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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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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과자, 과자일 뿐인데…

입소문 타고 구매 열기 폭발한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

팍팍한 삶 속 달고 소소한 행복 찾는 이들 많아져서 아닐까?
등록 2014-12-02 16:01 수정 2020-05-03 04:27
지난해 11월 이마트 용산점에서 오전 10시 개장 시간에 맞춰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진열된 허니버터칩을 경쟁하듯이 집어가고 있다. 류우종 기자

지난해 11월 이마트 용산점에서 오전 10시 개장 시간에 맞춰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진열된 허니버터칩을 경쟁하듯이 집어가고 있다. 류우종 기자

가질 수 없는 너. 수백만원짜리 명품 백도 아닌 것이 여러 사람의 애를 태운다. “도대체 어디 가야 살 수 있나요?” 인터넷 카페에 묻고, “언제 들어오나요?” 대형마트에 전화하고, “들어오면 하나만 따로 빼놔주실 수 있을까요?” 동네 슈퍼 주인에게 읍소한다. 손에 넣기 어려울수록 점점 더 갖고픈 욕망은 커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희소성의 원칙. 남들이 다 맛있다고 하니, 안 먹어본 나만 왕따가 되는 듯하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동료압박(자신이 원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하는 심리). 대체 그 과자 한 봉지가 뭐라고!?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은 어떻게 대한민국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됐을까.

온 국민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지난 8월 출시된 허니버터칩은 지금까지 매출 108억원(11월18일 현재)을 기록 중이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슈퍼 등 유통채널마다 판매가격이 다르긴 하지만, 1봉(60g)에 1200원이란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지금까지 850만여 개가 팔린 셈이다. 무서운 건 그 상승 추세다. 매출 50억원을 돌파한 게 지난 11월8일. 출시 뒤 100일여 동안 팔린 과자 봉지보다 최근 9일 동안 팔린 과자 봉지가 더 많았다는 얘기다. 이마트 용산점 관계자는 “허니버터칩을 찾는 문의 전화가 하루에 수십 건 걸려온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는 아예 과자 진열 코너에 ‘허니버터칩 재고 부족으로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문구까지 붙여놨다. 몇몇 슈퍼에서는 안 팔리는 과자와 허니버터칩을 묶음으로 팔아 ‘인질’ 상술이라는 원성을 사기도 했다. 중고장터에서는 3배 넘는 가격에 허니버터칩이 거래된다.

인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참신함이다. 프링글스, 포카칩, 수미칩 등 기존 감자칩들은 짭짤한 맛 일색이었다. 그런데 허니버터칩은 달고 고소한 맛의 감자칩이다. 일본 제과업체인 가루비가 한정판으로 내놨던 ‘행복버터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해태제과는 2년 넘는 실험 끝에 만들어낸 제품이라고 강조한다. 해태제과의 소성수 홍보팀장은 “행복버터칩은 고소한 맛을 강조한 제품이고, 우리는 단맛을 바탕으로 고소한 맛과 짭짤한 맛이 어우러진 제품을 새롭게 개발해냈다”고 말했다. 허니버터칩은 가루비와 해태제과가 2011년 각각 50%씩 투자해 설립한 합작사인 해태가루비에서 개발·생산하고 있다.

단맛을 위해 국내산 아카시아 꿀을, 고소한 맛을 위해 프랑스산 고메버터를 활용했다는 마케팅 전략도 통했다. 실제 함량은 0.01%에 불과하지만, 맛에 대한 기대심리를 높였다. ‘ESC’의 맛 전문 기자인 박미향 기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하얀 국물’을 내세웠던 꼬꼬면과 비슷하지만, 꿀과 치즈를 강조했다는 점에선 신라면 블랙의 고급화 전략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제품 자체의 경쟁력만으로는 ‘광풍’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 ‘분유 맛’이라는 혹평도 나오고, 0.01%는 맛이라기보단 살짝 뿌린 향료에 가까운 함량이다. 여기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허니버터칩의 비밀병기를 주목해야 한다. AK몰 SNS 마케팅팀이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등에서 허니버터칩이 언급된 횟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광풍의 시작은 10월 말이었다. 허니버터칩을 추천하는 게시물이 늘어나기 시작하다가 10월23일께부터 ‘지금 해태제과 보일러가 고장나서 허니버터칩 생산이 중단됐다고 합니다’(@Ke*******), ‘내가 허니버터칩 찾다 허탕치고 돌아간 오늘의 12번째 손님’(@le******) 등의 이야기가 SNS를 통해 퍼지기 시작한 것. 특히 소유진, 소이 등 연예인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허니버터칩 인증샷은 광고 못잖은 효과를 냈다.

