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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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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여도 시급 1만원 줄래요”

시급 1만원 지급하는 고깃집 사장님 “직원 웃어야 장사도 잘돼”…

사장님 선의·희생만 바라지 말고 ‘최저임금 1만원’ 인상과 정부 지원 대책 동시 필요
등록 2017-06-29 13:41 수정 2020-05-03 04:28
지난 6월21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왕갈비’에서 손님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시급 1만원을 받는다. 김진수 기자

지난 6월21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왕갈비’에서 손님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시급 1만원을 받는다. 김진수 기자

드르륵. 가스 점화로 시동을 건다. 회색 숯불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치지직. 뜨거운 불판에 오른 양념 왕갈비가 달달한 고기 향을 피운다. 처억. 핏기 가신 왕갈비가 뒤집힌다. 서걱서걱. 먹기 좋게 잘린 고기를 손님들이 재빨리 제 앞접시로 옮겨놓는다. “자, 한잔씩 해~.” 맥주잔을 가득 채운 뽀얀 막걸리가 몇 순배 돈다.

테이블에서 왕갈비를 굽던 아르바이트 노동자 고영숙(52·가명)씨가 알은체했다. “아까 점심에도 오셨죠? 여기 앉으셨잖아요.” 중년 남성 손님이 맞장구친다. “맞아요. 비빔밥이 맛있어서 또 왔지~.” 고기를 자르는 고씨의 손길이 더 정성스럽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고씨가 홀 한쪽으로 나와 커피믹스를 탄 컵을 들고 숨을 돌린다. 지난 6월21일 저녁 7시10분, 이제 막 세 번째 저녁 손님을 맞았을 뿐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양평왕갈비’는 일주일 전 문을 연 새내기 숯불갈비 전문점이다. 중국 동포인 고씨는 구인광고를 보고 ‘오픈 멤버’가 되기로 결심했다. 시급 1만원. 고깃집 일자리를 꺼리던 그에게도 매력적인 금액이었다. 2007년 한국에 들어와 여러 식당에서 서빙과 설거지를 해봤지만 고깃집은 특히 일이 고됐다. “가게 공기부터 다르잖아요. 옷에 냄새도 배고요. 그래도 1천~2천원 더 받으면 가계에 보탬이 되잖아요. 아무래도 일하는 기분이 달라져요.” 지친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일할 맛 나게 하는 ‘시급 1만원’ </font></font>

고씨는 다른 식당에서도 시급 8천원, 9천원씩 받고 일했다. 학생을 제외하면 최저임금(6470원)에 일하는 중국 동포 지인은 없었다. 그만큼 이 바닥에선 정보 공유가 빠르다. 한국에 처음 와서 등록한 인력사무소에서는 매년 최저임금이 인상될 때마다 ‘올해는 얼마 올랐다’며 문자로 고씨에게 알려준다. 최저임금을 크게 웃도는 ‘시장임금’도 지인들이 실시간 전달해준다. “다들 8천∼9천원 받는데 누가 6천원 받고 일하겠어요?”

고씨를 일할 맛 나게 하는 ‘시급 1만원’은 김분이(56) 사장의 ‘마지막 고집’이다. 30년간 고깃집 빼고는 안 해본 장사가 없는 김 사장은, 늘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만은 넉넉히 시급을 쳐줬다. 학생에게도 최저임금보다 1천∼2천원 더 줬다. “고깃집은 일식집만큼 힘들어요. 노동강도가 세죠. 조금 더 챙겨줘야 이직률이 낮아요. 아르바이트생이 친절해야 손님도 다시 찾죠. 가게는 같이 꾸리는 거잖아요. 당장 내 수익만 생각하면 장사 못해요.”

김 사장도 여유롭지 않은 형편이다. 3년 전 지방에서 사업 실패 뒤 서울에서 고깃집으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서울 장사는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가게 권리금과 보증금, 시설비 1억원을 마련하느라 빚을 졌다. 매달 월세 200만원과 주방조리 직원 2명의 인건비 480만원, 재료비, 공과금 등도 치러야 한다. “최소 3개월은 적자 본다”는 생각으로 가게가 뿌리내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지만 ‘숫자’를 떠올리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야박해지기 싫어요.”

