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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 ‘LNG 개발’에 수출입은행 등 3조원대 투자…현지 민간인 사망·인권침해 ‘나몰라라’

한국 기업에 현지 실태 고발하러 왔다가 만남 거부당한 모잠비크 활동가들 “프랑스 최대 투자 기업 4년째 사업 중단·네덜란드 재무부 자체 조사…인권침해·전쟁범죄 연루된 ‘나쁜 프로젝트’에 한국 투자 멈추라”
등록 2025-10-28 13:53 수정 2025-11-08 02:30
2025년 10월23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에서 모잠비크 환경·인권단체 ‘주스치사 앙비엔타우’(JA!)의 다니엘 히베이루와 케테 푸무 두 활동가가 기후솔루션과 함께 인권 침해, 환경파괴를 방조하는 삼성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후솔루션 제공

2025년 10월23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에서 모잠비크 환경·인권단체 ‘주스치사 앙비엔타우’(JA!)의 다니엘 히베이루와 케테 푸무 두 활동가가 기후솔루션과 함께 인권 침해, 환경파괴를 방조하는 삼성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후솔루션 제공


“밖에서 비명과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반군들이 사방에서 총을 쐈어요. 아침이 되고, 길거리에 시체들이 널려있었고, 반군들은 그 목을 자르고 있었어요.”(휴먼라이츠워치 2021년 8월)

“민간군사업체 소속 군인들은 백인들만 태웠어요. 우리는 ‘우리도 사람이에요' 소리쳤지만, 헬리콥터는 우리를 두고 갔어요.”(앰네스티 2021년 5월)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달렸지만 보트를 타기 전에 (반군으로 오인한) 정부군이 쏜 총에 모두 죽었어요.”(알자지라, 2021년 3월)

 

‘모잠비크 LNG 개발 반인권적 투자’ 국제사회 지적 잇따르는데…

 

2021년 3월24일 아프리카 모잠비크 카보 델가두 지역의 어업 도시 팔마시에서 벌어진 ‘팔마 전쟁’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미국 언론인 알렉스 페리가 약 1만3천 가구를 직접 방문·인터뷰해, 2011년 9·11 테러 이후 최대 인명피해인 1193명이 사망·실종했다는 참상을 밝혀 충격을 준 현장이다. 팔마 전쟁을 포함한 모잠비크 내전은 2017년 10월5일 북동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 주변에서 발발했다. LNG 등 개발사업이 가속화하면서 개발지 주변 토지 갈등과 군사화가 심해졌고, 지역 사회의 불만이 커진 것이다. 정부군과 반군은 물론 외국군과 민간군사업체들까지 뒤섞여 사망자만 수천 명 발생했고, 100만 명 이상의 실향민과 난민이 발생한 아비규환이 8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의 공적 금융인 한국수출입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는 모잠비크 LNG 프로젝트 관련 대출·보증 등으로 약 3조원을 투자(지원)했고, 2조5천억원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제공된 공적 자금을 바탕으로 한국가스공사·삼성중공업·대우건설·HD현대 등 대기업들이 현지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모잠비크 LNG 프로젝트 확대가 기지 주변 병력 집중과 군사적 긴장 고조로 이어지고, 학살·강제이주 등으로 귀결돼 ‘반인권적 투자’라는 국제사회 지적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대 투자자인 프랑스 대형 에너지 기업 토탈에너지는 ‘팔마 전쟁’ 이후 4년 넘게 사업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모잠비크의 환경·인권단체 ‘주스치사 앙비엔타우’(JA!)의 다니엘 히베이루와 케테 푸무 활동가가 2025년 10월19일 프랑스·미국·이탈리아·일본과 함께 모잠비크 LNG 프로젝트의 5대 투자국 중 한 곳인 한국을 찾았다. 현지 실상을 알리고자 한국수출입은행과 삼성그룹을 찾았지만 두 회사는 면담을 거부했다. 두 사람을 10월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모잠비크 환경·인권단체 ‘주스치사 앙비엔타우’(JA!)의 다니엘 히베이루(왼쪽)와 케테 푸무 두 활동가가 2025년 10월2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모잠비크 환경·인권단체 ‘주스치사 앙비엔타우’(JA!)의 다니엘 히베이루(왼쪽)와 케테 푸무 두 활동가가 2025년 10월2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내전 상황은 어떤가.

