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스크포스팀 꾸린 정부, 다단계 하도급 문제의 법·제도 개선 이끌어 낼까… 노조쪽은 노사관계 등 진전없다며 우려… 부처간 이견으로 난항 겪는 정황도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건설현장의 노사 문제가 쉽사리 돌파구를 열지 못하는 배경으로는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뤄지는 업무의 특성 탓도 있지만, 법·제도적 미비점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무분별한 외국인 인력 도입 중단,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등 건설현장 노사관계에서 종종 제기되는 쟁점들은 발주처나 원청회사 차원에서도 풀기 어려운 난제다.

이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은 정부에 법·제도적 정비를 요구해왔으며 지난 7월 건설산업노조연맹이 8대 쟁점 사항을 담은 ‘대정부 요구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뒤이어 포항지역 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점거 사태’가 터지면서 건설현장 노사 문제와 관련한 법·제도 개선은 또다시 사회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시공참여자제도 폐지 등은 진척돼
정부가 7월26일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하도급 개선 및 건설근로자 복지 증진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꾸린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한 조처였다. 이 팀은 김용덕 건설교통부 차관(위원장)과, 건교부·노동부 등 8개 부처 국장급 위원으로 꾸려져 있다. 이들 정부 위원 외에 심규범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장원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민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심 박사는 건설산업 전반의 구조적인 하도급 문제를, 이 박사는 포스코 사태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태스크포스팀은 9월14일까지 모두 세 차례 전체회의를 열어 기술·기능 인력 종합 육성 대책, 건설현장의 노동시간 단축, 불법 다단계 하도급 철폐 방안 등을 논의했다. 팀은 9월 말까지 종합 대책을 마련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법 개정을 비롯한 후속 조처를 밟아나갈 예정이다. 그렇지만 태스크포스팀에서 마련할 방안이 건설현장의 갖가지 복잡한 문제를 기대만큼 풀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건설산업노조연맹의 8대 요구안 가운데 하나였던 ‘시공참여자제도’(책임 시공을 위해 현장 반장(십장)에게 재하도급을 예외로 허용하는) 폐지 방침을 담은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10월 초 국회에 제출될 예정인 등 일부 진척이 있긴 해도 전반적으로는 낙관적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건설산업노조연맹의 최명선 정책실장은 “간략하게 구두로 전해들은 바로는 건설산업 구조에 대한 논의에는 적극적인 반면, 노사관계 문제에선 전혀 진전이 없고 노동시간이나 토요일 휴무와 관련해서도 개선 방안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걱정했다. 따라서 포스코 사태처럼 당장 현장에서 쟁점으로 떠올라 있는 노사 문제를 푸는 구실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주40시간 노동제, 건교부와 노동부의 충돌
부처 간 이견으로 난항을 겪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한 예로 주 40시간 노동제를 적용할 때 건설현장에선 ‘사람 수’(100인 이상 사업장)가 아닌 ‘총공사 금액’(예컨대 100억원)으로 정해 논란의 싹을 없애자는 방안을 들 수 있다. 이는 꽤 오래된 과제로, 건교부 쪽은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인 반면, 노동부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이란 특정 업종에만 잣대를 달리할 경우 근로기준법 체계 전반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게 노동부 쪽의 반대 논리다. 노동계 쪽은 이에 대해 건설업 종사자가 180만 명에 이르는 현실을 감안하면 건설업에만 적용되는 기준을 못 만들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주장을 편다.

최 실장은 “기존 하도급 개선 방안이 원청과 하청 회사 사이의 불공정 거래에 집중됐던 것이라면, 이번 태스크포스팀에선 (건설노동자와 관련되는) 불법 하도급 등 방치돼온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진전된 것”이라면서도 “앞에서 막고 뒤에서 풀어주는 행태가 엿보여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시공참여자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발주처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예외적인 경우 하도급, 재하도급을 허용하는 방안이 마련되고 있는 걸 그 예로 들었다. 건설현장의 노사 문제만큼이나 법·제도적 정비 또한 험난한 과제로 여겨진다.
![]() | ||||
![]() | 포스코도 나이키처럼? |
1990년대 초 나이키는 ‘아동노동 착취’ 문제에 직면했다. 한 켤레에 150달러짜리 나이키 신발을 생산하는 제3세계 공장 노동자들이 하루 2달러 이하의 저임금을 받는 어린 아동들이라는 사실이 각국에서 폭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태에 직면한 나이키는 처음에 “우리가 공장을 직접 소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서 “오히려 나이키는 아동들한테 빈곤을 탈출할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착취의 책임을 하청공장에 떠넘긴 것이다. 이에 맞서 전세계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은 ‘반나이키 캠페인’을 벌여나갔다.
그러던 중 1996년 6월호는 12살짜리 파키스탄 소년이 나이키의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과 함께 아동노동 착취를 본격적으로 비판했다. 전세계가 충격에 휩싸였고, 나이키의 아동노동 착취에 분노했다. 나이키의 주가는 크게 떨어지고 판매량도 급감했다. 결국 나이키는 무릎을 꿇었다. 1998년 나이키 회장은 “그동안 나이키 제품은 노예노동, 강제잔업, 노동학대와 동일시됐다. 노동자가 혹사당하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소비자들이 구매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믿는다”고 실토했다. 이어 “하청 노동자들은 우리 문제가 아니다”라던 기존 입장을 바꿔, 노동착취를 하지 않겠다는 기업 윤리규범을 나이키 본사뿐 아니라 하청 외주 업체들에도 적용해 준수하도록 요구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부소장은 “포스코가,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과 여기서 비롯되는 발주처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이라는 법률적 문제를 넘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측면에서 ‘존경받는, 위대한 기업’이 되려면 나이키의 경험을 곰곰이 새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김건희 기갑차에 태우고 관저 드라이브” 경비단 병사 증언
“윤석열, 관저서 세금으로 환송 파티”…식자재 차량·조리사 포착
이재명 37% 김문수 9% 홍준표 5% 한동훈 4%…한덕수 2% [갤럽]
홍장원, 국정원 ‘대선개입’ 우려…“정치적 중립 의구심”
강용석, 이번엔 선거법 유죄 확정…2030년까지 변호사 자격정지
[속보] 이재명 “절체절명 향후 5년, 진취적 실용주의로” 집권비전 발표
죽에 커피 섞어…취객 160명에 1억5천 뜯어낸 택시기사
친윤은 왜 하필 ‘한덕수 차출론’을 꺼내들었나 [뷰리핑]
정식 비자 받아 한국 왔는데…“이런 곳에서 살 줄은 꿈에도”
헌재, 대통령의 헌법 원칙 위반을 정면으로 인정하다 [왜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