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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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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좋은 성적표는 수치다!

등록 2003-04-10 00:00 수정 2020-05-02 04:23

G세대 청소년들의 반전시위로 각급 학교에서 전쟁 교육 논쟁이 불붙은 독일 사회

지난 3월20일 늦은 아침, 창 밖에서 들려오는 뜻밖의 소란스런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텔레비전을 켠 순간, 아니나 다를까 전쟁은 시작되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뉴스를 쫓아가다 문득 ‘창 밖’ 소리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졌다. 정신을 차리고 주의 깊게 들어보니, 집 앞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 요란한 소리 속엔 ‘부시는 전범이다’, ‘전쟁에 반대한다’라는 구호들이 섞여 있었다. 잠옷바람으로 베란다로 뛰쳐나가 보니, 앳된 얼굴의 청소년 시위행렬을 만날 수 있었다.

‘미디어 효과’가 시위 확산시켜

그날 정오, 수업을 거부하고 베를린 한 광장에 모인 청소년들 수는 경찰집계로 5만명에 달했다. 베를린 전체 인문계 고등학생의 수가 약 4만명인 것을 감안할 때, 이 규모는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베를린 지역 학교들은 전쟁 발생 당일 고등학생에 한해 집회참여를 허가했다. 그 이하 학생들에게는 수업시간에 약 두 시간가량 이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학교장 재량에 맡겨졌다. 영어시간에는 전쟁을 알리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었고, 역사시간에는 이번 이라크 전쟁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토론을, 종교시간에는 방과후 시위에 들고 나갈 피켓을 제작했다.

다른 독일 도시의 상황도 마찬가지여서, 학생들은 곳곳에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전쟁 개시 이후 첫 주말 동안 독일 전역에서 약 10만명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지난 3월25일, 독일 북부 함부르크에서는 급기야 경찰과 청소년 시위대 간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날 약 2만명에 달하는 청소년 시위대가 미 영사관 앞에 집결했고, 물대포와 곤봉 세례라는 이례적인 경찰의 강경 진압은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이 사건 이후 언론과 방송은 청소년들의 시위참여를 주요하게 분석, 보도하면서, 청소년들의 시위참여 관련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학생들의 부모들과 교사들은 경찰을 상대로 집단 고소장을 제출했고, 함부르크 일부 학교에서는 ‘시위참여자의 권리’에 관한 수업이 긴급 편성됐다.

한편, 독일 남부의 일부 주정부 교육청들은 시위참여를 위한 학생들의 수업 거부를 강력히 금지하는 일련의 행정조처들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근신·정학·벌금형 등의 전통적 제재와 더불어 ‘성적평가에 부정적 반영’이라는 위협도 포함돼 있었다. 교사가 학생들의 이른바 ‘수업 땡땡이’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꾸짖는 시평들도 일부 언론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어른’들의 구태의연한 태도는 청소년들에게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켰다. ‘68세대’ 또는 베트남 반전세대가 중심을 이루는 일선 교사 층에서는 학생들의 반전 토론과 시위 조직을 적극 지원하거나 최소한 눈감아주었다.

교실 창문 밖으로 반전 현수막이 내걸리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얼굴에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색을 칠한 채 수업에 참여하거나, 등·하교때 평화의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전쟁 반대와 평화의 염원을 담아냈다. “성적표에 시위참여로 인한 부정적 평가를 받지 않은 친구들이 오히려 그들의 성적표를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다”라는 한 고등학교 ‘반전 학생위원회’ 대변인의 떨리는 목소리는 방송을 타고 저녁시간 독일 전역 안방에 흘러들었다.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너무나 생생히 전달하는 방송들 때문에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 사이의 토론이 일어났다. 어느 소도시 20여명의 여성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엄마들’이라는 이름 아래 자녀들의 반전 서명용지를 갖고 나흘 동안 걸어가 주정부 교육부에 제출했다.