SNS 입소문·인증샷, 광풍의 전초

품귀 현상도 ‘광풍’을 부채질했다. 해태가루비가 강원도 문막에 세운 생산공장에서는 지난 9월 말부터 2교대제를 3교대제로 바꾸고 24시간 근무하고 있지만, 공급량이 구매량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태다. 이 때문에 해태제과가 일부러 품절을 부추기고 SNS를 통해 고도의 마케팅 활동을 폈다는 의심도 나온다. 소성수 팀장은 “현재 월 60억원어치 제품을 생산 중인데, 대형 거래처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물량을 적게 공급할 수 없는 구조다. 그리고 초반에 소비자모니터단이 일부 움직이긴 했지만 인스타그램 등은 전혀 의도적인 마케팅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의심은 고전적인 마케팅 수법에서 싹튼다. 2009년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장난감으로 히트를 쳤던 ‘주주 펫 햄스터’를 개발·판매한 세피아(Cepia)는 엄마 블로거들에게 장난감을 선물로 주는 ‘바이러스 마케팅’을 펴는 한편으로 교묘하게 생산량을 줄여서 그해 수천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태제과의 성공을 단정하기엔 이르다. 매출 108억원은 감자칩 1위인 오리온 ‘포카칩’이 지난해 840억원어치가 팔린 데 견주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다만 해태제과가 그동안 기업공개(IPO)를 추진해왔다는 점에선 호재가 될 수 있다. 모회사인 크라운제과가 최근 ‘유기농 웨하스’ 등의 제품에서 기준치 이상의 미생물과 식중독균이 검출됐지만 제품을 유통시킨 사실이 드러났던 악재를 덮은 측면도 있다. 검찰은 크라운제과 임직원 3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법인 크라운제과를 기소한 바 있다. 해태제과의 신정훈 대표이사는 윤영달 크라운제과 회장의 사위다. 크라운제과의 주가는 지난 11월24일 장중 29만2천원까지 치솟았다. 11월 초 18만원 초반대까지 하락했던 데서 허니버터칩의 인기에 힘입어 반등한 것이다.

요즘 크라운제과뿐 아니라 국내 제과업계는 침체된 분위기였다. ‘질소 과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며 과대 포장이 논란을 빚는 사이에 대형마트에서 수입과자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어섰다. 서울시내 번화가를 중심으로 수입과자 전문점도 유행처럼 번지는 추세다. 출생률 저하로 과자를 주로 소비하는 유년층이 감소한데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해 가뜩이나 주춤했던 성장세가 더 움츠러들었다.

“독특한 맛을 찾는 소비자들은 국산 과자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 허니버터칩이 시장에 충격을 준 건 분명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1988년 포카칩이 출시됐을 때도 생감자 맛을 살린 새로운 스낵이라는 폭발적인 반응이 있다가 그 후 인기가 떨어졌다. 허니버터칩도 신제품으로서 대단히 성공하긴 했지만 열풍이 계속 이어지진 않을 거다.” 16년 동안 오리온에서 근무하다가 나와 시리즈를 펴낸 안병수 후델식품건강교실 대표의 말이다.

“충격은 줬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것”

허니버터칩 열풍을 최근 내수침체와 소비심리의 변화와 연관짓기도 한다. 경기불황일수록 소비자들은 다른 사람의 판단과 구매행동에 의존하게 되고, 립스틱처럼 비교적 싼 가격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이 많이 팔린다는 속설 때문이다. 다음소프트가 트위터에서 맛을 표현하는 단어 언급 횟수를 분석해봤더니, 올해 들어 ‘달다’(5만7350건)가 1위로 떠올랐다. 2010~2013년 ‘고소하다’ ‘부드럽다’에 이어 2~3위를 형성했던 ‘달다’가 갑자기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재원 다음소프트 이사는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불닭면이 인기인데 ‘살기 힘들다’는 감정이 완전 달거나 완전 매운 제품에 대한 선호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지난해부터 ‘소소하다’라는 단어 언급 횟수가 늘어났다는 데도 주목했다. 드라마 을 보면서 허니버터칩을 먹는 소소한 행복. 하긴 허니버터칩 말고는 즐거운 뉴스를 찾아보기 힘든, 살기도 팍팍한 요즘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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