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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의 야심?

등록 2007-12-21 00:00 수정 2020-05-03 04:25

왜 독약 될 지도 모를 이명박 지지 밝혔나… “다음달 위원장 선거 대비한 승부수” 주장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국노총은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 12월10일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한국노총 산별노조위원장과 시·도 지역본부 의장들은 이명박 후보와 손을 맞잡고 “대선 승리 파이팅!”을 외쳤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 후보의 당선을 위해 조직적인 당선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포했다. 한국노총 전체 조합원은 87만 명이다. 물론 한국노총이 조직적으로 이 후보 지지를 표명했지만 개별 조합원들이 이 정치방침을 따라 대선에서 이 후보한테 꼭 투표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이명박 후보 지지선언 뒤 즉각 한국노총 내부에 후폭풍이 불어닥쳤다. 박창완 금융노조 비정규지부 지도위원 등 한국노총 소속 노조 간부 6명은 “한국노총 지도부가 노동 대중조직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고, 노총의 시계를 전두환 정권 말기 권력의 시녀를 자처했던 어용노총 시절로 되돌려놓았다”며 “노총 조합원 1020명은 (이 후보 지지를 거부하고)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이 ‘가장 친기업적인 후보’로 꼽혀온 이 후보와 ‘대선 정책협약’을 맺게 된 과정부터 보자. 한국노총은 올 5월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해 올해 대선 정치방침으로 ‘정책연대’를 표방했다. 한국노총의 독자 정치 세력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처지를 감안해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특정 정당 후보를 ‘정책 동반자’로 선택하는 대선 정치사업 노선을 채택한 것이다. 이런 정책연대는 노동계에서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민노당엔 정책연대 전 사과 요구

그러나 한국노총은 권영길 후보에 대해서는 유독 “그동안 한국노총을 비난해온 데 대해 먼저 사과하라”며 민주노동당의 ‘공식 사과’를 정책연대 대상 후보가 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요구했다. 민주노동당은 처음에 사과문을 전달했으나, 나중에 사과를 철회하고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는 사실상 특정 후보를 밀어주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라고 투표 의도와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책연대 투표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책연대라는 외피만 썼을 뿐 사실상 ‘한나라당을 위한 판짜기’라는 비판이 애초부터 제기돼온 것이다. 노동계는 한국노총이 민주노동당에 사과를 조건부로 요구한 것 자체가 권 후보를 정책연대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하기 위한 수순이었다고 분석한다.

그 뒤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도 조합원 총투표를 이틀 앞둔 11월26일, 각각 “정책연대 대상에 반노동자적인 특정 후보가 포함된 것은 부적절하다”거나 “BBK 사건 수사 결과가 발표되는 12월5일 이후에 조합원 투표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사실상 정책연대 참여를 포기했다. 11월23일 열릴 예정이던 ‘후보 간 방송토론’도 이명박 후보의 불참으로 무산된 바 있다. 이렇듯 파행이 빚어졌지만 한국노총 지도부는 “뒤늦은 정책연대 참여 포기는 인정할 수 없다”며 이명박·정동영·이회창 세 후보를 대상으로 투표를 강행했다. 휴대전화 번호를 제출한 조합원 45만 명을 대상으로 12월1일부터 7일까지 총투표를 실시한 결과, 유효투표 23만6천 표 중 이명박 후보가 9만8296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고, 정동영 후보는 7만3311표, 이회창 후보는 6만5072표를 얻었다.

전체 조합원은 87만 명인데 이명박 후보가 얻은 표가 10만 표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자연히 투표 결과의 대표성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됐다. 최임식 한국노총 국장(대선정치기획팀)은 “낮은 투표율은 투표 이전에 노총 지도부도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며 “투표가 실시되기 이전에 노동조합 관련 룰(과반수 득표 원칙)을 따라야 할지, 선거법 룰(단 1표라도 많은 쪽이 승리하는 원칙)을 따라야 할지를 놓고 논의한 끝에 선거법 룰에 따르기로 이미 결정해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총 지도부는 이명박 후보에게서 ‘정책연대 대상으로 확정되면 정책연대 협약에 반드시 참여하겠다’는 확약서까지 미리 받아뒀다. 1위 득표자와 정책협약을 체결할 때 그 후보가 “한국노총 쪽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막판에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보고 미리 대비한 것이다.

