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삼성물산 부당합병 문제로 형사처벌의 기로에 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불법으로 한국 최대 기업집단을 승계한 것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재용 회장은 아버지에게 증여받은 ‘단돈’ 60억원으로 삼성 지배권을 확보하는 업적을 남기게 됐다. 더욱이 이번 수사는 윤석열 대통령(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이 수차례 압수수색을 벌여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등 19개 혐의로 기소한 건임에도 정부는 오히려 안도하는 분위기다.
삼성물산 합병이 이대로 지나가도 될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이번 판결로 건전한 기업지배구조를 정착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은 물론, 기업 경영권 승계에 매우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됐다. 더욱이 윤 대통령이 최근 수차례 강조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상장사 주식의 저평가 현상)를 악화해 외국인 투자자에게 부정적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학문적으로 ‘계열회사 간 합병’이라고 불린다. 이는 관계없는 회사 간 합병과는 다른 측면이 있어 상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계열회사 모두를 지배하는 자의 이익을 위해 합병회사 가운데 어느 한쪽 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고 이때 ‘소수주주에서 지배주주로 부(富)의 이전’이 일어난다. 삼성물산 합병 역시 이재용 회장과 일가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42.12%)이 삼성물산(1.37%)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로 책정되면서 이 회장 일가는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가져갔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주식 3.51%(약 8조원)도 갖고 있어 이 회장은 금전적 이익은 물론 지배력 강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만큼 국민연금을 비롯한 삼성물산 주주들은 손실을 봤다.
2019년 대법원은 삼성 미래전략실 주도로 이 회장을 위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실행됐고, 합병은 이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행해졌다고 판단했다. 이번 중앙지법 판결은 대법원 판단과 달리 합병 목적이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 사건의 출발선을 아예 뒤집었다. 합병이 경영권 승계와 함께 사업적 목적도 있었기에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기존 판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을 내렸다.
기존 판례를 살펴보면, 대법원(대판 99도1141)은 배임죄 판단과 관련해 “경영자의 자금지원의 주된 목적이 종업원의 재산 형성을 통한 복리증진보다는 안정주주를 확보함으로써 경영자의 회사에 대한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데 있다면, 그 자금지원은 경영자의 이익을 위하여 회사재산을 사용하는 것이 되어 회사의 이익에 반하므로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임무위배행위가 된다”고 판시했다. 또 대법원(대판 2010도11030)은 노동자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면서도 “쟁의행위에서 추구되는 목적이 여러 가지이고 그중 일부가 정당하지 못한 경우에는 주된 목적 내지 진정한 목적의 당부(當否·옳고 그름)에 의하여 그 쟁의목적의 당부를 판단하여야 하고, 부당한 요구사항을 제외하였다면 쟁의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쟁의행위 전체가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고 판시했다. 두 판례는 합병 목적이 복수이면 주된 목적 내지 진정한 목적으로 합병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주된 목적을 없애면 합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면 그 합병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이와 달리 이번 판결은 사실상 경영권 승계가 ‘유일한 목적’일 때만 부당하다고 판단해 대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향후 불법 승계의 길목을 터줬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더욱이 법원은 합병의 경과·비율·시점도 부당하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도 판단했다. 유죄 인정의 증거는 사실 판단의 문제여서 사실 기록을 보지 않고 비판하기는 쉽지 않지만, 합병비율마저 부당하지 않다는 부분은 이해하기 힘들다. 법원의 기본 입장은 합병비율이 관련 법령인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따라 산정돼 적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합병비율로 이 회장은 막대한 유무형의 이익을 챙긴 반면 국민은 손해를 봤는데 아무런 잘못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한 꼴이다.
합병비율 1(제일모직) : 0.35(삼성물산)의 주당 가치는 제일모직 15만9294원, 삼성물산 5만5767원이었다. 삼성물산 주식 가치가 8조6천억원이라는 평가다. 당시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주식(약 8조원)을 포함해 총자산 29조6천억원에 턱없이 모자라고, 청산가액(순자산액)의 3분의 2 정도다. 청산가치는 우호적 기업인수 거래에서 가격협상의 최저점이고, 회사가 청산될 때도 이는 보장된다. 즉, 삼성물산 주주들은 청산될 때보다도 못한 보상을 받았다. 특히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으로 11.21%의 지분을 보유해 부당한 합병으로 인한 피해자는 국민연금에 가입한 모든 국민이다. 삼성물산 가치의 심각한 저평가는 합병의 주된 목적은 물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판결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악화하는 결과를 낳을 전망이다. 삼성물산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돼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이 회장은 응분의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그런데 법원은 형식적 측면만을 보고 이런 실질적인 부당한 결과를 간과했다.
과연 항소심에서는 다른 결론이 날 수 있을까? 현재의 정치적 상황으로 봐서는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어본다. 항소심에서는 법원이 일반 사건과 동일한 기준을 평등하게 적용하고, 사건을 형식적으로만 보지 않고, 실질적인 면도 같이 봐주기를 말이다.
손창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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