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지난 4월1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오른쪽은 2010년 6월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한겨레 박종식, 정용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맏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삼성그룹의 건설·중화학 계열을 상속받을까?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지는 분위기다.
지난 4월2일 삼성그룹은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병하는 사업조정을 단행했다. 외견상으로는 적자(-421억원)인 삼성석유화학과 흑자(2053억원)인 삼성종합화학을 묶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구도다. 지난 3월31일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에 이은 삼성그룹의 재빠른 행보다.
에버랜드가 관련 없던 패션을이번 합병 조처를 이해하려면 삼성 사업조정의 연쇄반응이 시작된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삼성은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될 움직임을 보이자, 지난해 9월 제일모직에서 패션 부문을 떼내 삼성에버랜드에 합치기로 결정한다. 삼성에버랜드의 내부거래 비중이 2012년 기준 46.38%에 달하는 등 매우 높은 게 고려됐다. 삼성에버랜드는 총수 일가의 그룹 경영권을 지켜주는 지주회사 격이라 45.56%에 달하는 이건희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낮출 수도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월부터 총수가 있는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그룹의 경우 대주주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보고 감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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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될 수 있는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해 부동산·건물관리 등이 주 업종인 삼성에버랜드는 그동안 관련 없던 사업 분야인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받아들였다. 패션 부문의 한 해 매출은 1조7751억원 정도다. 결국 멀쩡한 회사를 이합집산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다음은 삼성석유화학 차례였다. 삼성석유화학의 내부거래 비중도 11.96%(2012년 기준)에 달한다. 삼성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의 합병을 이해하려면 다시 20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삼성석유화학의 대주주인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 경영전략담당 상무 시절이던 2007년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에 450억원을 주고 BP가 보유한 삼성석유화학 지분을 인수한다. 당시 삼성석유화학은 적자 상태의 기업으로 BP가 철수를 고려 중이었다. 당시 기사를 보면 삼성그룹 고위 임원의 말이 나온다. “영국 BP가 삼성 쪽에 인수 의사를 타진했는데, 계열사들이 적자 회사 지분을 추가로 떠안기에는 부담이 많아 결국 오너 일가가 인수하게 됐다. 삼성물산은 삼성석유화학 제품 판매를 맡는 등 관련성이 깊어 인수에 참여했으며, 이 회장이 직접 인수하면 나중에 상속 문제가 발생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나 둘째딸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는 각각 소속 회사가 인수를 포기한 상황이어서 부담스러웠다.” BP 지분의 일부는 삼성물산이 인수하고, 나머지 지분 33.2%는 이부진 사장이 개인 돈을 들여 인수했다는 것이다.
7년 전에 사놓았던 이 지분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을 넘기자, 삼성은 이번엔 이부진 사장의 지분율을 낮추기로 결정한다. 삼성은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각각 1 대 2.1441의 비율로 합병하게 한다. 삼성종합화학이 신주를 발행해 삼성석유화학의 주식과 교환하는 흡수합병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이부진 사장의 통합 삼성종합화학 지분은 4.91%까지 떨어지게 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 차례는 건설 부문하지만 연쇄 사업조정은 그간 시장의 예상과는 다소 벗어난 것이다. 증권업계에선 이부진 사장이 삼성의 건설과 중화학 계열을 가져가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레 전망해 왔다. 이 사장은 2009년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 경영에 참여했고, 2010년엔 삼성물산 고문으로 경영회의 등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삼성에서 3세 승계가 이뤄지면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의 전자·금융 부문, 이부진 사장이 건설·중화학 부문, 이서현 사장이 패션·미디어 부문을 나눠 가져갈 것이라는 예상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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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삼성종합화학의 출범은 이부진 사장의 영향력을 오히려 감소시킨다. 통합 삼성종합화학의 주주 구성은 삼성물산이 36.99%, 삼성테크윈이 22.56%, 삼성SDI가 9.08%, 삼성전기가 8.97%, 삼성전자가 5.25%이다. 이부진 사장을 제치고 삼성 건설 부문의 맏형인 삼성물산이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엔지니어링(7.8%·2013년 12월 기준)과 삼성정밀화학(5.6%)의 지분도 가지고 있다. 삼성물산을 장악하면 삼성그룹의 건설과 중화학 계열의 부문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12.9%)이지만, 삼성물산은 ‘총수 일가 →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보험 → 삼성전자 → 삼성SDI → 삼성물산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고리 속에 있다. 삼성물산을 삼성전자에서 따로 떼어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자 쪽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참여가 크다. 반면 이부진 사장은 삼성물산의 고문일 뿐 지분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삼성물산 쪽 사정을 아는 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에서 시작됐다. 이곳을 장남인 이재용 부회장이 아닌 이부진 사장이 가져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또 이부진 사장은 삼성물산 경영에는 별로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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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삼성 계열사들의 현재 구도는 20년 전에 만들어졌다. 경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업 다각화를 하다보니, 계열사마다 중복되고 충돌하는 부분을 조정할 필요가 생겼다”고 말했다.
삼성 사업조정의 다음 차례는 건설 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증권은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 뒤 ‘두 회사의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삼성물산의 불확실성이 감소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고 삼성물산에 주목했다. 변성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 악화로 인한 유상 증자 및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의 삼성물산 이동과 관련해 불확실성이 있었는데, 이제는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인수할 명확한 거래 상대방이 생겼다”고 말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무리한 국외 저가 수주로 인해 영업 실적이 적자로 돌아서는 등 사업구조가 악화됐다. 증권업계에선 이를 기회로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실제 지난해 삼성물산은 삼성SDI로부터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등을 인수해 삼성엔지니어링의 2대 주주(7.81%)로 뛰어올랐다.
여기에 삼성엔지니어링 지분(13.1%)을 가지고 있던 제일모직이 삼성SDI로 합병되자, 다시 삼성물산으로 지분이 옮겨질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다.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계열사 지분을 삼성SDI의 엔지니어링 지분과 교환하면, 삼성물산은 현금 유출을 줄이면서 합병에 한발 더 다가가게 된다.
김상조 소장은 “삼성그룹이 3세로 승계되면서 화학이나 건설 부문이 이부진 사장에게 갈지, 이재용 부회장에게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본다. 이건희 회장이 누구에게 물려준다고 말하는 순간 임직원들이 한쪽에 쏠리기 때문에 이 회장이 살아 있는 동안엔 미리 승계가 결정되진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김 소장은 “대신 언젠가 있을 계열 분리를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복잡한 지분 구조로는 작업을 하기 어렵다. 이참에 소유 구조를 가능한 수준까지 단순화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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