나이별로 다른 전쟁 교육

이 ‘미디어 효과’는 최근 독일 청소년 반전시위의 배경을 분석하는 학자들의 최소 합의지점이다. 1966년 베트남 전쟁의 시작에서 세계적인 반전시위 물결이 본격화되는 시점까지 걸린 시간이 약 2년이었다면, 이번 이라크 침공은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아 세계 곳곳에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베트남 전쟁 당시, 신문 사진이 전쟁의 참화를 전달하는 주요한 도구였다면, 지금은 방송과 인터넷, 휴대폰 등 다양한 매체가 이를 실시간으로 담아내며 수많은 토론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 변화는 저항의 형태와 저항의 ‘나잇대’를 바꿔버린 것이다.

부모와 교사의 ‘불공정’ 대우 하나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소년들의 감수성이, 작은 나라들 위에 군림하는 거대한 미국을 그냥 지나갈 수 없으리라는 분석도 제시된다. “친구들이 레고 장난감을 정성스레 높이 쌓아올리면 한 아이가 ‘앵’ 비행기 소리를 내며 장난감을 던져 이를 무너트리고 마는 일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한 유치원 교사의 말은 미디어 효과가 어디에까지 미치는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베를린 교육부는 교사들에게 ‘시간 및 공간개념’을 확립하지 못한 초등학교 1, 2학년생에게 전쟁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말 것을 추천하고 있다. 다만,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큰 어린이들에게 “너희들에게는 전쟁같이 끔찍한 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것을 설명해, 그들이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도와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전쟁은 어린 아이들에게 설명이 불가능한 그 무엇이기 때문에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초등학교 3, 4학년들에게는 전쟁보다는 평화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교육을 유도하고 있다. 교실 탁자 위에 촛불을 피운다. 촛불이 얼마나 쉽게 꺼질 수 있는지를 아이들이 알게 하면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만이 촛불로 상징되는 평화를 지킬 수 있음을 아이들이 느끼게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5, 6학년 어린이들이 반전시위에 참여할 경우, 가족이나 교사들의 동행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반전시위에는 참여 연령대가 이미 13살에서 14살까지 낮아진 것으로 독일 언론은 보도했다. 시위에 참여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나이라는 비판과 함께 시위참가 학생들의 논리가 지나치게 비약적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그러나 우려에 대한 각급 학교 단위의 ‘반전 학생위원회’의 입장은 단호하다. 9·11 테러 이후 시작된 ‘테러와 평화’라는 수업과 각종 토론행사들이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고민과 토론의 기회를 제공해왔다는 것이다.

저항 형태도 점차 세련돼

또한 이들의 저항 형태도 점차 세련되고 있다. 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항의하는 시위는 학교 당국과 학생들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이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이미 학생들은 지난 1월부터 반전시위 때문에 수업에 빠져야 할 경우를 예상해 조퇴 신청서를 미리 작성해두었고, 교사들과 더욱 적극적인 대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수업 거부에 대한 교사들의 동의를 가능한 한 사전에 끌어낸다는 취지에서다. 2월부터는 본격적인 평화시위 참여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학생들간 ‘문자메시지 연락망’이 형성되었다. 지난 3월20일 전쟁 개시일 첫 시위는 이들 ‘문자메시지 연락망’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했다고 한다. 준비된 시위임을 강조하듯, 이날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의 티셔츠에는 이미 반전 구호나 평화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반전과 평화를 표시하는 각종 액세서리와 의류도 인터넷을 통해 매출을 높이고 있다. “no demo, without deco”(장신구 없인 데모도 없다)라는 신조어가 이들 청소년 사이에 유행하게 되었고, 귀걸이, 반지, 개조한 청바지 등 ‘평화 패션’도 그 다양성을 더해가고 있다. 독일 최대일간지 은 이들 청소년을 ‘걸프 또는 걸프전 세대’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에게 유일하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이는 베트남전 세대의 우드스톡처럼 그들을 대표하는 ‘저항의 노래’라고 적고 있다. 독일 사회는 이들 G세대와 함께 여느 때보다 강한 저항의 봄, 평화의 봄을 맞고 있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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