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 전세로 사는 김미래(39)씨는 2022년 11월 인천지방법원이 보낸 우편물 한 통을 받았다. ‘부동산임의경매’라고 쓰인 공문이었다. 집주인이 대출이자를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 이후 문 앞에는 법무사 사무소가 보낸 광고 유인물이 하나둘 쌓였다. ‘경매를 처음 접하셨다면? 인도명령 후 낙찰인의 이사 독촉 협박… 이 모든 일은 경매 종결시 임차인께서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광고에 적힌 글귀였다. 감정평가사도 찾아와 경매에서 팔릴 집의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며 자꾸 집 내부를 보여달라고 했다.
경매로 넘어가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방 3개짜리 18평 빌라인 김씨 집의 전세보증금은 5500만원이다. 2021년 10월 계약 당시 집주인이 잡아둔 근저당 1억4300만원이 있어 보증금이 저렴했다. 김씨는 보증금이 너무 낮았지만 위험하리란 의심조차 들지 않았다. 중개인이 적극적으로 안심시켜서다. “계약 때 ‘빚이 있으면 위험한 거 아니냐’고 물으니, 2021년 가을 제가 들어온 무렵부터 집값이 갑자기 폭등해 시가로 치면 2억원이 넘는 집이라고 했어요.”
김씨가 사는 건물의 다른 세대는 시세가 1억4천만~5천만원 수준이다. 선순위 근저당 액수와 거의 동일하다. 경매에서 집이 낙찰되면 김씨까지 돈을 받을 차례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얼마 뒤 김씨는 이 빌라의 다른 집들도 경매에 넘어간 사실을 알았다. 김씨처럼 전세보증금을 떼일 위험에 처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피해자들은 사태 파악을 하는 과정에 피해 아파트들의 임대인과 이를 중개한 공인중개사들끼리 조직적 움직임이 있었음을 파악했다. 특히 특정 공인중개사사무소 7곳을 통해 거래된 경우 피해자들은 계약 당시 집주인을 만나지 못했으며 대리인이 된 공인중개사와 계약했다. 이 가운데 한 중개인은 다른 피해 ‘나 홀로’ 아파트의 임대인이기도 했다.
<한겨레21>이 미추홀구의 주요 피해 주택건물 4동 182세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한 건물 전체를 한 사람이 소유하거나 몇몇 임대인이 세대를 나눠 갖고 있었다. 예컨대 ㄱ오피스텔은 40세대 모두 소유자가 홍아무개씨로 동일했다. 근저당도 2019년 5월17일 한 자산관리회사 앞으로 1억3800만원씩 똑같이 잡혔다. 이 집들은 모두 2022년 11월17일 경매로 넘어갔다. 세입자들이 자체 집계해보니 40세대의 총임대보증금은 28억3020만원이고 소액임차보증금에 적용받는 최우선변제금 11억2200만원을 제외하면 17억820만원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됐다.
