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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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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석연찮은 새출발

윤종규 회장 선임 위해 열린 KB금융지주 임시주주총회 현장…

사외이사 책임론·지배구조 개선 의지 질문에 책임 피하는 답변만
등록 2014-11-27 15:19 수정 2020-05-03 04:27

“총회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윤웅원 KB금융지주 회장 직무대행)
“반대합니다. 이의 있습니다!”(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의사봉 소리와 박수 소리, 그리고 고성이 뒤범벅됐다. KB금융지주 이사회가 새 회장으로 추천한 윤종규 후보의 선임을 위해 11월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의 풍경은 어수선했다. 지주회사가 출범한 이래 끊임없이 내홍을 겪어온 KB금융그룹의 ‘새 출발’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200여 명의 주주로 꽉 채운 이날 주주총회 현장엔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맴돌았다. KB금융그룹 입장에서는 이른바 ‘KB 사태’가 봉합된 뒤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는 첫 발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사외이사들의 ‘책임론’을 묻는 비판이 언론 등을 통해 이어졌다는 점은 주주총회에 서는 KB금융그룹의 경영·이사진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만했다. 앞서 KB 사태 등을 통해 드러난 지배구조·사외이사 문제 등을 지적하겠다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 등이 이날 주주 자격으로 주주총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도 무게를 더했다.

낙하산 인사가 쌓여 터진 갈등
사실 KB 사태는 금융계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올해 KB금융그룹에서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1월 KB국민카드의 고객정보 대량 유출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뒤, KB국민은행에서는 주전산 시스템을 ‘IBM’에서 ‘유닉스’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KB금융지주를 책임지는 임영록 전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이를 문제 삼은 이건호 당시 KB국민은행장이 금융위원회에 선정 과정에 대한 감사를 의뢰하면서 회사 내부 갈등이 터져나왔다. 결국 이 행장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뒤 사임했고, 중징계를 받고도 버티던 임 회장도 뒤늦게 이사회 해임 의결로 KB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내놨다.

이 ‘흑역사’는 단순한 내부 갈등만은 아니다. 과거 정부 시절부터 이어져온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가 쌓이면서 나타난 문제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정부는 2003년 국민은행의 지분 9.1%를 모두 매각했지만, 2008년 이후 국민연금공단이 최대주주 지위를 대부분 유지해오고 있다. 그런 탓에 경영진이 교체될 때마다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 정권 실세나 그 측근, 또는 ‘모피아’(재무부+마피아)가 임명되는 관행이 굳어져갔다. 금융관료 출신인 임 회장과 이 행장이 나란히 선임되면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이들의 힘겨루기가 내부 갈등을 더 키웠다는 비판이 이는 이유다. 앞서 KB금융지주가 출범한 이후 회장을 맡았던 황영기·강정원·어윤대 회장도 모두 정권 실세의 낙하산 인사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각자 다른 이유로 임기를 못 채운 채 불명예 퇴진을 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이날 새로 추천된 윤종규 회장은 그동안의 갈등을 봉합하고자 KB금융지주 회장과 KB국민은행장을 겸임하기로 했다. 삼일회계법인 부대표와 김앤장 상임고문을 거친 그는 KB금융지주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리스크관리책임자(CRO)의 업무를 담당해 내부 갈등을 봉합하기에 적절하다는 사내 평가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앞으로의 경영 방침 등을 묻는 질문에 “그룹 자산의 80%를 은행이 차지한다. 회장·행장의 겸임에 대해 장단점이 모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주회사가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은행 부문의 경쟁력 강화뿐만 아니라 LIG손해보험을 인수해서 그룹의 비은행 부문을 강화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날 주주총회에서는 윤 회장보다는, 그를 추천한 사외이사들을 향해 날 선 질문이 쏟아졌다. 주주총회에는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이경재 전 중소기업은행장을 제외한 사외이사 8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의장은 주주총회 전날 저녁, 보도자료를 내고 “윤종규 신임 회장의 취임과 동시에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직과 사외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KB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지는 않았다.

물러나겠다, 다만 책임 때문은 아니다

이날 주주 발언에 나선 김상조 소장은 그 문제를 두고 질타했다. “(지난 KB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로서 지주회사가 무엇을 했나? 경영진·이사진은 주주들의 대리인으로 어떤 권한과 책임을 이행했는지 설명해달라.” 앞서 김 소장은 10월2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중요한 문제점은, 금융감독 등 외부 압력에 좌우되거나 이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내부 구성원들의 이해가 너무 강하게 반영되는 점이다. 주주의 권리를 강화함으로써 복잡한 이해관계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경영진·이사진은 사외이사의 책임론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긋기에 나섰다. 주주총회 의장을 맡은 윤웅원 KB금융지주 회장 직무대행(부사장)은 KB국민은행의 주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갈등과 관련해 KB금융지주 이사회가 파악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독립 자율 경영이라 교체 업무는 은행 이사회에서 진행했다. 그럼에도 여러 사회적 논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그즈음 은행에서 금감원에 검사 요청이 있었고, 검사 과정에서 지주사의 경영진이 별도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영진 사외이사(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KB 사태 당시) 우리가 더 잘했더라면 우리 이사들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감은 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이사회분들은 경험이나 덕목이나 모든 면에서 볼 때 대중으로부터 질타를 받을 그런 분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주주총회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윤 부사장이 “앞으로 주주간담회 등을 통해 여러 회사 발전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소통의 창구를 만들도록 하겠다”며 서둘러 주주총회 폐회를 선언하자, 김 소장 등이 항의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앞서 김 소장 등이 사외이사 문제 등에 대한 질의를 계속하자 윤 부사장은 “폐회 선언 뒤 질의를 계속 받겠다”고 말했는데, 폐회 선언이 끝나자마자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이사진들이 모두 주주총회장을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에 김 소장은 “충분한 질의를 보장하겠다고 한 진행 약속을 어겼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소통 창구 만들겠다면서 주주 입 막아

윤 회장은 이날 진통 끝에 마무리된 주주총회 뒤 이어진 이사회에서 회장으로 공식 선임됐다. 그러나 KB 사태 이후 KB금융그룹의 문제를 풀어내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금융 분야의 경험이 없는 대학교수 등이 은행 등의 사외이사로 가지 않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내년부터 적용하겠다고 11월20일 밝혔다. KB 사태의 과정에서 교수 출신이 대부분인 사외이사들이 아무런 갈등 조정자 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한 사후 대책이다. 그 다음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여전히 금융지주 KB의 사외이사들은 스스로를 질타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새 돛을 올린 KB의 출항에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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