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6일 삼성증권 직원들의 계좌에 꽂힌 우리사주 주식은 이브의 사과보다 더 달콤한 유혹이었다. 주식을 내다판 직원 16명에겐 특히 그랬다. 그들은 금단의 사과를 베어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회사는 이들 중 6명을 해고하고 나머지는 정직(9명)과 감봉(1명)의 중징계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다. 투자자에게 지급할 손해배상금까지 이들에게 물어내도록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경영진 보호 위한 꼬리 자르기?삼성증권 직원들은 회사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온전히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씁쓸해한다. 금융감독원이 사건 초기에 지적했듯이, 회사 차원의 내부 통제·관리 시스템만 제대로 갖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직원 실수로 인한 피해를 막는 시스템은 전적으로 경영진의 몫이다.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가 경영진을 보호하기 위해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팽배하다.
배당 착오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500만 주나 되는 주식을 매도한 직원 16명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자기 주식이 아니란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증권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 주식을 내다팔 생각을 했을까. 증권가 사람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이들의 행동을 두고 ‘작전세력 연계설’ 등 그럴듯한 음모론까지 돌고 있다. 은 삼성증권 직원과 금융 당국 관계자들을 만나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문점과 음모론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단순 전산 입력 오류가 대형 금융사고로 번진 것은 초기 대응이 실패한 탓이 컸다. 그 핵심에 삼성증권 리스크 관리팀의 기능 마비가 있었다. 사건 당일인 4월6일 오전 9시30분 우리사주 조합원 2018명의 계좌에 28억1천만 주가 배당됐다. 전날 담당 직원이 현금 28억1천만원을 배당 예약을 해야 했는데, 배당 시스템에 1주당 ‘1000원’이 아닌 ‘1000주’로 잘못 입력했기 때문이다.
잘못 입력한 다음날 배당되자마자 입력 오류가 체크됐다. 담당 직원이 4월6일 오전 9시31분 자신의 입력 실수를 회사에 보고한 것이다. 회사는 곧바로 28억1천 주를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잘못 배당된 주식은 곧바로 회수되지 않았다.
이 만난 삼성증권 직원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리스크 관리팀의 한 직원이 자기 계좌에 들어온 100만 주를 전량 매도했다가 팀장의 지시로 이를 다시 사들이는 과정에서 일이 꼬였고, 여기서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회사 차원의 대응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건의 첫 매도 직원이 리스크 관리팀 소속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자기 계좌에 100만 주가 있는 것을 확인한 이 직원은 ‘본능적으로’ 매도 주문을 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팀장은 곧 주식을 다시 사들이도록 지시했지만, 거래 금액 제한에 걸려 매수 주문이 실행되지 않았다. 리스크 관리팀이 관련 부서에 요청해 거래 제한을 푼 뒤 매수를 할 때, 공교롭게도 지방의 한 지점에 다니는 직원이 매도 주문을 냈다. 직원들이 유령주식을 사고판 모양새가 됐다. 일이 수습될 기회는 사라졌다.
이처럼 돌발 상황에 대한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리스크 관리팀이 정작 내부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회사 차원의 조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직원들의 ‘유령주식’ 거래는 30분이 지난 10시5분까지 계속됐다. 주가는 전날 종가 대비 12% 급락(3만9800원→3만5150원)하는 등 대혼란이 일어났다.
삼성증권은 당일 오전 9시39분 전 직원에게 입력 오류 사실을 알린 뒤 6분이 지난 9시45분에 해당 주식의 매도 금지를 공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10시5분까지 거래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공지 내용이 직원들에게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의 공지는 고객자산 관리용 시스템에만 전달됐을 뿐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거래하는 모바일 시스템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외근이나 교육 등으로 회사 밖에 있었던 직원들은 회사의 공지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령주식을 판 직원들 가운데 일부도 당시 회사 밖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 떠받쳐준 세력은 누구?직원 16명이 왜 유령주식 매도에 나섰는지는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주식을 판 뒤 실제 판매대금은 2거래일 뒤 찾을 수 있기에 ‘먹튀’는 불가능한 구조다. 이들은 금융 당국 조사에서 “실제로 팔리는지 시험해보려고 매도를 시도했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팔리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라면 소량의 주식을 거래하는 게 일반적이지 한꺼번에 많은 주식을 내다팔지는 않기 때문이다. 100만 주를 한꺼번에 던진 직원들도 있었다.
