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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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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현대차를 구하라

편안함·정숙성 강점으로 내세운 ‘아슬란’ 고급차 시장 출격…
출시 뒤 소비자와 소통 강조한 현대차 진정성도 시험대에
등록 2014-11-13 15:13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0월30일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대형 세단 ‘아슬란’ 출시 행사에서 김충호 현대자동차 사장(오른쪽)과 곽진 부사장이 신차를 소개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지난 10월30일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대형 세단 ‘아슬란’ 출시 행사에서 김충호 현대자동차 사장(오른쪽)과 곽진 부사장이 신차를 소개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아슬아슬한 현대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을 지켜야 한다.’ 현대자동차가 위기감 속에 내놓은 신차 아슬란을 11월4일 경기도 파주에서 시승했다.

차명 ‘아슬란’은 터키어로 사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슬란은 사자처럼 포효하는 스타일의 자동차는 아니다. 현대차의 설명대로 편안함과 정숙성을 강점으로 내세운 차다. 경기도 파주출판단지에서 출발해 자유로를 타고 평화누리공원까지 왕복하는 약 90km의 시승 코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

먼저 시동을 걸면 바깥 엔진 소리는 대부분 걸러져 실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현대차는 엔진룸에 흡차음재를 확대 적용하고, 차문 유리에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적용해 외부 소음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반응은 빠르다. 힘껏 밟지 않아도 세 자릿수 속도까지 시원하게 올라간다. 디젤엔진 자동차가 머리를 뒤로 잡아끄는 듯한 속도감을 준다면, 가솔린엔진을 단 아슬란은 운전자와 함께 부드럽게 속도를 올린다.

시승 코스인 파주 위쪽 자유로는 북한을 향해 뻗어 있어 통행량이 적기 때문에 아슬란의 가속력을 실험해보기에 좋았다. 힘껏 채찍질을 해 고속으로 달려도 아슬란은 도로 위에 착 달라붙어 달린다는 기분이었다. 만약 고속으로 달릴 때 운전자가 ‘날아간다’는 기분이 들면 발은 자연스레 브레이크 페달로 향한다. 반대로 착 달라붙어 달린다는 기분이 들면 운전자는 편안함을 느낀다.

구태헌 현대차 국내판매전략팀장은 이를 두고 “제네시스가 주행 성능 위주의 고급 세단이라면, 아슬란은 프리미엄 컴포트(편안함)로 포지셔닝시키겠다(자리를 잡겠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아슬란의 성격뿐만 아니라 배기량과 가격도 세밀히 계산했다. 현대차는 아슬란을 엔진 배기량 3.0ℓ와 3.3ℓ 두 가지 모델로 출시했다. 그랜저(2.4ℓ, 3.0ℓ)와 제네시스(3.3ℓ, 3.8ℓ)의 중간급 모델인 셈이다. 가격도 그랜저가 3천만원대고 제네시스가 4660만~6960만원임을 감안해, 아슬란은 3990만~4590만원으로 책정했다.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 비어 있던 수요층을 파고든 셈이다.

김상대 현대차 국내마케팅실장은 10월30일 아슬란 출시 행사장에서 “국내시장에서 대형 고급차 시장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시장 세분화 차원에서 제네시스(후륜구동)와 구별되는 세단을 내놓았다”고 했다. 현대차 모델끼리 고객을 뺏는 ‘시장 간섭’을 막으면서 고급차 수요를 잡으려 노력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가 세밀하게 소비자층을 분석하고 나선 것은 수입차 공세를 막기 위해서다. 현대차는 지난해 말 신형 제네시스(2세대)를 출시했지만, 수입차 시장점유율이 커지는 추세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10여 개 수입차 브랜드가 다양한 자동차를 쏟아내면서 소비자의 선택 폭은 넓어지고 관심도 쏠리고 있다. 이에 대응해 현대차도 모델을 늘릴 필요성이 생겼다. 또 예전처럼 소비자가 아반떼와 쏘나타를 첫 차로 구입한 뒤 그랜저로 다음 차를 바꾸는 공식이 깨졌다. 김충호 현대자동차 사장은 “쏘나타나 그랜저 고객이 다음에 바꾸는 차로 수입차를 선택할 때 가슴이 아팠다”고 토로할 정도다.

현재 수입차 업체들의 기세는 놀랍다. 수입 자동차 등록 자료를 보면, 매달 판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올해 10월에도 BMW, 벤츠, 폴크스바겐, 아우디 등 수입차 업체는 1만6436대를 팔아,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6.1% 증가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10월까지 누적된 판매 대수(16만2280대)는 이미 지난해 수입차 판매 대수(15만6497대)를 뛰어넘었다. 수입차 업계의 예상보다도 빠른 성장세다.

중형·고급 세단 시장점유율 하락

판매 대수보다 위기감이 더 큰 것은 수익성이 좋은 중형 및 고급 세단에서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출시한 신형 쏘나타(LF)는 1만 대 이상 팔리는 이른바 ‘신차 효과’가 석 달 만에 끝나버렸다. 현대차는 발빠르게 쏘나타 택시 모델을 출시하는 등 대응하고 있지만 6천 대 수준 판매량이다. 신형 모델임에도 연비가 향상되지 못한 게 소비자의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전 쏘나타(YF) 모델은 출시 당시 6개월 넘게 1만 대 이상 팔렸다.

현대차가 자랑하는 고급 세단인 제네시스도 매달 2천~3천 대가 팔리고 있지만, 수입차로 향하는 고객을 돌려세우기엔 역부족이다. 소비자의 관심이 디젤 수입차로 쏠리고 있지만, 제네시스는 가솔린 모델뿐이다. 수입차 업계는 3천cc 이상 자동차를 올해(10월 기준)에만 1만8328대나 팔았다. 수입차 내 디젤 모델의 점유율은 67.9%에 이른다.

이에 대응해 현대차그룹은 “2020년까지 평균 연비를 25% 높인다”는 계획을 11월6일 발표했다. 현재 보유 중인 10종의 엔진 가운데 70%를 차세대 엔진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다른 자동차 업체에 뒤지고 있는 디젤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목표도 있다. 차량 연비 향상의 핵심 요소인 변속기 효율 개선 및 다단화에도 힘쓰겠다고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 10월 증권사 연구원들의 질문에 “차세대 파워트레인 개발은 끝났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설계에서부터 스몰오버랩(충돌 테스트)에 대응하면서 중량이 늘지 않도록 연비를 개선시킬 생각이다. 엔진 다운사이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차세대 파워트레인을 장착하는 차들이 나올 것이고, 연비 효율은 빠르게 개선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슬란을 통한 수요 확보와 차세대 기술 개발보다 더 눈에 띄는 움직임도 있다. 그동안 현대차는 신차를 출시할 때마다 ‘수입차와 한판 붙겠다’는 구호를 내세웠는데, 아슬란 출시 때는 ‘소비자와 소통하겠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또 현대차는 지난 10월 국내 영업본부 안에 소비자 전담 조직인 ‘커뮤니케이션팀’을 만들었다. 소비자와 소통하는 조직을 만들어 신차 출시 뒤 모니터링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현대차 홍보실 관계자는 “인터넷이나 동호회에서 나오는 불만 사항을 검토해 현업 부서에 전달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소비자의 불만

그동안 현대차는 ‘수출차와 내수차의 품질이 다르다. 국내 차값이 국외보다 비싸다’는 국내 소비자들의 이야기에 ‘사실과 다르다’고만 대응해왔다. 하지만 현대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동차 판매량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아슬란 출시 이후 ‘소비자·투자자와 소통하겠다’는 현대차의 진정성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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