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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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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과 미세먼지의 엉뚱한 만남

미세먼지로 기세 올리는 친원전 담론의 이면
등록 2019-03-28 10:23 수정 2020-05-03 04:29
3월6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서울 풍경. 한겨레 박종식 기자

3월6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서울 풍경. 한겨레 박종식 기자

풀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란 표현을 자주 입에 올린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얽히고설킨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린 데서 유래한 말이다. 연일 계속되는 고농도 미세먼지로 온 나라가 신음하다보니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해결책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진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중국과 국내 요인(제조업·화력발전·경유차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 번에 매듭을 풀기 어렵다. 고농도 미세먼지의 절반(3월20일 미세먼지 범부처 프로젝트 사업단 발표)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영향은 외교적 노력과 공동연구 등으로 풀어야 하고, 국내 요인은 배출원별로 문제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정부는(2014년 초미세먼지(PM2.5) 기준) 미세먼지 국내 배출원 비중을 사업장 38%, 건설기계 선박 16%, 발전소 15%, 경유차 11% 등의 순으로 집계하고 있다. 발전소는 석탄화력발전이 미세먼지 대부분을 차지한다.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업장은 단속과 설비 개선으로, 경유차는 노후 경유차 폐차·저감장치 부착 지원과 액화석유가스(LPG) 차량 일반인 판매 허용 등으로 미세먼지 문제를 풀려 한다. 경유세 인상 카드도 검토 중이다.

원전 가동 안 해서 미세먼지 늘었다고?

매듭이 가장 복잡하게 얽힌 곳은 발전소다. 4월 중 발표 예정인 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204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35%로 늘리겠다는 안을 검토 중인데, 원전과 석탄화력발전 감축 여부와 신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의 현실성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탈원전 때문에 미세먼지 문제가 심해졌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탈원전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와 “탈원전·탈석탄을 동시에 진행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부딪치고 있다.

미세먼지의 책임을 탈원전으로 돌리는 주장은 원자력계와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미세먼지 범사회적 기구 위원장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추천했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반 전 총장이 위원장을 수락하자마자 3월18일 “탈원전 정책의 전면 폐지와 원전 산업 육성을 통해 미세먼지 문제 해결과 함께 국가 경제 부흥의 길을 열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원전 이용률(연간 최대 가능 발전량 대비 실제 발전량의 비율)이 37년 만에 최저치인 65.9%로 집계돼,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늘어나 미세먼지가 악화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원전 발전량 추이와 석탄화력발전소의 미세먼지 배출량 통계 등을 살펴보면 억지에 가깝다. 실제로 80%대 이상이던 원전 이용률은 2015년 85.3%, 2016년 79.7%, 2017년 71.2%, 2018년 65.9%로 하락세를 보인다.

최근 3년간 원전 이용률이 줄어든 것은 원전 격납건물 철판 부식, 공극(빈 공간) 발견 같은 콘크리트 결함 등으로 원전 정비 일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6년 1769일이던 국내 전체 원전 정비 일수는 2017년 2565일, 2018년 2917일로 늘어났다. 2016년 6월 전남 영광 한빛원전 2호기에서 격납건물 철판 부식이 발견돼 원전 전체를 점검한 결과 다수 원전에서 결함(철판 부식 9기. 콘크리트 공극 13기)이 발견됐다.

원자로를 감싸는 둥근 돔 형태의 격납건물은 사고가 날 경우 방사성물질 누출을 막는 설비다. 원전 안전성과 직결된 문제로 정비 없이 무턱대고 재가동할 수 없다. 원전 운영을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는 “원전 안전성 강화 차원에서 정비 일수가 늘었고, 계획예방정비 기간 역시 늘었다”고 밝혔다. 원전 이용률은 정비가 끝난 원전이 재가동하면서 올해 1월 72.3%, 2월 72.1%(한수원 집계)로 70%대를 넘겼다. 사고나 결함이 추가로 나지 않을 경우 원전 이용률은 올해 다시 80%대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탈원전이라는 표현이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원전 설비는 기존 계획에 따라 3기(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 늘어난다. 정부가 원전 비중을 줄이겠다는 것은 설계 수명이 끝난 원전의 가동을 연장하지 않고 신규 원전 건설을 억제하면 2030년 전후로 원전 설비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전망치다.

