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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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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배송도 사람이 하는 거에요"

전날 주문받아 이튿날 아침 7시까지 배달 ‘새벽배송’ 속도전…

배송 기사들 고된 밤샘 운전에 수면장애 고통
등록 2019-01-05 15:11 수정 2020-05-03 04:29
새해를 갓 맞은 1월1일 자정, 경기도 김포의 한 물류타워가 등대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이곳 지하에 있는 마켓컬리 TC(배송 차량 터미널)에서 새벽 배송을 하는 노동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서보미 기자

새해를 갓 맞은 1월1일 자정, 경기도 김포의 한 물류타워가 등대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이곳 지하에 있는 마켓컬리 TC(배송 차량 터미널)에서 새벽 배송을 하는 노동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서보미 기자

늦은 밤, 아이를 토닥여 재우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던 순간, ‘이불킥’ 하며 벌떡 일어났다. 아이가 내일 먹을 우유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영하의 강추위가 찾아와 열흘 넘게 마트행을 끊고 냉장고 파먹기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온 탓이었다. 휴대전화를 보니, 밤 10시30분, 기회가 남아 있었다. 마켓컬리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우유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구입액이 4만원 이상이면 무료 배송이라기에 먹거리도 사기로 했다. 아침으로 먹을 ‘떡갈비&현미영양밥’, ‘나시고랭&커리닭가슴살’ 도시락과 뜨끈한 국물이 일품이라는 어묵탕 모듬세트도 선택했다. 디저트로 ‘더블프로마쥬 딸기케이크’도 살뜰히 담았다. 이튿날 아침 8시, 현관문을 여니 보라색 테이프로 포장된 하얀 스티로폼 상자가 놓여 있었다. 문자메시지로 알린 배송 시간은 새벽 4시37분. 주문한 지 6시간이 채 안 된 때였다.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우유 창고’로 달려간 아이에게 우유부터 먹였다. 새벽 배송은 구세주였다.

1월1일 자정, 경기도 김포의 물류타워 지하에 있는 마켓컬리의 TC(Transfer Center·배송 차량 터미널). 이제 50줄에 들어선 배송기사 강형국(가명)씨는 1t 차량 안에서 휴대전화 게임을 하며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영하 8도의 강추위를 온전히 막아주지 못하는 허허벌판의 지하에서 두세 시간 동안 할 일이라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쪽잠을 자는 일이 전부다. 강씨는 이날 ‘용차’로 일을 나왔다. 휴일인 새해 첫날 휴가를 낸 다른 기사를 대신해 일당 15만원가량을 받기로 하고 아르바이트를 나온 것이다. 평일 다른 배송 일을 하는 강씨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새벽에 ‘대타’를 뛰곤 한다. 그는 “주말이라서, 신년이라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했다.

“3시간에 30~35가구 배송”

강씨의 배송 업무는 새벽 2시30분~3시에나 시작된다. 마켓컬리의 독특한 ‘샛별배송’ 서비스 때문이다. 2015년 국내 처음으로 새벽 배송을 시작한 마켓컬리는 밤 11시까지 고객 주문을 받아 이튿날 아침 7시까지 신선식품을 배달해준다. 당시 가장 빠른 배송이었던 전자상거래업체 쿠팡의 ‘로켓배송’(익일 배송·자정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도착) 속도를 앞지른 서비스다.