피해자들은 이와 같은 깡통전세 사태의 정점에 ㅅ건설 남아무개 회장이 있다고 본다. 남 회장은 2013년부터 미추홀구에서 아파트·오피스텔을 지었다. 피해자들이 남 회장의 계열사 및 남 회장이 배후에 있다고 파악하는 피해 주택은 60여 채 2800여 세대에 이른다. 예컨대 60세대로 이뤄진 ㄴ아파트는 남 회장이 사내이사로 있었던 ㅊ건설사가 지었다. 남 회장 회사의 직원들은 공인중개사로도 일했다. 주요 피해 아파트들은 공통적으로 한 관리업체가 관리를 맡았는데 이 업체 대표는 남 회장의 ㅅ건설업체 이사 김아무개씨로 등재돼 있다. 남 회장은 미추홀구에서 벌인 주택임대사업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강원도 동해경제자유구역 망상 제1지구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세입자들에게서 받은 보증금도 개발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사업이 진척되지 못했고 금리는 오르기 시작했다.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자 2022년부터 집이 하나둘 경매로 넘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2022년 말 피해자들은 ‘미추홀구 전세사기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미추홀구는 인천의 한가운데쯤 있는 구도심이다. 주택실거래가가 종합된 ‘호갱노노’ 앱에서 계산한 미추홀구의 주택매매 평균가격은 2023년 1월 기준 2억2천만원으로 강화군을 제외한 인천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낮다. 인천 평균은 3억3천만원이다. 이곳에선 다른 지역보다 땅값을 활용해 빌라나 한 동짜리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이 유행했다. 이 지역을 잘 아는 ㄱ씨는 “미추홀구가 3~4년 전부터 집장사 하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면서 빌라 재개발이 엄청 이뤄졌다. 대형 아파트를 지으려면 땅을 크게 확보해야 하는데, 구도심이라 소유관계가 너무 흩어져 있어 대규모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워 빌라를 많이 지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피해가 커진 이유로는 거래가 적은 단독·다가구·빌라 등 주택이 밀집해 상대적으로 주택 가격이 불투명한 측면이 있다. 통계청의 주택총조사 자료를 보면 미추홀구는 전체 주택에서 다세대·연립주택·오피스텔의 비중이 41.9%로, 인천 시내 8개 구 가운데 가장 높다.
남 회장 사건 외에도 ‘20대 빌라왕’ 송아무개씨(2022년 12월 사망)가 이 지역에서 빌라 등을 갭투기하며 전세사기에 가담했다. 국토교통부가 2022년 12월 경찰청에 수사 의뢰한 전세사기 의심 106건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 52.8%, 인천 34.9%, 경기 11.3%였다.
전세사기의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빌라왕’ 전세사기는 이른바 건축주·임대인·중개인 등과 짜고 세입자에게 시세를 속여 집값보다 더 많은 전셋값을 받아챙기는 방식이다. 컨설팅업체가 이를 기획하고 ‘빌라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들은 대체로 명의만 빌려준 ‘바지 임대인’이다.
반면 ‘건축왕’으로 불리는 남 회장은 사기 혐의에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 남 회장의 계열사들은 집을 짓고 선순위 근저당이 잡힌 상태에서 이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전세보증금으로 받았다. 세입자가 이를 알고 계약했으므로 자신들이 속이려 한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다만 전세보증금과 부채가 집값에 육박해 깡통전세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전세사기와 피해 내용이 본질적으로 같다.
피해자들은 중개인들이 이런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안전한 매물’이라 강조했다고 한다. 집이 경매로 넘어간 30대 자영업자 ㄴ씨는 “처음 계약할 때 좋은 집인데도 전세금이 싸다는 생각은 들었다. 방 4개짜리 18평에 전세금이 8500만원이었다”며 “집에 근저당 잡힌 것에 대해 공인중개사에게 물으니, 중개사는 임대인의 통장을 보여주며 ‘돈이 많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특히 공인중개사가 가입하는 ‘공제증서’를 보여주며 “이게 있으면 다 보험 처리된다. 사고가 터지더라도 2억원까지는 보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제증서의 보상한도는 중개사가 가입 기간에 발생한 모든 사고에 대한 보상한도다. 가입 기간에 사고가 10건 터지면 전체 한도 2억원을 10명이 나눠 받는다는 의미다.
