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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을 이끌어온 사람들

등록 2003-01-22 00:00 수정 2020-05-02 04:23

전경련의 역사에는 권력과의 유착과 갈등이 뒤섞여 있다. 전경련은 4·19혁명 이후 부정축재자로 꼽힌 기업인들이 일본의 게이단렌(경단련)을 모델로 한국경제협의회(회장·삼양사 대표 김연수)를 결성한 것이 모태다. 한경협은 민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5·16이 일어나면서 한경협은 해체되고 기업인 15명이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된다. 군사정부는 구속 기업인들을 43일 만에 다시 풀어주면서 이들에게 경제재건을 맡아달라고 주문한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경제재건촉진회’였고, 이 단체가 ‘한국경제인협회’를 거쳐 68년부터 지금의 전국경제인연합회로 이름을 바꿨다.
전경련은 현 김각중 회장까지 모두 10명의 회장을 맞았다. 물론 역대 회장 가운데 한번도 자신의 뜻에 의해 회장직을 맡은 경우는 없었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초대회장을 맡으며 전경련의 산파 구실을 했다. 다음은 대한유화의 이정림 회장이 맡았다. 전경련이 정치권과 밀월관계에 들어간 것은 세 번째 회장을 맡은 경방 김용완 회장 시절부터로 꼽힌다. 그는 금융인이던 홍재선씨에게 잠시 회장직을 넘기기도 했지만, 모두 10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전경련의 전성시대는 역시 10년간 재임한 현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 시절이다. 그는 재임 도중 전경련의 숙원사업인 회관 건축을 완성시켰으며, 이때 전경련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그는 “81년 5공 권력이 전경련 회장직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전경련 회장직은 회원들이 뽑는 것이지 권력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며 거절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구자경 LG 창업주는 87년 6·29 이후 전경련에 비난이 쏠리던 시절 회장을 맡았다. 90년대 초반 유창순씨가 역대 회장 중 유일한 관료 출신으로 회장직을 이었다. 이후 SK 최종현 회장이 97년까지 회장을 맡았는데, 그는 한국경제연구원을 확대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회장을 맡은 김우중씨는 대우그룹의 파산과 함께 해외도피 중인 가장 불운한 역대회장이다. 김각중 회장은 김용완 회장의 아들로 2대에 걸쳐 전경련 회장을 맡은 첫 사례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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