더디기만 한 ‘탈석탄’

미세먼지 대책으로 ‘탈석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탈석탄을 내세웠음에도 최근 3년간 석탄발전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를 보면 석탄화력발전량은 2016년 213.8TWh, 2017년 238.8TWh, 2018년 238.2TWh로 문재인 정부 들어 증가세를 보였다. 원전 발전량이 줄어들면서 석탄화력발전 비중이 늘어났고, 이전 정부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신규 가동하는 석탄화력발전소도 늘었다. 지금도 이전 정부의 계획에 따라 7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정부는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발전소(6기)라 건설을 막을 수 없다고 하지만 환경단체는 정부의 탈석탄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에 탈황 설비 등 환경 설비를 개선해 미세먼지 배출이 줄고, 미세먼지가 심한 봄철에 계획예방정비를 실시해 가동을 줄인다고 하지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되면 이후 석탄 발전량·설비량 총량은 크게 늘어난다. 정부는 최근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6기의 조기 폐쇄를 검토하기로 했다.

결국 앞으로의 대책은 석탄화력발전소 비중을 줄이면서 무엇으로 메우냐에 달렸다. 현재 발전소 설비와 전력생산량은 충분하다. 올겨울(12~2월) 가장 추웠던 지난해 12월28일을 기준으로 발전소의 설비예비력은 33.0GW(설비예비율 38.3%), 공급예비력은 14.8GW(공급예비율 17.1%)로 집계된다. 1GW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 15기가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이 남았다는 이야기다. 결국 정부와 전문가들이 무게를 두는 미세먼지 대책은 ‘환경 급전’(환경 비용이 적게 드는 발전부터 먼저 가동)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 전환이다.

그동안 전력 생산은 경제성의 잣대로 가장 싼 원료를 쓰는 발전소(원전·석탄화력)를 우선순위로 가동했는데, 정부는 환경 비용을 고려하는 환경 급전을 올해 시행할 계획이다. 환경 급전을 하면 원료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오염 물질이나 폐기물이 적은 LNG 발전의 비중이 늘어날 수 있다. LNG 발전 역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미세먼지는 석탄화력발전소보다 최대 8분의 1 적게 배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열린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 발대식에서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열린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 발대식에서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 급전’ 실시하면 원전도 석탄도 후순위

원자력계와 일부 야당은 미세먼지와 온실가스에서 자유로운 원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발전 설비가 부족하지 않고, 원전이 더 이상 ‘값싼 에너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계속 드러나는 중이다. 당장 원전 터 안에 임시 보관으로 포화 상태에 다다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 핵연료) 처리에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명을 다한 원전의 해체 비용과 원자력 사고 발생시 손해배상 금액의 현실화, 안전 기준 강화로 계속 늘어나는 건설비 등을 고려하면 원전 역시 싼 에너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미세먼지 배출원에서 발전소 비중을 줄이기 위한 장기적 대안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달렸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대안이기도 하다. 8차 전력수급계획은 2017년 발전 비중의 5.6%를 차지하는 신재생에너지를 20%로 늘리고 원전은 26.8%에서 23.9%로, 석탄화력발전은 43.1%에서 36.1%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4월 중 발표 예정인 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2040년까지 30~35%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으로 삼는 전기차·수소차 확대와도 연결된다. 친환경에너지로 생산한 전력 비중이 늘어야 전기차와 수소차가 실제로 화석연료차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전기요금 인상’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전과 석탄화력발전보다 상대적으로 원료 가격이 비싼 LNG 발전 비용이 늘어나고, 신재생에너지가 ‘그리드 패리티’(기술 개발로 화석연료와 신재생에너지 발전 원가가 같아지는 시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생길 수 있다. 계산 방식이 달라 각각 다르지만 녹색당·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정부가 지금의 정책 방향을 유지한다면 2030년 전기요금은 가구당 최소 3천원, 최대 1만5천원 사이에서 오를 것이라 한다. 물론 이는 예상치다. 정부는 현재 “당장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세먼지가 덮은 중요한 질문들

결국 핵폐기물 처리와 안전에 대한 불안, 미세먼지와 온실가스의 공포를 감수하고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쓸지,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기술 개발 등을 기다리며 전기요금을 더 낼지를 놓고 사회적 논의가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는 무한정 미룰 수 없는 사안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원전과 석탄화력이 더 이상 값싼 에너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피할 수는 없다. 전기요금 현실화를 피할 수 없다면 정부가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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