전·현직 간부 상당수 한나라당 참여

애초부터 이명박 후보가 유력한 정책연대 파트너로 점쳐진 이유는 또 있었다. 한국노총의 산별연맹 및 지역본부 전·현직 간부 상당수가 이미 한나라당에 참여하면서 교감을 나누고 있었고, 정책연대를 이끌어온 한국노총 최아무개 대선정치기획팀장은 대선 40여 일을 앞두고 한나라당 노동특위로 자리를 옮겼다. 또 한국노총 중앙정치위원들 중 몇몇은 한나라당 당적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최임식 국장은 “이번 정책연대 결과를 둘러싸고 한국노총에 대한 정체성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충분히 그런 비판이 가능하고 우리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한국노총 지도부가 순진하게 조합원을 믿은 탓도 있다”고 말했다. 어떤 후보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진정으로 대변할 사람인지 제대로 식별할 수 있도록 조합원 정치의식 교육을 했어야 하는데 제대로 안 돼 유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조합원들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조합원들을 핑계 삼아 한국노총 지도부가 뒤로 숨는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노동자들이 일반 유권자처럼 투표하면서 이명박 후보가 득표 1위를 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또 각 후보들의 정책연대 참여 포기로 파행을 빚으면서도 한국노총 지도부는 왜 그대로 투표를 밀고 나간 것일까? 이와 관련해 한국노총 간부를 지낸 박아무개씨는 “내년 2월에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용득 현 위원장이) 위원장 선거에 다시 나가려면 가시적인 뭔가가 있어야 할 것이고, 국회로 가든 다시 위원장 선거에 나서든 승부수를 이번에 던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정치적 야심과 조직의 이익이 충돌한 것일까? 박씨는 또 “조합원 총투표 직전에 몇몇 한국노총 간부들이 ‘골치 아프다. 무조건 (정책연대 후보로) 이명박이 될 것 같은데, 역사상 한국노총이 보수 정치세력과 손잡고 정책연합에 나선 적은 없었다. 엄청난 사건인데, 위원장이야 가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우리가 멍에를 뒤집어써야 할 것 같다’면서 허탈해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명박 후보가 한국노총과 정책협약을 체결하면서 집권시 이행키로 약속한 공약은 △정규직 전환 회피를 목적으로 한 기간제 근로자와의 재계약 거부 제한 △노사발전재단 지원 △노·사·정 동수의 고용보험기금운영위 설치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보장 적극 검토 등이다. 이에 대해 최임식 국장은 “비정규직 공약의 경우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뒤에 지켜주면 좋겠지만, 글쎄…”라고 말끝을 흐렸다. 사실 한국노총 지도부는 9만8천 표라는 낮은 득표율 때문에 이명박 후보에게 정책협약안을 공격적으로 요구하지도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실 많은 조합원이 이 후보를 지지해야 한나라당에 ‘지분’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머리띠 두를 때가 곧 올 것”

정책협약안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노사발전재단 지원과 고용보험기금운영위 설치다. 노사발전재단은 한국노총이 주도해 올 4월에 출범한 기구로, 고용보험기금의 이자수익금(연간 3천억원가량)을 노사발전재단 기금으로 쓸 것이냐를 둘러싸고 한창 논란 중이다. 한국노총은 이번 정책연대를 통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심산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노사발전재단(민주노총은 불참)의 연간 재원이 3천억원에 이르게 되면 노동운동 주도권이 한국노총으로 넘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그동안 ‘정책 공조’라는 이름 아래 정치권과의 타협을 통해 (민주노총을 배제한) 독점적 교섭 파트너로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그때그때 실리를 챙기는 ‘노동정치’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러나 이 후보가 집권할 경우 한국노총이 나중에 정작 ‘팽’당하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정책협약 파기’를 선언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한국노총 전직 간부를 지낸 박씨는 “이 후보가 집권하면 노동자들을 자극하는 노동정책을 펼 것이 불을 보듯 뻔하고, 결국 머리띠 두르고 투쟁에 나서야 할 때가 곧 올 것”이라며 “이럴 경우 한국노총은 일대 혼란에 빠져들고, 노동계에서 위상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책연대가 ‘독약’이 될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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