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 두코바니 원전 단지의 전경. 정책브리핑 누리집 갈무리
2025년 8월 언론보도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미국 웨스팅하우스 사이에 체결된 원전기술 사용 협정에서 한수원이 원전 1기 수출당 기자재 및 역무, 기술사용료로 8억2500만달러(약 1조2100억원)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이 협정에는 체코 원전의 경우 핵연료도 웨스팅하우스 제품을 100% 써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다만 구체적인 핵연료 공급 비용이 알려지지 않았고, 이를 체코 원전 수출에 적용할 경우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할 총비용의 윤곽도 불확실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법인인 EDU-II가 2025년 6월 체코 내무부 공공조달 공개 사이트에 등록한 한수원과의 두코바니 5·6호기용 약 10년치 핵연료 공급 계약액은 150억코루나(약 9600억원)로 확인됐다. 신규원전의 핵연료는 가동초기 원자로 노심 안정화를 위해 원전공급사가 책임지고 공급하는 관행이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하게 되었으니, 과연 누가 원전 공급 당사자인지 어이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결국 한수원은 두코바니 원전 건설비와 핵연료 공급 계약액 합계 27조원 가운데 무려 약 3조3천억원(12.2%)을 웨스팅하우스에 제공해야 한다. 심지어 이 항목 중 일부는 수출계약 체결 뒤 4개월 내에 지급해야 한다. 실제 한수원은 이 조항에 따라 2025년 10월15일 웨스팅하우스에 기술사용료 3억5천만달러(약 5천억원)를 지급한 것으로 국정감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체코 원전 수출계약은 웨스팅하우스에 대한 막대한 비용 지급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한수원은 2025년 5월7일 체코 현지 9개 기업과 하청 가계약을 체결했고, 루카시 블체크 체코 통상산업부 장관은 이를 통해 체코 현지 기업들의 사업참여율(건설비 기준)이 30% 이상 확보됐다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이 중 ‘두산스코다파워’의 비중 15~20%를 한국 기업으로 제외한다고 해도 건설비의 나머지 10~15%(2조6천억~3조9천억원)가 체코 현지 기업들에 제공돼야 한다. 이는 전체 체코 원전 수출액의 약 12%를 차지한다.
웨스팅하우스와 체코 현지 기업들에 지급돼야 할 비용을 합치면 무려 약 6조5천억원으로 불어나고 이는 한수원의 체코 원전 전체 수출액 중 약 24%를 차지한다. 국내 원자력계는 다른 국내 제조업들도 기술료를 내고 있기에 한수원이 체코 원전 수출에서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한 기술사용료 3억5천만달러는 큰 비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웨스팅하우스에 내야 할 물품 및 역무, 핵연료, 체코 현지 기업들에 사업 참여로 지급해야 할 액수를 뺀 말장난이다. 국내 대표적 제조업인 조선업이 2024년 한 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68척의 수주액 약 25조원에서 화물창 설계 기술이용료로 프랑스에 5%를 지급하는 것 외에는 이런 사례가 거의 없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체코 원전 계약은 한수원이 과거 경험해본 바 없는 이중격납 건물, 코어캐처(노심용융 사고시 격납용기 외부로 핵연료 유출 방지 설비), 냉각탑을 건설해야 하기에 막대한 추가 비용도 감수해야 한다. 이 중 기술 난도가 가장 낮은 냉각탑만 해도 2023년 미국의 발전설비 엔지니어링 업체가 평가한 미국 디아블로캐니언 원전 1·2호기에 대한 냉각탑 시공 견적액이 약 1조5천억원(11억2천만달러)이었다. 코어캐처와 이중격납 구조는 더 고난도의 안전설비로 잦은 설계변경과 천문학적 비용을 유발해 각각 원전을 건설 중이던 프랑스 아레바(2015년)와 미국 웨스팅하우스(2017년)를 파산시킨 원인 중 하나다.
