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캐릭터를 담은 광고판이 타이 방콕의 지상철(BTS) 객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타이에서 만난 여성이 물은 것은 전화번호도 아니고 전자우편 주소도 아닌, 모바일 메신저 아이디였다.
타이 군부가 쿠데타를 선포한 지 며칠 뒤인 5월27일, 방콕 중심가인 빅토리아 모뉴먼트(승리기념탑) 광장. 이곳에서 만난 한 타이 여성이 페이스북(Facebook) 아이디가 있느냐고 물었다. 마침 스마트폰을 열어 페이스북에 접속하려 했지만 잘 안 됐다. 그러자 그는 모바일 메신저에 접속해 아이디를 찍더니 친구 신청을 했다.
전화번호·전자우편 없어도 OK그는 타이에서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하면, 수천km 떨어진 한국 기자에게 라인을 통해 알려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 일부러 네이버에서 만든 ‘라인’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 그의 라인 메신저엔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날 쿠데타에 반대하는 방콕 시민들은 빅토리아 모뉴먼트 광장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벌인 시위 소식을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뿐만 아니라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서도 전파했다.
광고
모바일 메신저는 이제 스마트폰을 든 전세계인들의 소통 도구다. 국적과 언어가 달라도 모바일 메신저 아이디를 물어볼 정도로, 모바일 메신저는 전세계적으로 대중화됐다.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보다 사용 범위가 광범위하다. 동남아시아 사람들과 연락할 때는 ‘와츠앱’,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국제전화를 사용해 목소리를 들으며 친근감을 쌓는 것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이모티콘’을 날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국경이 없는 탓에 모바일 메신저의 전세계 경쟁은 치열하다. 더구나 정보기술(IT) 세상은 특성상 이용자의 선호가 한 업체로 쏠리기 쉽다. PC 운영체계가 윈도로, 검색엔진은 구글로, SNS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통일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때 국내시장을 주름잡았던 ‘싸이월드’도 세계 챔피언인 페이스북 등에 밀려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 상태다. 모바일 메신저도 국내시장을 카카오톡이 석권했지만, 언제 공략당할지 모른다.
모바일 메신저의 장점은 스마트폰 이용자가 휴대전화를 여는 관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시간, 매분, 매초 메시지를 주고받기 때문에 사용자가 언제나 모바일 메신저를 들여다본다. 이는 기업에 엄청난 광고 마케팅 시장 역시 함께 열리는 것을 의미한다. 페이스북도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해 와츠앱을 올해 초 19조원에 인수했다. 라인의 지난해 매출액도 4500억원을 넘어섰다.
이 세계적인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한국 업체가 만든 라인과 카카오톡이 경쟁하고 있다. 카카오톡은 국내시장을 석권한 뒤 국외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라인은 국내시장이 아닌 일본에서 시작해 성공을 거둔 뒤 다국적 모바일 메신저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라인은 동남아시아의 경제 맹주인 타이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광고
5월26일 방콕에서 만난 이진우 라인 타이지사장은 “라인은 현재 타이에서만 25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입지가 상당히 확고하다”고 소개했다. 방콕 중심가 사통로드의 대형 빌딩 41층에 입주한 라인 타이지사에선 수도를 관통하는 짜오프라야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라인은 타이에서의 사업이 확장되면서 현지 인력 수십 명을 더 채용하기 위한 사무실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1
“타이에서 모바일 메신저의 시장 전망은 밝습니다. 타이는 동남아 국가 가운데 경제가 튼튼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트렌드에도 민감해 고가의 첨단 스마트폰 수요가 많습니다.” 최근 방콕을 상징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로 ‘치마를 입은 방콕 여성이 스쿠터 뒤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메신저를 하는 광경’이 꼽힐 정도다. “타이가 모바일 메신저의 글로벌 각축장”이라고 말한 이진우 지사장은 “라인은 위챗이나 페이스북과도 경쟁하고 있고, 와츠앱을 이기고 있지만 방심할 수 없다”고 했다.
라인이 타이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스티커’ 때문이다. 라인은 메시지를 보낼 때 전송자의 갖가지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캐릭터인 스티커를 개발해 ‘대박’을 쳤다. 라인이 처음 성공한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 지역에서도 스티커의 인기는 높다. 모바일 메신저 사용자들이 스티커를 즐겨 사용하면서 기업들도 홍보 수단으로 자사 스티커를 만드는 등 마케팅 활용도가 높다. 스티커를 구매한 뒤 일정 기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그 기간에 다른 모바일 메신저로의 이탈을 막는다.