김 사장은 잠시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고씨가 방에 있는 손님들을 챙기는 동안, 김 사장은 홀을 누볐다. 쉴 새 없이 손님 테이블을 살폈다. 고기가 부족한 테이블에는 돼지껍질을, 식사를 끝마친 테이블에는 사이다를 서비스로 내줬다. 손님들이 나가면 고씨와 함께 서둘러 빈 그릇을 치우고 테이블을 닦았다.

고씨 혼자 방과 홀에 있는 테이블 13개를 맡기엔 벅차다.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더 고용하지 않으려면 사장이 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나마 가게를 막 시작한 터라 고씨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서빙을 하지만, 다음달부터 점심 장사를 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김 사장 혼자 서빙을 하기로 했다. 하루 7만원의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물론 청소 등 장사 준비도 숯불 담당인 남편과 둘이 해내야 한다.

김 사장의 가게처럼, ‘최저임금 1만원’은 지금도 불가능한 구호는 아니다. 일이 힘든 고깃집이나 횟집을 중심으로 직원에게 시급 1만원을 주는 가게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인력난이란 현실적 조건과 사장님의 선의가 더해진 결과다. 다만 그 대가는 고스란히 사장님들 몫이다. 자기 몸으로 때우거나 적자를 감당하면서 가게를 유지하는 처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고차함수 </font></font>

사장님들의 선의와 희생에 기대지 않고도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릴 방법은 없을까. 문재인 정부의 고민도 이 지점에 닿아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은 문재인 정부 ‘소득 주도 성장론’의 핵심이다. 최저임금을 올려 소득 불평등 문제를 풀고 내수도 진작하겠다는 취지다. 대선 공약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려면 3년간 15.7%씩 올려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줄 최저임금 1만원이,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딜레마다.

지난 6월15일 가동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전선’이 만들어졌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들은 “내년부터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지만,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들은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앞세워 “동결이나 소폭 인상”으로 맞선다. 매년 되풀이돼온 레퍼토리다.

물론 지난 9년간 보수 정권에서 진행된 최저임금위원회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1년 전 ‘기울어진 최저임금위원회’에 반발해 사퇴했던 민주노총·한국노총도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고 협상에 복귀했다. 정부에는 명시적인 최저임금 결정권은 없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근로자위원(9명)과 사용자위원(9명)이 팽팽하게 대립할 경우 고용노동부가 추천한 공익위원(9명)이 정한 중재 구간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다. 근로자위원인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정권에 대한 기대보다는,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졌다는 점에서 (이번 위원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위)도 최저임금 인상안을 뒷받침하기 위한 소상공인·자영업자 부담 완화 대책을 곧 발표한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범위를 확대해 연매출 2억~5억원인 소상공인이 연 80만원(총 3500억원)의 혜택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이 우선 담겼다. 연평균 2조5천억원 규모의 세제 혜택 패키지를 마련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이번 대책을 짜는 국정위 경제2분과 소속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말을 아꼈다.

마냥 낙관하기는 이르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6월1일 “적어도 올해 10% 이상 올리도록 논의하겠다”고 했다. ‘10%+α 인상’은 정부 약속인 ‘15.7% 인상’보다 낮은 목표치다. 김진표 국정위 위원장 역시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을 ‘2년 유예’해주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목표치를 하향 조정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역시 대선 당일인 5월9일 “(최저임금 1만원 목표를) 2020년이 아니라 임기 중(5년) 실현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새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인심이 넉넉한 김 사장의 시급 ‘한계선’</font></font>

