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싱가포르에서 설립된 한국계 이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 큐텐의 자회사인 ‘티메프’(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대란으로 지난 한 달간 사회가 들썩였다. 이커머스는 부도 위기를 맞았고 정산받지 못한 판매자들은 파산에 내몰렸다. 피해 금액이 1조원 이상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티메프에서 결제한 상품을 받지 못한 소비자는 환불받지 못할까봐 발을 동동 굴렀다. 티메프는 연락이 두절됐고, 이를 대신해 카드사와 결제대행업체(PG·피지사) 직원들이 밤낮없이 소비자의 환불 신청을 처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태의 시작은 2024년 7월8일이었다. 이커머스 판매자 커뮤니티에서 “위메프가 정산금 지급을 하지 않는다”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피해자들은 적게는 1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정산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위메프를 인수했던 큐텐그룹은 7월11일 “전산 오류로 정산금 지급이 일부 지연됐다”고 밝혔다. 이후 금융당국의 발표를 보면, 큐텐의 입장 발표 당시 위메프는 491개 판매자에 대해 369억원가량의 대금을 정산하지 않고 있었다.
티몬은 “위메프 정산 지연은 티몬과 무관하다”는 공지를 올렸다. 티몬은 “판매자와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티몬은 정산이 미뤄진 적 없다”며 “온라인상의 각종 글과 언론 보도는 왜곡·곡해된 내용이 있다”고 밝혔다. 며칠 뒤 큐텐은 “정산 지연으로 피해를 본 판매자들에게 사과드린다. 7월 말까지 모든 정산을 완료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보상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티몬은 5일 만에 무기한 정산 지연을 선언했고, 이에 여행사를 중심으로 한 입점업체들이 티메프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결제대행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소비자들의 환불 신청이 중단됐다. 불안한 소비자들은 티메프 본사가 있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 중에는 가족과 여행하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으로 산 국외여행 상품이 물거품된 학생도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합동조사반을 구성해 긴급 현장점검에 나섰다.
‘전산상 문제’라던 큐텐의 입장은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추후에 드러났다. 7월30일 구영배 큐텐 대표는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기술적 문제와 재무적 문제가) 둘 다 겹쳐 있는 것으로 알았다”고 인정했다. 금융당국에 기술적 문제라고 허위 보고한 일에 대해서는 “제가 보고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돌렸다.
업계에서는 진작부터 큐텐의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티메프가 티몬캐시 등 선불충전금과 문화상품권을 대규모로 할인 판매했기 때문이다. 큐텐은 2022년 9월 티몬을 시작으로 인터파크커머스(2023년 3월), 위메프(2023년 4월), 위시플러스(2024년 2월), 에이케이몰(2024년 3월) 등 국내외 쇼핑몰 5곳을 인수했다. 업계에서는 큐텐이 ‘제2의 쿠팡’을 꿈꾸며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 몸집을 불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산 지연 사태가 처음으로 공론화된 직후 티몬은 현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다. 7월9일부터 이틀간 티몬은 정가 대비 10% 할인된 가격으로 티몬캐시를 판매했다. 구매한 티몬캐시를 4% 수수료를 내고 페이코 포인트로 전환하면 현금화할 수 있다. 특히 페이코로는 재산세 납부가 가능해 재산세 납부 시기인 7월에 맞춰 소비자의 수요가 더 많이 몰렸다. 7월10일 티몬은 페이코 포인트 전환 서비스 한도를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상향했다. 해피머니 등 문화상품권도 최대 10%가량 할인해 팔았다. 다만 일부 문화상품권에는 구매 후 약 4주 뒤에 발송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업계와 소비자 사이에서는 ‘현금깡’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번졌다. 상품권 판매로 부족한 현금을 채운 다음, 결제대금을 나중에 지급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해당 할인 조건이라면 티몬이 한 사람당 최대 12만원까지 역마진을 본다는 해석도 나왔다. 그만큼 큐텐은 현금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티몬·위메프는 ‘유통’(상거래)과 ‘결제’(금융거래)가 결합된 형태로 사업을 운영했다. 각각 공정위(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업)와 금감원(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지급결제대행업)으로 감독기관이 달라 한 곳에서 전담해 살펴볼 수 있는 체계가 아니었다.