이 사건에서는 ‘이행보증서’라는 문서도 등장한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주지 못할 경우 중개인이 대신 갚아주겠다는 일종의 각서인데 세입자들이 이를 믿고 말았다. 피해자들은 계약을 중개한 부동산중개업소들이 대체로 폐업하고 사라져 보증금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피해 아파트 전세계약이 이뤄진 공인중개사사무소 한 곳을 직접 가보니 문을 닫고 모든 집기를 빼놓은 상황이었다. 간판에도 대표자 이름이 가려져 있었다. 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김아무개씨는 “(피해자) 대부분 이행보증서 등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 토박이 공인중개사 ㄷ씨는 “이미 대출이 1억원 있는데도 5천만~6천만원 전세를 내는 건 안 한다. 경매에 넘어가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모르는 분들은 혹하고 와서 그런 집의 사진을 보여주고 찾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근 변호사(세입자114 운영위원장)는 “남 회장은 직원들을 동원해 한 명은 집주인, 한 명은 부동산중개사, 또 본인 회사가 오피스텔 관리업체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식으로 일종의 자신들의 세계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남 회장의 사기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이 추산한 피해액은 266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남 회장은 회사 경영상 어려움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을 뿐 사기 의도가 없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남 회장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그는 2022년 12월23일 법원에 “동해 사업부지 매각 등으로 자금을 마련해 세입자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정상화 대책을 냈고,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러나 안상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장은 “지금도 남 회장은 낙찰가 1억원 초반 피해 아파트들을 2억5천만~4억원 정도 시세라며 분양해서 차익으로 변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피해 상환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깡통전세의 위험은 전국으로 번져 있다. 언론에서는 미추홀구나 서울 강서구 등 수도권 사례가 자주 언급되지만 비수도권의 피해 우려가 더 크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 주택 가운데 집주인의 부채비율이 집값의 80% 이상인 주택의 비중은 54%였다. 지역별로는 경남(73.6%), 전북(69.7%), 경북(66.9%), 부산(64.1%), 충북(62.4%), 충남(62.3%) 등에서 깡통주택 비중이 높았다.
더 큰 문제는 현재로선 깡통주택을 막을 법적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2022년 하반기부터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정보 제공 확대, 피해자 지원 등 대책을 발표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일이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현재는 제도 미비로 임대인이 지금 집 몇 채를 가졌는지, 충분한 자본이 있는지, 세금 체납이 없는지, 과거 전세사고를 일으킨 적 없는지, 세입자들의 보증금 총액이 얼마인지 등 중요한 정보가 세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정보 확대를 위한 제도 보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도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3년 1월11일 결의대회를 열어 1월부터 임대차계약서에 세입자 권리 보호 특약을 넣기로 했다. 세입자가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는 다음날까지 집주인이 담보권을 설정할 수 없다는 내용, 임대인의 세금 및 근저당권 이자 체납 사실 여부, 임대인이 주택을 팔 경우 사전 고지 등이다. 정부는 1월 중 추가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인천=글 이정규 기자 jk@hani.co.kr·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전세계약을 할 때 주변 시세를 확인해 해당 집의 가격이 적정한지 확인한다. 등기부등본을 떼어 근저당권이나 선순위채권을 확인해 부채 규모를 확인한다. 전세보증금 피해가 발생할 경우 근저당권 등 순위에 따라 변제되므로 보증금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채권 규모를 확인해 자신이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금 규모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보통 전세보증금과 집주인의 부채가 집값의 80%에 이르면 ‘깡통주택’으로 분류하는데, 최근처럼 집값 하락기에는 80% 수준이라도 안전하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등기부등본은 잔금을 치르기 직전에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계약일과 입주일 사이에 임대인이 자신과 계약한 집을 담보로 빚지거나 매매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가구주택에 세입자들이 거주한다면 이들의 보증금 총합이 얼마인지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이들이 우선변제권을 갖기 때문이다. ‘다가구 전입세대 확정일자’ 서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계약한 뒤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런 문제로 최근 법이 개정돼 2023년 4월 이후 계약부터는 집주인의 동의 없이도 미납 국세 현황을 열람할 수 있다.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임대인 본인이 아닌 대리인을 내세우는 경우 전세사기일 가능성이 크므로 반드시 임대인을 확인해야 한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는 내용증명을 보내고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한다. 전세금반환소송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 소송에 비해 소요기간이 짧은 지급명령을 먼저 신청한다. 더 자세한 ‘전세사기 예방 및 대응방법’은 주택도시보증공사 전세사기예방센터 누리집(khug.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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