히베이루 “최근 석 달 동안에도 민간인이 정부군·반군에 의해 희생된 사례들이 다수 보고되고 있다. 정부는 반군의 통제가 가능한 것처럼 말하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반군은 오히려 더 넓은 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군사 충돌에 의한 인권 침해 사례 보고가 끊이지 않고, 최근(9월10일) 어민 16명이 정부군의 오인 공격으로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실제로 9월29일 UN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8월 한 달에만 519건의 ‘공격’이 보고됐고, 이는 2022년 전체 공격 횟수보다 많았다고 발표했다.

LNG 프로젝트 보호하느라 정부가 투입한 군사업체 만행 

—LNG 프로젝트가 이런 군사적 충돌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있다.

푸무 “2017년 반군의 첫 공격 뒤 토탈에너지 등 거대 외국자본들이 정부에 보안 강화를 요청했다. 모잠비크 정부는 LNG 프로젝트 보호를 이유로 보안군(군·경찰)을 투입하고 르완다 등의 외국부대는 물론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간 군사업체 등까지 대거 불러들였다. 대부분 급조된 부대라 훈련·급여·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민들을 약탈하고, 보호비를 걷고, 납치와 성폭행을 저질렀다. 군이 주민들에게 저지른 폭력 탓에 반군은 쉽게 신규 인력을 모집한다. 한 예로 이 지역엔 모아니 부족이 있다. 남성들은 배를 타고 주로 해안 따라 물건을 팔면서 2~3주 정도 집을 비운다. 군인들이 집에 들어와 여성과 아이들에게 ‘남편은 반군일 것’이라며 폭행·고문을 한다. 이런 상황을 목격한 아이들에게 ‘무기를 들라’는 반군의 설득이 얼마나 쉬울지 상상해보라.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반군은 영향력이 없었다. 2016년 4월 모잠비크 정부가 20억 달러 이상을 불법으로 대출받은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당시 국제금융기구(IMF) 등으로부터의 지원이 중단됐다. 한 해 예산의 절반 이상을 국외 원조에 의존하는 나라라 그 이후 3개월간 수도 마푸투에서조차 정부서비스가 셧다운된 건 물론이고 민간 상점까지 모두 문을 닫았다. 일부 청년들이 (반군 등의) 극단적인 선택지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현 다니엘 샤푸 대통령이 선출된 선거(2024년 10월9일)에선 결과 조작 의혹으로 인해 시위가 벌어졌고, 200명 이상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반군 세력의 확장은 건설적인 경로가 완전히 차단된 사회경제적 요인과 LNG 프로젝트가 결합한 결과라고 말한다.”

—LNG 프로젝트가 모잠비크의 국가 전체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을 것 같다.

푸무 “모잠비크의 국가 리스크는 최고 위험 등급이다. 투자자인 거대 외국기업들은 모잠비크 정부에 더 많은 보증과 유리한 조건을 당연한 듯 요구한다. 모잠비크 LNG 프로젝트에서 수익이 나면 은행 대출상황이 우선이고, 이후 기업이 경제적 목표를 달성한 뒤 모잠비크가 가장 마지막에 남은 수익을 나눠받는다. 지금 당장 가스 추출이 이뤄져도 2040년께가 되어야 모잠비크가 실질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모잠비크는 합법적으로 기업들의 조세회피도 인정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대부분의 기업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등록돼 있고, 그곳에서 세금을 낸다. 이런 계약이 가능한 이유는 모잠비크가 협상력이 부족한 데다 개발에 대한 절박함이 크기 때문이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제도·구조 자체도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고, 국가의 주권은 심각하게 제약받는다. 토탈에너지도 ISDS를 근거로 2021년 3월부터 개발 지연에 따른 손실을 전액 모잠비크가 보상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번 돈도 없는데 빚만 늘어나고, 주민들은 군사 충돌에 희생되거나 생업을 빼앗긴 채 강제로 이주당한다. 2009년 가스전이 발견됐을 때 국민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40% 수준이었지만 현재 100% 이상으로 늘어났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공통으로 겪는 이런 현상을 ‘자원의 저주’라고 하는 이유다. 또 모잠비크는 현재 전력의 80%를 수력으로 충당한다. 그런데 석탄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아프리카 최대 규모 LNG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명백한 퇴행이고, 전세계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일이다.”

