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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업기획단, 삼성 컨트롤타워 징검다리 될까?

11월 사장단 인사에서 옛 미전실 징검다리 같은 ‘미래사업기획단’ 신설… 이재용 회장 전경련 탈퇴 이어 미전실 해체 약속마저 안 지킬 가능성
등록 2023-12-01 20:52 수정 2023-12-05 14:34
삼성전자 서울 서초 사옥. 연합뉴스

삼성전자 서울 서초 사옥.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2024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내면서 ‘미래사업기획단’을 새로 만들었다. 고 이건희 회장 시절인 2009년 신설한 ‘신사업추진단’과 비교해, 향후 옛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과 같은 삼성그룹 컨트롤타워가 부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반도체 실적 악화로 2023년 영업이익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0조원에 못 미칠 전망 속에서 기존 고위 임원들은 대부분 자리를 유지했다.

사장단 인사 통해 ‘미래사업기획단' 신설

삼성전자는 2023년 11월27일 사장단 인사를 내어 전영현 삼성에스디아이(SDI) 부회장(이사회 의장)을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앉혔다. 전 부회장은 2010년대 들어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과 함께 반도체 초격차(경쟁자가 넘을 수 없는 차이)를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신사업 발굴을 위해 부회장급 조직으로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해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의 기반을 마련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밝힌 조직개편 명분과 달리, 미래사업기획단이 과거 신사업추진단처럼 그룹 컨트롤타워 복원을 위한 징검다리 구실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고 이건희 회장은 삼성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로 2008년 4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동시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사임, 전략기획실 해체 등 경영 쇄신도 약속했다.

2023년 11월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에서 신설된 ‘미래사업기획단’을 맡게 된 전영현 삼성SDI 부회장(왼쪽부터)과 실적 부진에도 자리를 지키게 된 정현호 부회장(사업지원TF장), 한종희 부회장(대표이사 겸 DX부문장), 경계현 사장(대표이사 겸 DS부문장). 삼성전자 제공

2023년 11월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에서 신설된 ‘미래사업기획단’을 맡게 된 전영현 삼성SDI 부회장(왼쪽부터)과 실적 부진에도 자리를 지키게 된 정현호 부회장(사업지원TF장), 한종희 부회장(대표이사 겸 DX부문장), 경계현 사장(대표이사 겸 DS부문장). 삼성전자 제공

이후 ‘과거로의 회귀’는 2009년 12월 신사업추진단 신설을 시작으로 이뤄졌다. 단장에는 삼성SDI 대표이사이던 김순택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앉혔고, 같은 달 삼성 외곽을 돌던 이재용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회사로 돌아오게 했다. 2010년 3월엔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고, 11월엔 미전실을 만들었다. 미전실 수장은 신사업추진단장인 김순택 부회장이 맡았다. 2년 만에 경영 쇄신안이 형해화됐다.

이번 미래사업추진단 신설도 과거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이재용 회장은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뒤 2022년 7월 윤석열 정부로부터 복권받고, 같은 해 10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그룹 컨트롤타워는 세우지 않았다. 2016년 12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탈퇴와 미전실 해체를 약속했다. 2023년 8월 전경련이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통합하면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이름을 바꾸자, 삼성전자가 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 등과 재가입하면서 이재용 회장의 발언은 거짓말이 됐다.
미전실 부활은 아직이다. 2017년 해체된 뒤 세 개의 태스크포스(TF)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삼성전자엔 사업지원 티에프, 삼성생명엔 금융경쟁력 티에프, 삼성물산엔 이피시(EPC)경쟁력 강화 티에프가 만들어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비판 여론이 있을 수 있지만, 과거 신사업추진단이 만들어진 뒤 신수종 사업 발굴과 동시에 미전실 복원으로 이어졌던 흐름이 이번에 재현될 수 있다는 추정이 있다”고 말했다. 미래사업추진단이 향후 그룹 컨트롤타워 수립으로 연결될 경우, 이 회장은 국회에서 한 또 다른 약속마저 어기게 된다. 이에 삼성전자 쪽은 “신사업 발굴을 위한 조직을 만든 것으로 현재 컨트롤타워를 설립하려는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실적 부진 속 고위 임원은 자리 지켜

삼성전자는 또 정현호 사업지원티에프장(부회장)을 비롯해 한종희 부회장(대표이사 겸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경계현 사장(대표이사 겸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 체제를 유지했다. 삼성전자는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여 경영안정을 도모하는 동시에 핵심사업의 경쟁력 강화, 세상에 없는 기술 개발 등 지속성장 가능한 기반을 구축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안정 속 변화’(KB증권 김동원 분석가)라는 분석과 ‘위기감 없는 기존 체제 유지’란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2023년 매출과 영업이익 컨센서스(FN가이드 기준)는 약 26조원, 7조원 정도다. 영업이익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6조원)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반도체 부문만 보면, 2023년 영업적자가 14조원으로 점쳐진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이 회장이 강조한 ‘세상에 없는 기술’을 위해 새 조직을 만들었지만 옥상옥만 더 만들어지고 있다”며 “회사 상황이 심각한데 삼성전자의 기존 인사 원칙인 ‘신상필벌’을 하면 정현호 부회장 등 기존 임원들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어 이번엔 그냥 넘어가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력은 (반도체 업황이 회복되는) 내년에 나온다며 ‘업황’을 실적 부진 이유로 삼아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고 이건희 회장은 늘 ‘위기’를 강조했다. 그는 2010년 3월 회장 자리에 돌아오면서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삼성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밝혔다. 이때만이 아니다. “5년 후, 10년 후에 삼성이 무엇으로 먹고살지를 생각만 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2002년 4~5월 계열사 사장단 회의), “앞으로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2013년 10월 신경영 20주년 영상메시지) 등 위기를 수시로 강조했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책 <삼성웨이>에서 “(이건희 회장은)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건전한 위기의식을 조성해서 삼성의 임직원들이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 방안을 구축해 열정을 다해 일하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삼무원’(삼성+공무원) 신조어 등장

이재용 회장도 “위기는 항상 우리 옆에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2020년 5월6일 대국민 사과문) 등 위기를 강조했다. 하지만 선대 회장과 수준이 다르다. 오히려 ‘삼성’과 ‘공무원’을 합친 ‘삼무원’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삼성 내부에선 복지부동형 업무 태도에 대한 비판이 흘러나온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현업 부서가 아닌 지원 부서만 자꾸 비대해지는 상황으로 흘러간다”며 “차세대 리더는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데다, 전략적 판단은 나오지 않고 의사결정 구조는 너무 길어 실행 속도는 공무원 조직처럼 매우 느려진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임원도 “이번 인사는 어떤 시그널도 주지 못하는 아무것도 안 한 인사”라며 “기술 중심 회사에서 인재가 성장하지 못한 상황으로 내년에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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