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깨졌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어려움의 근원,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약속이었다. 갈등이 격렬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두 전선“지난 2년 최저임금 인상과 정책 대응은 저임금 노동시장과 산업에 대한 어마어마한 고민거리를 끄집어냈는데, 표면적인 갈등만 부각되고 그때그때 이를 덮는 데 급급했다. 근본적인 고민을 공론화하고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흐지부지된 상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2년 최저임금 논쟁을 이렇게 평가했다.
‘표면적인 갈등’은 크게 두 전선에서 벌어졌고 정부도 나름대로 답을 내놨다. ①지금 당장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고통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가. 정부는 해법으로 재정을 풀었다.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 근로장려세제(EITC)를 대폭 확대했다. 자영업자를 위해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했다. ②최저임금 인상은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정부는 ‘속도 조절론’으로 대응했다.
2020년 최저임금은 2.9% 오르는 데 그쳤다. 경영계는 이참에 주휴수당 폐지와 업종·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대표 9명은 납득하지 못하고 위원직을 사퇴했다. 노동자 단체는 총파업을 벌였다. 갈등은 또다시 되풀이된다.
그렇다면 흐지부지된 ‘근본적인 고민거리’는 무엇일까? ‘협상력 없는 저임금 노동자의 증가, 그리고 여기 기댈 수밖에 없는 저부가가치 산업의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다. 거창해 보이지만 공장 경비 노동자가, 프랜차이즈 편의점주가 최저임금에 대해 일상처럼 듣고 말하게 된 문장 속에 이미 담겨 있던 고민이다. 당장 답을 꺼내기 쉽지 않지만, 그래서 내놓고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할 고민이기도 하다.
강진석(61·가명)씨는 정년퇴직하고 운 좋게 경기도 안양에 있는 한 자동차부품 공장에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아침 7시 공장에 나가 다음날 아침 7시 공장을 나서는데, 휴게시간을 빼면 하루 20시간 정도 격일로 일하는 셈이다. 드나드는 차량과 사람을 기록하고 공장 설비를 지킨다. “당연히 최저임금”을 받는다. “여기 있어보니 최저임금 받는 사람 투성이라는 게 실감 난다.” 강씨가 말한다. 대부분 고령인 경비원 동료들, 청소 노동자들,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조카뻘 생산직원 모두 ‘최저임금 노동자’다. 그와 주변 동료들에게는 임금협상, 연공급 같은 자리를 이제 최저임금이 대신한다. 최저임금 협상철만 되면 “예민한 분위기가 돼버리는” 이유다. “최저임금 아니면 우리끼리 어디 가서 제대로 된 임금 인상을 기대하겠어요?” 강씨가 묻는다.
강씨 같은 노동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자력으로 기업과 임금협상이 가능했던 중년 남성·정규직·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1차 노동시장’의 시대가 저문다. 특히 고령층 노동자가 이들을 대신해 노동시장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인구와 정책, 산업 변화가 맞물린 탓이다. 고령화에 따라 전체 노동시장에서 취업자 수 증가를 이끌던 나이대는 대략 2007년까지 40대, 2014년까지 50대였다가 이후 60살 이상으로 올랐다. 여성 고용 확대가 정책 목표로 자리잡으면서 여성 취업자 수 증가폭도 2015년부터 남성을 앞질렀다. 비정규직이 여전히 만연한데다 최근에는 사실상 노동자이지만 근로계약조차 없어 자영업자인 셈 치는 특수고용노동자 범주에 드는 플랫폼 노동자도 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노동시장에서 약자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이다. 60살 이상의 45.5%, 여성의 25.3%, 임시직의 44%가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기준 중위임금(임금수준에 따라 일렬로 늘어세웠을 때 가운데 자리한 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상대적 저임금 노동자’로 분류된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개별적으로는 저임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대거 진입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에 따라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감소 압박도 커지게 된다. 최저임금 같은 선이 아니면 임금 양극화가 극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노동시장이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점점 더 많은 이가 최저임금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임금협상’에 기대게 된다는 의미다. 그대로 두고 볼 수만도 없지만, 현재로써 최저임금 외에 뚜렷한 대안도 없다.