문재인 정부가 고차함수를 풀 시간은 많지 않다. 최저임금위원회는 6월29일까지 최저임금안을 결정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처럼 노사가 충돌하더라도 7월 중순에는 어떤 식으로든 담판을 져야 한다. 8월5일에는 장관이 고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심이 넉넉한 김 사장에게도 시급 1만원은 ‘한계선’이다.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고깃집의 시장임금도 덩달아 2천~3천원은 뛰게 마련이다. 여기에 1천∼2천원을 더 얹어줄 자신은 없다. “제가 줄 수 있는 시급 마지노선은 많아야 1만1천원, 1만2천원이에요. 그 이상 되면 아르바이트생을 못 둬요. 그러면 직장 다니는 자녀들한테 도와달라고 해야겠죠.” 김 사장은 지금보다 시급을 올려주려면 정부가 추진 중인 카드 수수료 인하와 세금 감면 등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추가 인건비 지원이나 임대료 안정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 방지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다른 사장님들의 목소리도 높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한계상황에 내몰린 가난한 사장님과 그보다 가난한 노동자의 오랜 요구를 모두 맞출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야 한다.

<font color="#A6CA37">영국과   미국의  같은   듯  다른  실험</font>


‘최저임금  인상’   어떻게  현실이  됐나


최근 눈에 띄는 ‘최저임금 인상’을 실험하는 국가는 영국과 미국이다. 임금 불평등이 심각하고 사회안전망이 약한 영미식 자유시장 경제모델의 대표 국가다. 한국처럼 노동자보다 기업의 힘이 월등하게 센 영국과 미국에서 최저임금 실험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영국은 지난해 4월부터 25살 이상 노동자에게 시간당 7.2파운드(약 1만80원)를 의무 지급하는 ‘법정생활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기존 최저임금 대비 인상률은 7.5%로, 2008~2016년 연평균 인상률(2.1%)보다 3배 이상 높다. 청소년·수습생·21~24살 노동자에게는 법정 최저 생계비인 최저임금을 그대로 지급하되, 25살 이상 노동자에는 실질 최소 생활비인 생활임금을 지급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도 저임금 노동자들은 반발한다. 생활임금제의 목적이 노동자의 소득 불평등 완화가 아니라 정부의 재정 적자 해소에 있기 때문이다. 2015년 ‘고임금·저조세·저복지’를 내걸고 재집권에 성공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복지 지출을 줄이는 대신 최저임금은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반발하는 기업에는 ‘법인세율 인하’ 카드를 제시했다. ‘생활임금 도입-복지 축소’ 패키지는 노동자에게 득보다 실이 많다. 영국 재정연구소(IFS)는 2019년까지 정부 계획이 집행될 경우 저임금 가구는 결과적으로 연간 556파운드(약 80만원)의 손해를 본다고 추정했다.
미국은 ‘위·아래의 합작’으로 ‘실질 생활임금’이 인상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선 올해부터 시간당 10.5달러(약 1만1430원)의 최저임금이 의무화됐다. 지난해 4월 주의회가 2022년까지 최저임금 15달러(약 1만7150) 인상 법안을 통과시킨 데 따른 결과다. 뉴욕주, 뉴저지주, 워싱턴DC 등 다른 주도 비슷한 법안을 통과시켰거나 추진 중이다.
시대적 과제로 ‘불평등 해소’를 꼽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의지가 결정적이었다. 2008년 말 대선 기간부터 7.25달러(약 8290원)에 묶인 연방 최저임금의 인상을 주장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공화당의 반대가 거세자, 우회로를 선택했다. 2014년 행정명령으로 연방정부와 계약하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10.1달러(약 1만1550원)로 인상하고, 민주당이 주의회를 장악한 주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도록 독려했다. 주 최저임금이 연방 최저임금보다 높으면 노동자에게는 주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영국처럼 최저임금 인상의 조건이나 보상도 내걸지 않았다.
2012년 미국 패스트푸드점 ‘맥도널드’ 노동자들이 시작한 ‘15달러를 위한 투쟁’도 최저임금 인상 ‘바람’을 불게 한 원동력이 됐다. 미국과 상황이 비슷한 한국에서도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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