광고
타이지사의 바라디 바사바바난다 홍보팀장은 “문자로만 메시지를 보내면 (말로 하지 않다보니) 오해를 살 경우도 있는데, 스티커는 그런 오해를 불식해주고 대화를 부드럽게 만들어 타이인들이 좋아한다. 내 어머니도 즐겨 쓰고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지화에 노력한 것도 라인의 성공 비결이다. 이 지사장은 “한류가 있으니 한국 연예인을 이용해도 될 것 같은데, 현지 유명인을 섭외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혼자 에이전시를 쫓아다녔다”며 웃었다. 라인은 유명인들에게 라인 계정을 만들게 한 뒤, 유명인과 소통하기 위해 팬들이 라인에 가입하게 하는 홍보 전략을 쓰고 있다. “타이에 ‘러브 이스’라는 유명한 작곡가가 있다. 약속도 없이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연히 마주쳤다. 거기서 ‘러브 이스’를 앉혀놓고 무작정 라인을 소개했다. 앱을 깔아주고 스티커를 보여주니 재미있어하더라. 고생한 게 통했는지 그 뒤 3개월 동안 무료로 홍보를 해줬다.” ‘러브 이스’는 소속 가수들과 라인을 통해 채팅한 내용을 자신의 SNS에 올리고 스티커도 이용하면서 많은 일반인들이 이를 보고 라인에 접속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페이스북 12조, 텐센트 6조, 네이버는?라인은 현재 타이를 비롯해 일본과 대만에서 모바일 메신저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남지웅 네이버 홍보팀 과장은 “인도네시아에선 사용자가 2천만 명이 넘었고, 스페인(1800만 명) 등 1천만 명이 넘는 라인 이용자가 있는 나라가 10곳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인의 시장 공략이 앞으로도 성공할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위챗과 와츠앱 등이 풍부한 자금력으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모바일 메신저는 친구가 보낸 알림 메시지를 보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어서 새로운 메신저의 접근을 막기 어려운 시장이다. 마케팅 비용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타이 중심가 광고판에선 세계적인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가 위챗을 선전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바라디 홍보팀장 역시 “위챗이 타이에서 수십억원씩 마케팅비를 쏟아부으며 텔레비전 광고 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챗은 중국 IT 기업인 텐센트에서 만든 모바일 메신저로 중국 시장을 장악한 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라인과 격돌하고 있다.
여기에 와츠앱의 공략도 만만치 않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지난 2월 와츠앱 인수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향후 몇 년간 최우선 전략은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저커버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 수에서 압도적 우위다. 사용자가 10억 명을 넘으면 얼마든지 적절한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페이스북의 공세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KTB투자증권도 지난 6월3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페이스북 12조5천억원, 텐센트 6조6천억원 등 경쟁사들의 압도적인 현금 보유고를 고려할 때 네이버의 현금 보유고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마케팅 활동을 위한 자금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증권가에선 카카오톡이 다음과 합병해 우회상장을 함으로써 자금 확보에 나선 것처럼, 라인 역시 기업을 공개(IPO)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본다.
모바일 메신저 업체가 돈을 쏟아붓는 격전지 가운데 한 곳이 인도네시아다. 카카오톡은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린 첫 교두보로 인도네시아를 찜했다. 이수진 카카오톡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인도네시아는 스마트폰이 막 보급됐고, 모바일 메신저의 독보적인 1등이 없는 곳이다. 도전해볼 만한 나라다”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타이처럼 블랙베리와 아이폰 등 기존 스마트폰의 점유율이 줄고 삼성 갤럭시 등 새 스마트폰이 늘어나면서, 휴대전화를 바꾼 소비자에게 다른 모바일 메신저가 접근하기 쉬운 상황이다. 새롭게 진출한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라인과 와츠앱, 블랙베리메신저(BBM), 위챗 등이 다양하게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수진 팀장은 “모바일 메신저가 플랫폼 역할을 하려면 의미 있는 1위를 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10개 국가에 1명씩 사용자가 있는 것보다 한 나라에 10명의 사용자가 있어야 네트워크 역할을 할 수 있다. 워낙 규모가 큰 회사들과 경쟁해야 하니, 카카오톡은 (인도네시아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베니 아리 자얀티는 아직 카카오톡은 잘 모른다고 했다. “라인도 스마트폰에 깔려 있지만 친구들이 대부분 와츠앱을 쓰고 있어 와츠앱을 쓴다.” 카카오톡은 인지도가 낮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텔레비전 광고 등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 소비자 샘플 집단을 만들어 토의한 내용도 한국 본사와 인도네시아에 파견된 직원들이 함께 화상회의로 분석하고 있다.
세계시장 가늠자, 동남아시아강정수 전문연구원은 “카카오톡이 현재 수익률이 낮은 상태에서 와츠앱 등 빅 플레이어가 있는 세계시장에 나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라인 역시 스티커 기능 등이 성공하면서 안정화됐지만, 이란에서 (서구) 와츠앱을 금지하는 등 우연적인 사건도 도움이 됐다. 그러나 미국이나 북미, 나머지 국가들에선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카카오톡이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라인이 와츠앱(미국)·위챗(중국)의 공세 속에서 세계시장을 나누는 ‘천하 삼분지계’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 달렸다.
방콕(타이)·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완 기자 wani@hani.co.kr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경남 산청 산불 진화대원 2명 사망…2명은 실종
풀려난 김성훈에 놀란 시민사회 “법원이 내준 영장 막았는데…”
산림청,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심각’ 발령
한동훈 얼굴 깔고 ‘밟아밟아존’…국힘도 못 믿겠단 윤 지지자들
최상목, 산청 산불 진화현장 방문…“가용 장비·인력 총력 대응”
‘KO 머신’ 전설의 헤비급 복서 조지 포먼 타계
국힘 장동혁 “윤 탄핵 물 건너가…계엄은 반국가세력 맞선 시대적 명령”
“결국 김건희” “경호처가 사병이야?” 누리꾼 반발한 까닭
의성서도 대형 산불, 3단계 발령…진화율 30%
민주노총, 정년 연장 추진 공식화…“퇴직 후 재고용 절대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