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구가 시작됐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흥분에 빠져드는 시간.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응원하는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로 팬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팬들만이 아니다. 하위 팀 가운데는 마지못해 타석에 들어서는 듯한 표정이 엿보이는 선수도 더러 있었다. 주로 몸값 비싼 스타급이었다. ‘내년에 잘하면 되지’는 긍정의 태도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시간을 가불할 수 있는 선수는 적어도 내년이 보장된 선수이기에 특권적이다.
인간의 삶, 온전히 구조 환원 안 돼
여기 가을 야구 시즌에도 오로지 봄 야구만 꿈꾸는 이들이 있다. 화려한 포스트시즌이나 황금 장갑(골든 글러브), 난롯가에서 거액의 연봉을 놓고 ‘밀당’하는 스토브리그는 그들의 꿈이 아니다. 그들에게 가불할 시간 따위는 없다. 야구 인생의 전광판에는 ‘9회말 2아웃’이 표시돼 있다. 프로 무대에서 공을 던지거나 배트를 휘둘러보는 것, 그들은 그 소박해 보이는 꿈을 향해 이 가을에도 열정을 불태운다.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선수들이다.
사람 매거진 10월호는 가을 야구가 시작될 무렵, 아무도 찾지 않는 고양 원더스 구단을 찾았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눈물겨운 인생 유전이나 초인적 의지, 감동적인 인간 승리 같은 힐링의 서사를 발견할 것으로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지 모른다. 평생 야구만 해오고도 왜 그 지긋지긋한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프로 무대라는 꿈의 실체는 무엇일까. 은 묻고 따지다보면 답답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들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그들이 프로선수가 될 확률은 비현실적일 만큼 낮다. 그들은 다른 대안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거나, 외부에서 주입된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꿈으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은 전혀 새로운 의미를 던진다. “프로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공을 던지고 싶다는 희망은 물질이 가장 큰 목표인 프로 세계의 그것과 동행할 수 없다. 프로가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현실은 그들이 자기계발의 진정한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어 ‘자기계발’ 담론과 그 비판 담론에 대해 치밀하게 검토한다. 자기계발 담론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행사하지만, 비판 담론도 만만치 않은 위상으로 떠올랐다. “자기계발 비판 담론은 현실의 무기력함에 대해 현장부재증명(알리바이)으로 불려나가고는 했다. ‘모든 게 이명박 탓이냐’는 지난 정권 때의 우스개처럼, 만연한 현실은 비판 담론의 클리셰로 이어지기 쉽다.” 자기계발 비판 담론이 애초 문제의식과 달리 잘못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도 함께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 인간의 삶은 온전히 구조로 환원되지 않는다. 구조의 지배를 받지만 그 구조 또한 인간의 실천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것을 바꾸기 위한 실천의 근본적인 조건은 자유에의 의지다. 그렇다면 자기계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만의 꿈 있어 자유로운 강팀“인간에게 자기계발은 생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일궈가는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좋은 자기계발도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정치·자본 권력으로부터 자기계발의 헤게모니를 되찾아오는 일이 아닐까. 고양 원더스 선수들은 신체 영역에서 자기계발을 위해 치열하게 산다. 팀은 프로구단 승격 대신 독립구단으로 남음으로써 선수에게 자기계발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성과에만 올인하는 기존 프로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고양 원더스 선수들은 자신만의 꿈이 있기에 자유로운 강팀이다. 이 가을, 우리는 무슨 꿈을 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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