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인사평가 뒤 짧게는 1년 만에 사원을 해고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그 합법성을 따지기 위해 대형 법무법인으로부터 유료 자문까지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사실상 경영진을 비판하거나 보도 방향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직원들을 겨냥한 ‘해고 프로젝트’ 성격이 짙다.
은 MBC가 지난 8~9월 김앤장 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와 법무법인 화우(이하 ‘화우’)로부터 각각 두 차례에 걸쳐 받은 ‘장기 저성과자에 대한 조치 관련’ 답변서를 단독 입수했다. 이 답변서는 MBC 쪽의 질의에 따라 해당 법무법인이 검토해 보낸 자료(8월12일·9월19일(화우), 8월18일·9월23일(김앤장))로, 첫머리에 ‘문화방송 주식회사’가 수신자로 명시돼 있다. 이들 문건에 따르면, MBC는 법무법인에 저성과자를 해고할 때 법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법을 자문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받았다. 은 이들 문건을 토대로 MBC가 구상 중인 것으로 보이는 ‘해고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추정해봤다.
김재철 사장 취임 뒤부터 ‘R등급 강제할당’
MBC는 8월12일에 화우로부터, 8월18일엔 김앤장으로부터 ‘3R를 두 번 받으면 징계해고를 할 수 있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받는다. R란 MBC가 1년에 세 차례 실시하는 업적·역량 평가에서 70점 이하를 받은 사원에게 주는 최저등급을 말한다. MBC 사규에 따르면 3년간 R등급을 3회 이상 받을 경우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할 수 있다. MBC 사규에서 개인평가(인사평가)를 근거로 징계를 내릴 수 있는 근거는 이 조항이 유일하다.
MBC 인사평가에서 R등급이 도마 위에 오른 건 2010년 김재철 전 사장이 취임한 뒤다. 이전까지는 사규에 따라 절대평가 방식으로 등급을 매겨왔고, 평가자 지침에 따라 ‘다년간 다른 구성원에 비해 낮은 업무성과를 창출하거나 해당 직무 수행에 필요한 역량을 충족시키지 못해 조직 기여도가 낮고 조직 발전을 저해하는 인력’에게 R등급을 줘왔으나, 김재철 전 사장이 이를 ‘강제할당’ 방식으로 바꾸면서 과거엔 이례적이던 R등급 부여가 부쩍 많아졌다. 2010년 상반기 개인평가에서 22명(2%)이, 2010년 하반기 개인평가에서는 53명(5%)이 R등급을 받았다. 2010년 하반기 인사평가에서 R등급 강제할당률이 5%에 달했을 때 발행된 MBC 노보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부서의 막내, 취재차 출장을 다녀오다 다리를 다친 사원, 안식년을 앞둔 고참 사원 등 객관적인 기준 없이 강제할당 방식으로 R등급이 매겨져 강제할당의 폐해가 상상을 초월했다”며 “무차별 ‘R박기’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MBC는 왜 R를 통한 징계와 해고 방법을 고민하고, 돈을 들여 법적 자문까지 받는 것일까. 그 비밀은 그동안 MBC가 부여해온 R등급의 성격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MBC는 대체로 경영진을 비판하거나 보도 방향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사원을 징계하는 방식으로 R등급을 부여해왔다.
특히 2012년 170일간의 파업 뒤에는 사 쪽이 파업 참가자 모두에게 R등급을 매김에 따라 인사평가 대상자의 50%가 넘는 인원이 R등급을 받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MBC 노동조합은 그동안 발행해온 노보·특보 등에서 “최근 몇 년 동안 회사의 인사평가제도는 공정성과 객관성에 있어서 커다란 문제점을 노정해왔다”며 “특히 사 측 몇몇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한 사원에 대해 인사고과 최하등급(R)을 부여하는 사적 보복은 계속됐다”고 지적했다.
2010년 이후 MBC는 노조의 거센 반발에도 ‘R등급 강제할당’ 원칙을 고수해왔다. 왜일까. MBC가 김앤장과 화우에 보낸 질문에 그 의도가 엿보인다. 문건에는 MBC가 현재 사규인 개인평가규정에는 없지만, 3년간 3R를 받은 직원이 한 번이라도 더 R를 받으면 다시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하는 방법을 고심한 사실이 담겨 있다. 강제할당제를 통해 1차적으로 R등급 대상자 수를 늘렸고 2차적으로 그 대상자에 대한 징계의 경우의 수를 늘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것이다.
R를 이용해 해고가 가능한가요
MBC가 검토한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중복계산’이다. 이전에 3R를 받아 징계받은 직원이 추가로 R를 받았을 때 이전 2개의 R와 새로운 R를 합해 다시 ‘3R’를 구성해 징계에 회부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개인평가규정에 해당 규정을 추가하는 것이다. 셋째는 개인평가규정을 변경하지 않고 징계에 회부하는 것이다.