물론 한수원과 한국전력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원전 건설 당시 ‘덤핑 수출’ 논란에도 UAE 노동법의 보호를 못 받는 동남아시아 인력을 대거 채용해 미국·유럽 대비 훨씬 낮은 인건비로 시공비를 크게 절감했다. 하지만 체코 원전의 경우 건설 인력의 대부분을 체코 현지 인력으로 채용해야 한다. 유럽의 상대적 고임금과 주 40시간제 등 엄격한 노동기준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만회할 길이 없다는 의미다.
2025년 8월 대통령실은 한수원-웨스팅하우스 간 원전 협정에 대한 언론보도로 비난 여론이 들끓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에게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김 장관 본인이 몸담았던 두산에너빌리티도 산업통상부도 이 협정에 이해관계가 있어 ‘셀프 조사’ 지시가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란 불가능하다. 역시나 김 장관은 2025년 9월 조사 결과를 발표할 거라고 호언했지만, 한수원이 협정서 관련 자료를 국회 상임위에 열람시키고 마무리하는 모양새다.
지난 1개월의 국정감사 과정에서 한수원의 전대욱 사장직무대행은 체코 원전 수출을 두고 유럽·미국 등 원전시장 동반 진출을 위해 이 협정이 전략적으로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김정관 장관도 ‘체코 원전 계약은 한계가 있지만, 유럽 원전시장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협정에는 한수원의 유럽·북미 시장 수출 불가 조항이 적시돼 있고, 협정 뒤 한수원은 실제로 체코를 제외한 유럽 시장에서 모두 철수했다. 둘 다 궤변일 뿐이다.
한수원은 지난 20여 년간 APR1400 원전은 독자 개발한 기술이라고 거짓 홍보를 했다. 게다가 특정 정권과 정치적으로 결탁해 가짜 원전 수출 신화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로부터 ‘노예계약’이라는 철퇴를 맞은 뒤에는 막대한 비용 지급을 숨기며 웨스팅하우스가 재정립한 사실상 원청-하청 관계를 국외시장 동반진출이라는 논리로 포장하고 있다. 결국 한수원은 공기업 지위를 이용해 천문학적 적자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체코 원전 수출 사업을 계속해 발생할 손실은 국유화하고 이익만 원자력계에 귀속시키려는 시도를 벌이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애초 어설펐던 ‘셀프 진상조사’ ‘웨스팅하우스와 협정 변경’ 논리가 공허한 결과로 끝난 마당에 체코 원전 수출계약에 대한 단호한 조치로 전환해야 한다. 한수원의 실패를 정부의 실패로 확대해 떠안아서는 안 된다. 막대한 적자가 뻔하게 예상되는 원전 계약을 막연하고 맹목적인 수출기업 지원 논리로 유지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정치적으로 결정된 체코 원전 건설계약을 파기하고, 이 건설계약에 근거해 이미 웨스팅하우스에 지급된 기술사용료는 원천무효화해 환수 조치를 해야 한다.
세계 원전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달콤한 원자력계의 미사여구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지난 수십 년간 정치권을 이용한 원자력계 마케팅은 시장 현실과 큰 괴리가 있다. 2002년 ‘원자력 르네상스’를 선언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2010년까지 원전 6기를 건설할 계획이었지만, 2024년에야 애초 견적의 3배를 넘는 비용으로 원전 2기를 간신히 건설했고, 웨스팅하우스는 건설 도중 파산했다가 겨우 회생했다.
원전은 서구의 안전규제를 넘어서기에는 너무나 비싼 에너지가 된 지 오래됐고, 이는 2025년 국제에너지기구의 ‘현재 건설 중인 세계 원전 52기 중 48기가 중국과 러시아산’이라는 보고와도 일치한다. 반면 2024년 건설된 세계 발전설비의 92.5%가 재생에너지였다. 대통령 임기 5년, 국회의원 임기 4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너무나 자명하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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