는 것은 어깨에 구두통을 메고 거리로 나서는 일밖에 없었다. 삶이 어려운 시절, ‘아이스케키’ 파는 일부터 호떡장사, 남의 집 운전기사까지 먹고사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러고보니 정작 구두닦이 일을 한 건 1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 일을 70살에 다시 시작한 것. “그래도 내가 손재주는 타고난 거 같아. 옛날부터 뭐 고장나면 내가 다 고쳤으니까. 자동차 엔진도 직접 다 고쳤는데, 이 일 정도야 기술이라고 할 수도 없지. 금방 다 기억나더라고.”
20년 전 부인을 잃고 지금은 아들 부부와 같이 산다는 예씨는 지금이 인생에서 제일로 행복하다고 한다. “애들 다 커서 부양할 일도 없고, 그냥 나 혼자 벌어서 내 용돈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담배 한 갑 피우고, 부족한 게 없어 좋아. 돈 많으면 뭐해. 하루 여섯 끼 먹나?” 지금도 소주 한 병을 마셔도 끄떡없다는 예씨는 매일 경기도 파주 집에서 첫차를 타고 나와 새벽 6시 반이면 어김없이 부스 문을 연다. “노는 건 습관이 안 돼서 못 놀아. 그냥 여기서 일해야 시간도 잘 가거든. 이 나이에 내가 일할 수 있다는 게 고마워.”
인생의 황혼기가 가장 행복하다는 예씨. 평생을 일하면서 흘린 땀방울이 그에게 가져다준 대가였다.
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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