MBC는 김앤장·화우에 세 가지 방법이 법적으로 가능한지를 묻는다. 특히 두 번째 방법에서는 새 규정을 추가하려면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화우와 김앤장은 ‘중복계산’은 “이중징계”에 해당하므로 안 되고, MBC가 추가하려는 규정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규정이어서 노사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답한다. 또한 취업규칙이나 개인평가규정을 변경하지 않고 네 번째 R만으로 징계를 하는 것은 “정당한 징계 사유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답한다. MBC가 구상한 계획은 결국 모두 편법적이거나 위법하다는 얘기다.
MBC는 이어 R를 이용해 궁극적으로 해고가 가능한지를 질문했다. 3R를 받은 직원이 다시 3년 안에 3R를 받으면 징계해고가 가능한지를 물어본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김앤장과 화우는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요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 이유로 MBC가 R등급을 매길 때 상대평가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을 짚었다. 화우는 “귀사는 2010년부터 ‘R등급 강제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상대평가 기준에 기초한 평정의 결과에 따라 근무성적이 하위등급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는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답했다. 김앤장 역시 “상대평가 방식의 인사평가제도하에서는 하위평가 집단은 항상 발생하므로 동일 직급, 동일 근속연수의 다른 근로자 평균의 실적, 업무 수준과의 비교·평가 없이 R등급 자체만으로 직무 수행 능력 부진 내지 근무성적 불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MBC는 왜 이렇게 R를 통한 징계와 해고 방법을 고민하고, 돈을 들여 법적 자문까지 받는 것일까. 그 비밀은 그동안 MBC가 부여해온 R등급의 성격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MBC는 대체로 경영진을 비판하거나 보도 방향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사원을 징계하는 방식으로 R등급을 부여해왔다. 2012년 파업 참가자 전원에게 R등급을 부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는 의 김연국 기자가 ‘국정원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을 취재하다가 갑자기 취재 중단 지시를 받고 통편집당한 데 대해 반발하자 인사평가에서 R등급을 부여한 바 있다. 김연국 기자는 파업에 참가해 R등급을 한 차례 받고, ‘국정원 댓글 조작 의혹 사건’ 통편집에 반발해 R등급을 부여받는 등 총 세 차례 R등급을 받고 이 때문에 정직 1개월, 교육 2개월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현재 부당징계 무효소송을 진행 중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프로그램에 정치적 편향성을 주입하려는 경향이 보인다’는 이유로 R등급을 받은 PD도 있고 파업에 참가한 뒤 일을 주지 않는 부서로 보낸 뒤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R등급을 받은 아나운서도 있다. MBC의 한 사원은 “계속되는 R등급으로 인한 사원들의 위축 효과는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 이 사원은 “요즘은 3R를 받으면 예외 없이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에 회부하는 경향이 있어, 2012년 파업에 참가한 사람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다 R를 하나씩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만 잘못하면 1년 안에 R 2개를 받아 금세 3R의 당사자가 된다. 그로 인해 징계가 또 추가되기 때문에 몸을 사리게 된다”고 말했다. MBC는 1년에 두 차례의 업적평가와 한 차례의 역량평가를 하기 때문에 업적평가와 역량평가가 동시에 진행되는 하반기에는 6개월 만에 R 2개를 추가해 금방 3R가 될 수 있는 조건이다.
