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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자가 군인보다 짭짤하다?

등록 2004-10-22 00:00 수정 2020-05-03 04:23

▣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노르웨이 정부 대체복무기구는 오슬로에서 남쪽 방향으로 60km 떨어진 딜링섬(Dillingoy)에 위치해 있었다. 이 섬은 노르웨이 과거청산의 역사가 스민 곳이다. 나치 부역자의 땅을 국가가 환수한 것으로, 1950년대에는 병역거부자들이 감옥 대신 일하던 농장이었다. 1965년 대체복무제 특별법이 생기면서 이곳에 행정기관을 설립했다.
광활한 잔디밭 한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대체복무기구 건물 주변에선 대체복무자들이 노역을 하고 있었다. 이 사무실은 대체복무자와 대체복무 고용주들을 이어주는 네트워크 구실을 한다. 30여명의 공무원이 근무하며 1년 평균 총예산은 33만달러 정도다. 제도와 인력을 관리하고, 전국의 대체복무자들에게 월급을 주는 데 쓰인다. 대체복무자의 한달 임금은 823달러다. 하루 기본급 17달러, 음식 8달러, 옷 2.5달러를 30일로 계산한 액수다. 만약 자녀가 있고 부인이 일을 하지 않을 경우엔 추가로 더 붙는다. 만약 빚을 진 상태로 복무를 시작했다면 은행이자를 대신 내주기도 한다. 참고로 노르웨이 대졸 초임은 한달 평균 2500달러 선이다.

군인의 월급은 이보다 더 적다. 군인에게는 식사와 유니폼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군인에겐 하루 기본급 17달러만 계산된다. 그래도 시민들은 군인과 대체복무자 중 어느 한쪽이 유리하다고 보지 않는다. 13개월인 대체복무 기간이 군대복무 기간보다 1개월 더 길어서다. 한달 더 일함으로써, 밤에 보초를 서거나 추위를 무릅쓰고 집단훈련을 해야 하는 군인들의 고충을 대신한다고 본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매해 대체복무를 신청하는 1500여명 중 400명은 폭력예방 활동에 종사한다. 학교나 유치원에서 비행청소년 교육활동에 투입된다. 나머지 1100명은 노인이나 장애인 복지시설 또는 문화교육시설에서 일한다. 앰네스티를 비롯한 인도주의적 비정부기구를 자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체복무 여건이 윤택한 편이지만, 군대 신청자들이 꾸준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르웨이 정부 대체복무기구 한스 오 홀란 대표는 “전통적으로 모험심 때문에 군대 가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물론 민주화된 군대의 전통 덕택에, 병영생활에 대한 혐오감은 없다고 한다. 징집대상 연령은 만 19살에서 33살. 그러나 실제로는 만 19살에서 23살에 집중돼 있다. 군 필요인력이 모자라지 않으므로, 23살을 넘으면 ‘노계’로 취급돼 영장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할 바에야 모병제를 하는 게 낫지는 않을까? 한스 오 홀란 대표는 “군이 일반적인 소양을 지닌 사람들을 원하기 때문에 아직은 징병제가 좋다”고 했다. “모병제로 가면 전쟁 좋아하는 사람들, 도덕적으로 개념 없는 사람들만 올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스칸디나비아 3국은 모두 징병제를 선택하고 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덴마크는 제비뽑기로 군 인력을 뽑고, 스웨덴은 대체복무제를 운용하면서도 군대 안에서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권리까지 존중해준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노르웨이에도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논리가 있는가”고 물었다. 있었다. 단, 2차대전 직후까지만…. 요즘에 그런 이야기 했다간, 몰상식하고 멍청한 사람 취급당하기 십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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