각 기관의 소관 법에도 허점이 있었다. 우선 ‘유통’ 측면에서 보면, 티메프는 소비자와 판매자를 이어주는 ‘통신판매중개업’에 해당한다. 문제는 통신판매중개업자는 판매대금 정산에 관한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티메프가 최대 1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거래대금을 판매자에게 정산하지 않고 미룰 수 있었던 이유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은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라 상품이 판매된 달의 말일을 기준으로 40~60일 이내에 판매대금을 정산해야 한다. 이 기간을 초과해 지급하면 지연이자를 내야 하고 공정위는 이를 근거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등을 할 수 있다. 티몬·위메프는 이 같은 규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다음으로 티메프를 통한 ‘결제’ 과정을 살펴보면, 소비자→카드사→피지사→티몬·위메프(플랫폼)→입점업체(판매자) 순서로 대금이 흘러간다. 피지사는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결제를 대신 처리해주는 일을 한다. 케이지(KG)이니시스, 엔에이치엔(NHN)페이코, 나이스(NICE)페이먼츠 등이 피지사다. 이 피지사들은 카드사와 계약관계를 맺고 소비자가 결제한 카드사에서 대금을 받아 판매자에게 넘겨준다. 이 과정에서 티몬·위메프에 입점한 영세업체들이 피지사와 직접 계약을 맺기 쉽지 않기 때문에 티몬·위메프가 업체 대신 계약을 맺고 대금을 지급받아 판매자에게 정산해주는 2차 피지사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피지사는 금감원의 제대로 된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있었다. 금감원은 ‘허가’받은 업자에게만 경영 상황이 악화했을 때 경영개선 권고나 명령 등 강제 조처를 할 수 있다. 피지사와 같은 ‘등록’ 전자금융업자는 금감원이 강제 조처할 법적 근거가 없다. 경영 개선을 위한 업무협약 정도만 맺을 수 있는데, 티몬·위메프가 2022~2023년 금감원과 약속한 경영 개선을 이행하지 않았지만 금감원은 법적 제재를 할 수 없었다. 티몬·위메프를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 금감원이 권한의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한 이유다.
이런 법의 허점을 티메프는 십분 활용했다. 티메프는 다른 이커머스 업체와 비교해 정산 주기가 길었다. 티몬은 판매월 말일부터 40일 후, 위메프는 월 구매 확정 건의 다다음달 7일에 대금을 지급했다. 최대 70일까지 걸린다.
구 대표는 국회 정무위 회의에서 “위시플러스 인수 당시 티몬과 위메프 자금을 동원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티메프가 결제대금을 최대 70일까지 보유하며 운영자금 등으로 쓴 사이, 판매자들은 ‘선정산 대출’에 내몰렸다. 선정산 대출은 전자상거래업체를 통해 물품을 판매하는 이들이 은행으로부터 먼저 판매대금에 해당하는 만큼 돈을 빌리고, 은행은 이후 전자상거래업체에서 대금을 받는 상품이다. 판매자들이 당장 돈을 받지 못하니 은행에서 연 6% 내외 대출까지 받으며 사업 운용자금을 마련해왔다는 의미다.
사태가 터진 이후 부도 위기에 내몰린 티메프 대신 피지사가 환불에 나섰다. 이들은 티메프를 통해 소비자가 상품을 받지 못한 내역이 확인되는 대로 순차적 결제 취소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환불 조처가 이르면 며칠 내 완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일반 상품이 아닌 상품권과 여행 상품이다. 현재 환불이 보류돼 있다. 피지사는 상품권과 여행 상품에 대해서는 환불 주체를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상품권의 경우, 핀번호(상품권 온라인 결제시 사용되는 번호)가 발송되지 않았다면 용역이 제공되지 않은 것, 즉 상품이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피지사의 환불 대상이 된다. 하지만 핀번호가 전달됐다면 판매 절차가 완료됐으므로 상품권 업체가 환불 주체가 된다는 것이 피지사의 주장이다. 여행 상품도 마찬가지다. 여행 일자가 다가오지 않아 아직 여행을 가지 못했더라도 여행이 확정된 이상 여행사가 여행을 취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환불을 진행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해당 내용은 법리 검토를 받고 있다. 당정은 이 문제에 대해 “관계 기관과 적극적으로 공조하겠다”고만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8월6일 티메프 미정산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이커머스 업체 정산 주기를 단축하고 피지사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뼈대다. 정부는 이커머스 업체에 현재 대규모유통업체가 적용받는 규제(40~60일)보다 짧은 정산 주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판매대금을 보유자금과 분리해 별도 관리하는 규제도 도입한다. 은행 등 제3자가 결제대금을 보관하다 물품 배송이 끝난 뒤 판매자에게 돈을 주는 시스템을 마련해 정산대금을 쌈짓돈처럼 쓰는 관행을 막겠다는 것이다. 피지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피지사 등록 요건을 강화하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업무 정지, 등록 취소 등의 제재를 할 수 있도록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특히 금융당국은 유사한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전자상거래와 피지업을 분리하는 방안까지 제도 개선 방안도 고심하고 있다. 이커머스가 피지업을 겸영하지 못하게 외부 피지업체와 거래하도록 규정하는 식이다.
7월29일 구영배 큐텐 대표가 사재 800억원 출연을 약속한 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티메프는 회생법원에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을 신청한 바 있다.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 자율적인 구조조정 협의가 이뤄지도록 법원이 지원하는 제도다. 채권자가 11만 명으로 추산돼 판매자와 소비자 보상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채권 규모가 제각각이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최소 560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판매자는 저리로 신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기존 대출 만기는 최대 1년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긴급자금 대출 외에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구 대표는 “티메프 사태 해결을 위해 동원 가능한 그룹 자금은 800억원”이라면서도 “바로 다 투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모호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줄도산 위기에 처한 중소업체들은 정산받을 길을 찾기 어려운 셈이다. 8월1일 ‘티메프 소상공인 피해 대책 간담회’에 참석한 한 판매자는 “저희 셀러들은 도산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며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인데 도산할 거냐, 빚쟁이가 될 거냐다. 빨리 방안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이주빈 한겨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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