법률 자문 바탕으로 다듬은 ‘시나리오’
이미 세 차례 R등급 부여로 인한 정직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결도 있다. MBC 보도국의 ㄱ기자는 2013년 1월 보도국 내부 게시판에 김재철 전 사장을 비판하는 글을 써 정직 6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그는 이어 2012년 상반기·하반기 업적평가와 2012년 역량평가에서 모두 R등급을 받아 징계위에 회부돼 정직 1개월, 교육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ㄱ기자는 이와 관련해 징계 무효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두 건의 징계가 모두 징계 재량권을 남용했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징계가 이뤄져 위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파업 참가만을 이유로 한 R등급은 부당하고, 잇따른 부당전보로 인해 정상적인 업무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R등급 역시 부당하다”며 R등급을 세 번 받았다는 이유로 가해진 징계 처분은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9월 답변서에는 MBC가 R등급을 해고에 적극 활용하려 한 정황이 잘 드러난다. MBC는 8월 중 김앤장과 화우로부터 받은 답변서를 토대로, ‘장기 저성과자 해고 절차를 운영할 예정’이라며 9월에 이에 대한 검토를 다시 요구한다. 이때 MBC가 그린 ‘해고 시나리오’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과감해졌다. 6개월마다 하는 업적평가에서 R등급을 한 번 받을 때마다 교육발령을 낸 뒤, 세 번 받으면 곧바로 징계를 검토하는 방안이다(16쪽 그래픽 참조). 이를 위해 MBC는 R등급 강제할당 방식을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창의성·순발력 등 정성 평가 요소가 많은 역량평가는 R등급 산정에서 빼고, 특종 등 업적으로 평가하는 업적평가만으로 R등급을 매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화우와 김앤장이 8월 검토 문건에서 “상대평가 방식으로 저성과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조언한 점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앤장과 화우조차 MBC가 마련한 ‘저성과자 해고 방안’에 대해 9월 답변서에서 더 박한 평가를 내린다. 김앤장은 “귀사의 장기 저성과자 해고 절차 수립안을 살펴보면, 결국 귀사는 별도의 사규 개정 없이도 비교적 단기간 내에 저성과자들을 해고시키고자 하는 취지인 것으로 보이나 이렇게 단기간에 저성과자들을 해고시키는 경우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화우 역시 “연속 3회 3R등급을 받았다는 사유만으로 해당 직원을 일괄적으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해고로 판단될 법적 위험성이 높습니다”라고 단언한다.
MBC는 8~9월의 법률 자문 내용을 바탕으로 다듬은 ‘시나리오’를 직원들에 대한 인사 처분에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MBC는 지난 10월31일 인사에서 최근 3년 동안 R등급을 받은 기자와 PD 등을 포함해 12명을 교육발령 조치해 2주간 교육했다. 이때 교육 프로그램에는 이전에 없던 ‘개인별 직무능력 및 적성 파악’ ‘개인별 직무역량 향상계획 수립’ 등이 들어가 있다. 화우는 9월 검토 서면에서 “귀사에서 실시하고 있는 저성과자 교육은 주로 근무태도 및 기본 인성 함양과 관련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저성과자들의 근무역량 강화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한 바 있다. 또 세 차례 R등급을 받은 직원에 대해 “대기발령·명령휴직 처분을 내리는 동시에 성실 의무 위반으로 인한 징계 절차를 병행하는 것은 이중징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MBC는 11월24일 교육발령 대상자 12명 가운데 5명에 대해서만 인사 발령을 내지 않고 ‘교육 성적이 좋지 않다’며 인사위원회를 열어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2012년 파업 이후부터 지금까지 MBC 노동자들이 회사 쪽에 부당징계·해고 등 무효소송을 제기한 것만 16건에 이른다. 여기서 적어도 1심 판결이 난 12건 가운데 3건을 제외하면 MBC의 징계나 해고에 대해 모두 무효 판결이 내려졌다. MBC 징계의 ‘무리함’을 보여주는 지표다.
저성과자에 대한 조치와 관련해 MBC가 보인 행태에 대해선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김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인사경영을 하면서 법률적 위험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 사용자가 법률 자문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의 경우 적합한 업무를 찾아서 업무 능률을 올려주려는 본래 목적과 달리 노동조합 활동을 하거나 회사에 반감을 갖고 있는 특정 직원에 대한 ‘관리’로 악용될 수 있어서 문제다”라며 “이러한 사용자의 행위는 법원에서 부당노동행위로 무효가 된다”고 지적했다.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힘들다”
김진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보통 회사가 법률 자문을 받고 나면 그에 따라 실행한다. 사회 각계의 부당노동행위를 책임 있게 고발해야 할 책무가 있는 언론사가 직원을 어떻게 내쫓을지를 고민하며 법률 자문을 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기획재정부가 고용의 유연화를 주장하는 마당에, MBC가 스스로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영성을 포기하고 마치 민간기업처럼 그 기조에 발맞추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의 징계와 해고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무력해진 저널리즘을 갖게 된 방송에 공영성이 있는가”라고 질책했다. MBC 홍보실 관계자는 ‘저성과자 인사 조치’ 자문과 관련해 “내가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MBC 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은 권재홍 MBC 부사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2012년 파업 이후부터 지금까지 MBC 노동자들이 회사 쪽에 부당징계·해고 등 무효소송을 제기한 것만 16건에 이른다. 여기서 적어도 1심 판결이 난 12건 가운데 3건을 제외하면 MBC의 징계나 해고에 대해 모두 무효 판결이 내려졌다. MBC 징계의 ‘무리함’을 보여주는 지표다. MBC가 세운 ‘저성과자 해고 방안’ 역시 김앤장과 화우는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MBC는 과연 여기서 멈출까. ‘저성과자 해고 프로젝트’는 어디까지 갈까.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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