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진정한 의미의 세계문학을 찾아

낯선 세계의 미시적 일상사 얘기에 귀기울이다… 서구·유럽에 편중한 ‘반쪽’ 문학 선집을 넘어서려는 노력, <아랍 단편소설선>
등록 2011-09-30 15:06 수정 2020-05-03 04:26

조지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4가지로 요약한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무언가를 쓰는 이라면 이 이유들 중 적어도 하나에는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글누림 펴냄)은 이집트, 예멘, 튀니지, 알제리, 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바레인, 리비아의 작가들이 쓴 짧은 글을 담았다. 20편의 소설 안에는 오웰이 말하는 4가지의 글 쓰는 이유가 모두 들어 있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적 이기심과 아랍권 특유의 미학이 깃들었고, 숨통을 죄어오는 가부장제 등 역사적 흐름과 폭압의 정치가 작가의 펜대를 타고 흘러나왔다.

2

2

소설, 비공식적 역사의 기록

책을 번역한 이들은 입을 모아 “비공식적 역사인 동시에, 부조리한 현실을 초월해 대안을 구축하는 공간”으로서 소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 소설을 살펴보자.

리비아의 작가 나지와 빈샤트완이 쓴 ‘물웅덩이와 피아노’는 1986년 영어·프랑스어 서적을 태운 분서 사건을 다루고 있다. 1969년 카다피의 쿠데타 이후, 민족주의에 편승해 외국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던 리비아의 사회 상황을 풍자한다. ‘외국어 서적 화형식’으로 학교는 온통 까만 재로 덮이고 아이들과 선생님도 시꺼먼 검댕을 뒤집어쓴다. 까만 학교와 까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그리고 물웅덩이에서 등장하는 마녀, 서양 문화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태워버리는 커다란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리비아 말로 된 욕설처럼 들리는 통곡과 비명은 이야기를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끌어간다. 가장 현실에 맞닿아 있던 사건을 비현실적 상상력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이야말로 “부조리한 현실을 초월한 비공식적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이 아닐까.

이어지는 ‘끝장 싸움’(예멘, 바쌈 샴셀딘 지음)도 인상 깊다. 지주와 그가 키우는 개, 이들을 위협하는 호랑이가 있다. 호랑이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자 지주는 호랑이에게 총을 쏴 상처를 입힌다. 호랑이는 복수를 다짐한다. 호랑이의 접근을 알아챈 충실한 개는 이를 알리려고 주인에게 밤낮으로 짖어댄다. 그러자 지주는 “닥쳐, 콰르퀴스, 제발 잠 좀 자게 조용히 하라고.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으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나 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흘 밤낮을, 목이 쉴 정도로 집요하게 짖어댄다. 결국 주인은 개의 머리에 총을 쏘아 죽인다. 다음날 지주는 자신의 가축들이 호랑이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을 보고 개가 왜 그토록 짖었는지 깨닫는다. 이어 지주 자신도 죽는다. 복수심에 불탔던 호랑이는 적을 잃었다. 호랑이마저 죽는다. 개, 지주, 호랑이의 연속적인 죽음을 통해 작가는 사랑과 용서의 가치가 부재한 현실을 비판한다.

마찬가지로 예멘 작가인 예쎄르 압델 바키가 쓴 ‘검은 고양이’는 일상의 공포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두려움에 떠는 한 남자가 있다. 검은 고양이가 한 달째 자신의 뒤를 밟으며 지켜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그 검은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창백한 얼굴로 카페에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낯선 남자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는 이 낯선 사람이 고양이라는 확신이 들어 그를 죽이려고 거리로 뛰쳐나가다가 트럭에 치어 죽는다. 일상을 점령한 보이지 않는 공포는 그것이 무엇으로 해석되느냐에 따라 예멘의 이야기일 수도, 지금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그린 소설도 있다. 이집트 작가 살와 바크르가 쓴 ‘나일강’의 주인공은 두 모녀다. 엄마는 나일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에서 파출부로 일한다. 엄마가 일하는 곳에 따라다니는 6살 난 딸은 힘차게 꿈틀대며 흐르는 나일강의 모습에 매료된다. 그러나 엄마는 딸에게 나일강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한다. 아이가 강의 흐름을 지켜보는 데 빠져드는 것이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망과 이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한편 튀니지의 하싼 나스르가 쓴 ‘응접실 그림’은 3쪽짜리 짧은 이야기 안에 해방과 변화의 기운을 담았다. 아내는 방에서 출산을 하고, 남자는 초조하게 응접실에서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응접실 한가운데는 가족 대대로 물려받은 큰 그림이 걸려 있다. 그런데 그 그림이 갑작스럽게 떨어져 깨지고, 당황하는 남자에게 가족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의 사진을 걸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응접실 가운데서 왕처럼 공간을 지배하던 오랜 그림이 새로운 세대의 것으로 바뀔 거라고 말하며, 이야기는 가정의 변화 나아가 사회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서구 중심의 문학에서 벗어나야

책에 실린 총 20편의 이야기는 아랍의 미시적 일상사와 정치·경제·문화적 현실을 담고 있다. 책을 출간한 글누림출판사는 이전에 을 펴냈다. 앞으로 필리핀, 라틴아메리카, 이란, 팔레스타인, 인도, 중국, 이집트, 남아프리카, 멕시코, 아르헨티나의 단편소설선도 차례로 펴낼 예정이다. 출판사의 비서구문학전집 간행위원회는 본 시리즈를 발간하는 이유를 “구미 중심주의의 세계문학 틀을 해체하고 진정한 의미의 전 지구적 세계문학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라고 밝힌다. 그러려면 서구·유럽에 편중한 세계문학 선집에서 벗어나 비서구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이 속에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자는 여기 실린 소설 중 몇 편에 대해서는 허술한 문장, 정교하지 못한 구성에 실망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편집진이 밝히듯 우리가 이 낯선 글들을 읽어야 할 이유는 기술적이고 사소한 문제를 훨씬 큰 폭으로 넘어선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