이들의 일이 너무 오랫동안 용돈벌이, 그냥 가서 해주는 일 수준의 주변부 노동으로 치부돼 노동정책 사각지대에 속한 것도 고민거리다. 2018년 기준 전체 노동자 가운데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비율(최저임금 미만율)이 60살 이상에서 41.6%(경제활동인구조사 기준)에 이른다. 임시직(38.5%)과 여성(21.8%)도 높은 수준이다. 특히 65살 이상 노인의 경우 여전히 신규 고용보험 가입 대상도 아니다. 복지의 대체재에 가까운 이들의 일을 공식적 노동으로 규정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복잡한 상황도 자리잡고 있다.
“경쟁력 없는 게 내 탓인가요”최종열(54)씨는 대구 동구 율하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한다. 5년 전 처음 가게를 열 때만 해도 한 달 장사하면 그의 몫으로 500만원 넘는 돈이 남았다. 지금은 대개 100만원대, 장사가 잘되는 여름철에도 200만원 어간에서 수입이 왔다 갔다 한다. 5년 사이 반경 300m 안에 편의점 4곳이 더 생겼다. 매출 하락으로 “멘탈이 무너지던 와중에” 최저임금이 올랐다. 최씨는 아르바이트 5명을 고용한다. 7(점주) 대 3(본사)으로 매출을 나누지만 점주 몫에서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비롯한 비용이 나간다. 최저임금에 예민한 이유다. “형태는 자영업자인데 본사에 고용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최씨는 말했다. “비용은 우리한테만 쏠리고 수익은 위로 올라가는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경쟁력 없는 게 제 탓인가요?”
최저임금을 노동이 아닌 산업 측면에서 읽으면 ‘최소한 이 정도 임금을 줄 만큼 능력 있는 업체만 유지될 수 있다’는 일종의 생산성 규율이 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영세 자영업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가격을 올리거나 제품 질을 높여 부가가치를 키우는 선택지가 있다. 아니면 고용(시간)을 줄이고 그마저 힘든 업체는 폐업해 비용을 줄여야 한다. 초점은 주로 비용 절감에 맞춰졌다. 최저임금 인상이 결과적으로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는 것은, 그래서 아픈 일이다. 자영업자들의 매출 상황이 나아졌다기보다 비용을 졸라맨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측정한 2018년 서비스업 생산성(시간당 노동투입량에 대한 부가가치 비율) 증가율은 3.5%였다. 전년(1.7%)보다 가파르게 올랐는데, 부가가치 증가율이 예년 수준을 유지한 반면 노동(시간) 투입이 감소로 돌아서면서 나온 결과다.
다른 길은 없었을까? ‘공정경제’가 제시되기도 했다. 산업의 끝단에서 건물주, 원청, 프랜차이즈 본사의 비용을 떠안고 있는 영세 상공인들의 부담을 공정하게 덜어 수익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산업 전체의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폐업해야 할 자영업과 살아남아야 할 자영업을 솎아내는 데도, 먼저 자영업자들이 납득할 만한 거래 구조가 자리잡혀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경영 악화가 능력이나 적성 부족보다 불합리한 거래 구조 탓인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정부가 본인을 위해서도 폐업하고 임금노동자가 돼야 한다고 이야기해봤자 반발만 살 뿐이다.”(기획재정부 관계자)
정부는 최저임금이 7% 이상 오를 경우 하청기업이 하도급 대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근접 출점 제한과 심야영업 강요 금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편의점 업계 자율규약을 유도했다. 최저임금과 공정경제를 이어보려는 시도다. 효과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진행한 중소제조업 하도급 거래 실태 조사에서 조사 대상 507개 하청업체 가운데 78.5%가 여전히 “납품단가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프랜차이즈 분야에서도 최저임금과 임대료처럼 늘어날 만한 부담은 여전히 가맹점주 몫으로 남아 있다.
격화되는 최저임금 논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자리 안정자금, 근로장려금 확대 같은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노동·경제 정책이 등장했다. 다만 “애초에 정부는 최저임금이 저부가가치 산업 변화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 거대한 문제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책의 정밀함이나 논의 수준은 당장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급조됐다는 느낌이 강하다”(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깨졌다. 하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최저임금은 결정된다. 강진석씨와 최종열씨와 그의 동료들은 그사이 오가는 말들에 또다시 귀를 기울이고 자기 자리에서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말들을 이어갈 터다. 개인적인 하소연이되, 일과 산업의 미래와 이어진 말들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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