밤 11시까지 고객 주문이 이어지다보니 서울 송파 물류센터에서 이뤄지는 식품 포장 작업은 자정을 넘긴다. 이윽고 상자에 포장된 제품들은 5t 냉동·냉장 특장차에 실려 새벽 2시30분까지 순차적으로, 배송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김포나 용인의 TC로 옮겨진다. 배송 기사들은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자기 지역에 배송되는 물건을 모두 1t 냉동·냉장 특장차에 옮긴 뒤 시동을 걸 수 있다. 강씨는 “배송 지역이 넓기 때문에 1시간에 10가구, 3시간에 30~35가구를 친다(배송한다)”며 “퇴근하는 시간은 보통 아침 6~7시”라고 했다.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주 7일간 이뤄지는 새벽 배송 덕분에 마켓컬리는 3년여간 급성장했다. 2018년 8월 기준 하루 평균 1만2천 건 이상의 주문을 받아 월평균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마켓컬리가 직접 고용한 배송 직원은 소수다. 배송 인력 480명 중 대부분이 마켓컬리의 협력업체와 계약한 ‘지입’ 기사(개인사업자)나 협력업체가 고용한 직원이다. 1월1일 김포 TC에도 ‘상차’(제품을 차에 싣는 일)를 기다리는 차량 중 본사가 운행하는 보라색 차량은 서너 대였고, 나머지 수십 대는 지입 기사들이 각자 소유한 차량이었다. 지입 기사의 차량에는 이마트·롯데마트·GS리테일 등 다른 유통업체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보통 ‘투잡’(두 개의 직업)을 뛰는 지입 기사들이 낮에 일하는 업체의 브랜드다.

박기수(44·가명)씨는 아침에는 이마트, 새벽에는 마켓컬리를 위해 일한다. 밤 11시20분에서 이튿날 아침 5~6시까지 마켓컬리에서 새벽 배송을 한 뒤 이마트 물류센터로 바로 출근해 오후 2시까지 일한다. 박씨는 “투잡 3년차라 낮에 5~7시간 자는 패턴이 익숙하다”며 “이마트에서 (주유비 포함에 주 6일 일해) 한 달 440만원, 마켓컬리에서 (일요일 포함 주 6일 일해) 290만원가량을 받는다”고 했다.

마켓컬리보다 덩치가 훨씬 큰 쿠팡(2018년 추정 매출 5조원)은 새벽 배송에선 후발 주자다. 2018년 10월 서울 서초구에서, 밤 12시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 이전에 집 앞에 제품을 놓아주는 ‘로켓프레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9년 1월 현재는 서울과 인천,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식품과 비식품을 함께 배송해주고 있다. 이마트·현대백화점·롯데슈퍼·현대홈쇼핑·GS리테일을 비롯한 대형마트, 홈쇼핑, 기업형 슈퍼마켓 등이 지난해 앞다퉈 새벽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것에 견줘 다소 늦은 출발이다.

유통업체들 앞다퉈 새벽 배송 서비스
2018년 10월 시범적으로 새벽배송 ‘로켓프레시’를 선보인 쿠팡은 자원한 쿠팡맨에게 새벽 배송을 시키고 있다. 그러나 근무시간과 야간수당 문제 등으로 노사 사이에 갈등을 빚었다. 쿠팡 제공

2018년 10월 시범적으로 새벽배송 ‘로켓프레시’를 선보인 쿠팡은 자원한 쿠팡맨에게 새벽 배송을 시키고 있다. 그러나 근무시간과 야간수당 문제 등으로 노사 사이에 갈등을 빚었다. 쿠팡 제공

쿠팡의 강점은 인력이다. 마켓컬리와 달리 쿠팡은 직접 고용한 ‘쿠팡맨’ 3천여 명과 ‘쿠팡 플렉스’(일반인 배송원) 10만 명 중 일부를 새벽 배송에 투입하고 있다. 다만 새로운 노동 형태에 대해선 초기부터 회사와 노동조합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시범 운영된 새벽조는 새벽 2시30분~낮 12시30분, 오후조는 낮 12시~밤 11시까지 일했다. 시급의 1.5배가 지급되는 야간수당은 새벽 2시30분~아침 6시 사이 3시간30분에 대해서만 주어지는 구조였다. 새벽조에선 “밤을 새우는데 보상이 적다”, 주간조에선 “저녁 있는 삶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회사가 새벽조 근무시간을 밤 10시~이튿날 아침 8시로 옮기기로 하면서 조합원 사이에서도 지켜보자는 얘기가 나온다. 근속연수에 따라 월 40만~50만원의 야간수당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1월2일에는 회사가 일회성으로 100만원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제시했다.

