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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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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도 내쫓는 공정위의 밀실재판

우유 담합 사건 다룬 전원회의 방청하다 쫓겨난 오영중 변호사

“신분 밝혀도 강제로 끌어내… 회의 비공개는 명백한 위헌”
등록 2011-02-15 15:50 수정 2020-05-03 04:26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원회의를 사실상 비공개로 운영하는 것은 결국 법을 위반한 기업들을 보호하고, 피해를 본 국민들의 구제를 가로막는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를 맡고 있는 오영중(42) 변호사는 지난 2월10일 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공정위가 전원회의를 비공개로 운영하는 현 실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공정위가 우유 담합 사건을 전원회의에 상정했을 때 참고인의 변호사 자격으로 방청을 하다가 강제로 끌려나오는 치욕적인(?) 일을 겪었다. 오 변호사는 공정위의 전원회의 공개를 위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공정위를 상대로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 오영중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우유 담합 사건을 심의한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쫓겨났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 오영중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우유 담합 사건을 심의한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쫓겨났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얼핏 ‘경제검찰’인 공정위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오 변호사는 다소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2007년 변호사 시험에 늦깎이로 합격하고 2009년 학위 취득까지 성공해, 순수 국내파로는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진 변호사 1호’가 됐다. 올해 2월부터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를 맡게 된 그는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는 좌우명에 따라 장애인 인권과 소수자 보호 활동에도 힘쓸 계획이다.

 

공정위의 우유 담합 사건 처리 때 험한(?) 일을 당했다고 하는데.

지난해 12월16일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과 함께 공정위 전원회의의 방청석에 나란히 앉아 참고인 진술을 준비 중이었는데, 사전에 방청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위 직원에게 강제로 끌려나오는 일을 당했다. 당시 공정위로부터 참고인 요청을 받은 이 협회장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었다. 축산농가들의 모임인 한국낙농육우협회는 담합 혐의를 받고 있던 우유 제조업체들에 원유를 제공하고 있는 이해관계자다.

당시 변호사 신분과 참고인의 법률 자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는가.

변호사 신분증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무조건 (전원회의장에서) 나가라고 요구했다. 사건 참고인이 변호사의 법률 자문을 받는 것은 당연한데 무시됐다. 전원회의가 비공개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하더라. 공정위 전원회의가 법상으로는 공개 원칙을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전방청허가제로 운영돼온 것이다. 공정위 직원, 법 위반 기업들의 임직원과 변호사만 참석하고, 그 외 사람들에게는 비공개로 진행하는 관행이 지금까지 계속돼왔다.

강제로 끌려나올 때 상황을 설명해달라.

못 나간다고 버텼더니, 공정위 담당과장이 강제로 끌어냈다. 내가 저항하면서 고함까지 쳤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범죄인이 된 듯한 심정이었다. 변호사가 재판정에서 그런 일을 당하기는 최소한 민주화 이후에는 처음일 것이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는가.

옆자리에 사건 변호를 맡은 변호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공정위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부담됐는지 나서지 않더라. 나중에 몇몇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잘했다’고 격려해주었다. 말을 들어보니 그동안 공정위의 고압적인 회의 진행 방식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 당시 오 변호사는 우유 담합 사건의 참고인인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의 법률 자문을 맡았다. 이 회장을 비롯한 낙농농가 대표들은 공정위의 선처를 호소하는 등 담합 업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입장이었다. 연합

» 당시 오 변호사는 우유 담합 사건의 참고인인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의 법률 자문을 맡았다. 이 회장을 비롯한 낙농농가 대표들은 공정위의 선처를 호소하는 등 담합 업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입장이었다. 연합

공정위는 전원회의 비공개의 근거로 공정거래법 43조의 단서조항(기업의 사업상 비밀 보호 필요성이 있을 때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을 드는데.

공정위의 심결은 1심 재판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헌법 109조에서 밝힌 공개재판 원리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려면 헌법이 정한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고, 비공개 결정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모두 위헌이다. 헌법은 재판 공개의 예외 사유를 국가 안전보장이나 안녕질서 방해, 선량한 풍속을 해칠 염려가 있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사업자의 사업상 비밀은 헌법이 정한 예외 요건과 거리가 있다. 재판 공개 원칙은 문명국가에서 인권보장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예외 사유는 제한적으로 해석돼야 한다.

공정위가 다루는 사건의 특성상 기업의 비밀 보호를 전혀 무시하기 힘든 측면도 있을 텐데.

공정거래법상의 ‘사업상 비밀’은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다. 사업상 비밀의 범위와 경계가 자의적으로 판단될 위험이 있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 규정일수록 국민이 예견 가능할 정도로 명확해야 한다.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영업에 관한 모든 것이 사업상의 비밀에 해당될 수 있다. 심지어 공정거래법 위반 사실조차 사업상 비밀에 포함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정거래법이 범법자를 보호한다는 지적을 낳을 수 있다.

기업들의 담합이나 불공정거래 행위로 인한 피해는 결국 소비자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공정위가 전원회의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피해를 본 국민이 구제받는 데도 중요할 것 같은데.

기업들의 공정거래법 위반 중 많은 부분이 국민과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국가 경제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국민이 침해된 권리를 회복하는 절차를 밟으려면 공정위가 투명하게 공개돼 관련 정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공정위의 비공개는 소비자의 권리 보호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위험성이 높다.

공정위가 전원회의의 비공개를 결정하는 내부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의 ‘회의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40조의 2)을 보면, 피심인이 영업비밀을 보호받으려면 회의 5일 전까지 서면으로 요청해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공정위는 그동안 이런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비공개로 운영해왔다. 공정위에 기업들로부터 회의 비공개를 요청받아 승인한 자료를 보여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우물쭈물하더라. 또 규칙에서는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회의 비공개가 인정되더라도 일시 퇴장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아예 처음부터 입장을 못하게 막고 있다. 사실상 공정위가 내부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불법적으로 회의를 비공개로 운영해왔다고 볼 수 있다.

사건 이후 공정위와 어떤 얘기가 오갔나.

공정위의 심판관리관이 찾아와 사과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현행 제도와 운영 방식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시인하더라. 그래서 신속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공정위 심판관리관의 말은 좀 다르다. 당시 오 변호사가 너무 흥분한 것 같아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오 변호사가 지적한 문제점을 다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공정위 제도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양해를 구할 때부터 의심이 들었다. 혹시 시간을 끌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계획은.

공정위의 위헌적인 전원회의 비공개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조처를 모두 취할 것이다. 우선 공정위의 강제 퇴정 행위와 그 근거가 된 공정거래법 43조의 단서조항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것이다. 또 관련 법 개정을 위해 국회에 입법 청원을 하겠다. 공정위를 상대로 국가배상도 요구할 것이다.

지난해 변호사를 개업하자마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 담합 사건과 관련해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일도 우유 담합 사건이 발단이 됐으니 이래저래 담합과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웃음) 경제학 전공을 살려 금융, 지적재산권 등 경제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싶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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