단타 거래로 차익을 노린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비쌀 때 유령주식을 팔고 가격이 떨어지면 주식을 되사 차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정상 임직원이 삼성증권 주식을 사들이고 6개월 이내에 이익이 발생하면 회사가 전액 환수하도록 돼 있다. 임직원이 자기 연봉 이상으로 매수 주문을 하는 것도 시스템상 막혀 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이 작전세력과 연계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삼성증권 직원들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은 작전세력 연루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주가 급락을 노린 작전이었다면 배당 입력 오류부터 사전에 계획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16명이 작전에 가담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부담해야 할 리스크가 월등하게 크기 때문에 작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과 만난 삼성증권 직원도 “매도한 직원들조차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자책하며 멍청한 짓을 했다고 한탄하는 상황이다. 회사 감사 과정에서도 뾰족한 이유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정책위원장은 다른 관점에서 매도 경위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 시장에 대량으로 쏟아진 삼성증권 주식을 사들인 이들이 누구인지 밝혀내면 된다는 것이다. 굳이 검찰 수사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금융 당국의 조사만으로도 충분히 밝혀낼 수 있다. 지 의원은 “500만 주가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지면서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는데, 주식을 사들여서 주가를 떠받쳐준 세력이 있다. 이들이 누구인지 밝혀내면 된다”고 말했다.
당시 삼성증권 주가를 보면 오전 9시 3만9600원에서 출발한 주가는 주식 500만 주가 시장에 쏟아진 9시56분 3만5100원으로 11.68% 급락했다. 하지만 주가 하락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오전 10시 무렵 3만7천원대로 오르기 시작한 주가는 11시 3만9천원대를 회복했고 오후 3시30분에 3만8350원으로 장마감했다.
총수 일가가 미덥지 못하니…급락하던 주가가 1시간 만에 빠른 속도로 회복한 것은 시장에 쏟아진 물량을 누군가 사줬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당일 삼성증권을 사들인 큰손은 삼성 계열사들이다. 먼저 삼성증권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오후 12시30분에서 3시30분 사이에 260만 주를 사들였다.
삼성생명도 당일 삼성증권 주식 3만2천여 주를 사들였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특별계정은 사고가 터지기 전날인 4월5일 삼성증권 주식 13만9198주를 보유했다가 6일 17만1429주까지 늘렸다. 하루 동안 3만2천여 주를 매수했고 지분율은 기존 0.16%에서 0.19%까지 올라갔다. 이와 관련해 삼성생명 쪽은 “특별계정은 자산운용사에 자금 운용을 맡긴다. 자산운용사들이 각자 알아서 판단해 거래할 뿐 우리는 모른다”고 해명했다.
지 의원은 “오전 10시 무렵 주가가 3만7천원대로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누군가 삼성증권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삼성증권보다 먼저 240만 주가량 사들인 세력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 의원은 4월24일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당국자들과 한 간담회에서 이 부분의 조사를 강하게 요청했다.
유령주식을 매도한 직원들은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가 해고 등 중징계에 그치지 않고, 피해보상금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할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삼성증권이 입은 손해는 100억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 만난 삼성증권 직원은 “1분기에만 직원들이 회사에 1800억원의 수익을 내줬다. 100억원을 돌려받자고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얘기에 직원들의 반감이 크다”고 말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삼성증권 특유의 기업문화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이 직원은 “잘못 배당된 주식이 고객 자산이었다면 절대로 매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이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가 가장 많이 개설되는 등 개인 금고 구실을 한 것도 이번 사건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회사가 이 회장의 사금고처럼 쓰이면서 준법의식이나 직업윤리가 기업문화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총수 일가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직업윤리를 기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 ‘실적지상주의’의 저주
이번 사건을 삼성증권의 고유한 문제로만 봐서도 안 된다. 증권업계에 만연한 ‘실적지상주의’는 언제든 비슷한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직업윤리보다 실적을 우선시하는 조직은 구성원들을 과도한 이익 추구 행위로 내몬다. 금감원은 주식배당 시스템 검사를 증권회사 전반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증권회사 내부의 허술한 통제 시스템과 일부 직원의 도덕적 해이, 지나친 탐욕이 결합해 나타난 문제“라고 말했다.
이춘재 cjlee@hani.co.kr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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