자발적으로 새벽 일을 선택했느냐와 상관없이, 배송 노동자들의 생활은 전과 크게 달라진다. 야간노동의 강도는 약하지 않다. 최근까지 쿠팡맨으로 일했던 곽진수(가명)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새벽 근무를 자원했다. 지난해 7월부터 주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근무시간이 감소해 월급이 100만원가량 줄었는데, 두 아이를 생각하면 돈을 더 벌어야 했다. 그러나 낮에 평균 90~120가구에 배송할 때도 벅찼는데, 새벽에는 배송 지역이 더 넓어져 평균 130~150가구를 돌아야 했다. 낮이나 밤이나, 밥은 먹을 수 없었다.

“잠드는 데 시간 오래 걸려 술에 의지”

현재 쿠팡맨인 박지만(가명)씨는 한 달 좀 넘게 새벽 근무를 하면서 수면장애가 생겼다. “자는 시간대가 바뀌니 잠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술에 의지”하는 날이 많아졌다. 속쓰림도 달고 산다. 가끔 새벽 배송이 끝난 뒤 바쁜 주간조 지원을 나갈 때면 몸은 천근만근이 된다.

밤샘 운전도 고된 일이다. 마켓컬리의 강형국씨는 “야간 운전이 위험하긴 하다”고 했다. 좁은 도로에선 가끔 신호를 무시한 채 달리는데, 한번은 모퉁이를 돌다 주택의 담벼락에 부딪칠 뻔한 적도 있다. 고객과 약속한 시간에 맞추려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단순히 (아침 7시보다) 늦었다고 문제는 안 생기는데 배송이 늦었다고 고객이 ‘못 받겠다’ ‘회수하라’고 하면 (우리에게) 비용 처리가 돌아온다.” 같은 일을 하는 박기수씨는 오히려 “야간에는 차가 안 막혀 운전하기 훨씬 수월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중학생, 초등학생인 아이와 함께 시간을 못 보내주는 게” 늘 미안하다.

2018년 유통업계 트렌드가 새벽 배송이었다면 2019년엔 당일 배송, 퀵 배송이 될 것이란 시각이 많다. 배송 속도를 더 올려 오늘 주문하면 오늘 소비자의 손에 제품을 안기는 새로운 서비스다. 2018년 11월 기준 월거래액이 10조원에 이르는 온라인쇼핑 시장을 선점하려면, 온라인 주문의 약점인 배송에 차별화를 둬야 한다는 유통업계의 전략이 녹아 있다.

이제는 제품의 경계도 없다. 국내 1위 헬스앤드뷰티(H&B) 업체인 올리브영은 2018년 12월 중순 서울에서 당일 배송 서비스인 ‘오늘드림’을 선보였다. 온라인몰이나 앱에서 화장품 등을 결제하면 3시간 안에 고객에게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제품은 물류센터가 아닌 고객과 가장 가까운 매장에서 출발한다.

물류 혁신이 아니라 사람의 노동

이미 3시간 배송제를 운영 중인 롯데마트는 3월에 ‘30분 배송제’를 시작할 계획이다. 고객이 제품을 주문하면, 가장 가까운 마트에서 이를 싣고 출발해 30분 안에 고객에게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자장면이나 피자가 배달되는 시간과 비슷하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의류 등을 제외하고 신선·비신선 식품을 30분 안에 배송하는 서비스를 서울의 일부 마트에서 시험할 예정”이라며 “급하게 물건이 필요한 고객들이 있으니, 이런 분들의 편의를 위해 30분 배송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일 배송, 퀵 배송을 가능하게 하는 비결은 물류 혁신이 아니라 사람의 노동이다. 올리브영이나 롯데마트 모두 퀵서비스 노동자에게 배송을 맡기기로 했다. 기존 1t 차량으로는 교통량이 많은 낮과 저녁에 고객과 약속한 3시간, 30분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새해 첫날 만난 강형국씨는 “새벽 배송도 하나의 직업이니까, 먹고살려고 이 일을 한다”고 했다. 새벽 배송으로 소비자는 생활이 편리해져 좋고, 자신은 돈을 벌어 좋다는 의미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있다고 했다. “어쨌든 다 사람이 하는 거예요. 아무리 자동화돼도 아직까지 배송은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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