 

LNG 개발 지역 산호초 집단 폐사·해양 포유류 이상행동 

 

—LNG 프로젝트 지역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퀴림바스 군도 지역과 겹친다고 들었다.

히베이루 “맞다. 모잠비크는 빈곤국가라 학술기반, 과학적 데이터가 부족하다. 어떤 종들이 살고 있는지 생태 기능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이런 사정을 다 알고서도 거대 외국기업들은 매우 제한된 과학적 정보만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미 해저 파이프 설치를 위한 준설로 이 일대 맹그로브숲과 산호초들이 집단 폐사한 사실이 확인됐다. 해양 포유류들이 부유식 LNG 플랫폼(FLNG) 소음으로 인한 청각 손상·스트레스로 번식 등 행동에 이상을 보인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한겨레21이 문의하니, 수출입은행 쪽은 “국감 기간이라 답변하기 어렵다” 하고, 삼성 쪽은 “할 얘기가 없는 것이 회사 입장”이라고 답해왔다.

히베이루 “유럽의 여러 은행·기업들도 접촉했지만 하나같이 ‘지금 이 프로젝트가 제안됐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프랑스 수사당국은 ‘팔마 전쟁’ 때 토탈에너지가 탈출하려는 주민들에게 연료 공급을 거부해 사상자를 낸 학살 방조 혐의로 2025년 3월부터 수사하고 있다. 프로젝트 지역 남쪽에서 도움을 청하러 온 주민 120여 명을 외국 거대기업들이 고용한 민간군사회사가 컨테이너에 가두고 고문·폭행해 생존자가 27명 밖에 안 됐던 사례도 있다. 2025년 2월 영국 수출신용 기관인 UKEF도 모잠비크 이탈 가능 여부에 대한 법률 자문을 받은 이유다. 같은 달 네덜란드 재무부는 학살 의혹에 대한 독립기관 조사를 지시했다. 그런데 한국은 만남 자체를 거부한다. 투자 규모도 그렇지만 한국은 LNG 선박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그 기술력은 다른 나라가 대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한국이 참여해야만, 인권침해·전쟁범죄, 과실치사 사건과 연루된 이 ‘나쁜 프로젝트’가 성립하는 구조다. 적어도 자체 평가를 하거나 국제적인 조사를 기다려 달라는 것이 저희 요구다. 시민사회와의 소통 없이 토탈에너지 등의 입장만 듣는 건 매우 편향된 접근이다.”

“영국 사업 이탈 자문, 네덜란드 독립기관 조사 지시”

이번 국회 국정감사 기간 수출입은행이 국회 정태호 의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내놓은 답변 자료를 보면 그간 현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경로가 얼마나 편향적이었는지 재확인된다. 수출입은행은 서면 답변서에서 “팔마 전쟁이 벌어진 이후에도 3차례에 걸쳐 보증을 연장했다”며 그 이유로 토탈에너지가 보낸 공문을 내세우며 “대주단(프로젝트에 참여한 은행 및 기업)이 고용한 치안 자문사를 통해 현지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토탈에너지 쪽에서 용병을 투입해 원주민들을 학살한 사례는 파악된 바 없다”고 밝혔다.

정태호 의원은 “사업을 둘러싼 안보-인권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수출입은행이 지속적으로 금융 보증 기한을 연장해오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이는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금융지원 결정 전-후 수출입은행의 리스크 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출입은행은 추가 금융 지원을 비롯해, 기존 금융의 연장 여부 또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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