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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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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낳고 박근혜가 키운다

방통위 종편 심사, 재승인 위해 심사 기준마저 흔들어
편파 대가로 특혜 얻어 생존하는 ‘종합편파채널’
등록 2014-03-25 16:16 수정 2020-05-03 04:27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3월19일 종합편성채널 재 승인안을 가결하고 있다. 봐주기 심사 의혹 속에 ‘종합편파 채널’로서의 종편은 3년간 합법적 지위를 연장받았다.한겨레 박종식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3월19일 종합편성채널 재 승인안을 가결하고 있다. 봐주기 심사 의혹 속에 ‘종합편파 채널’로서의 종편은 3년간 합법적 지위를 연장받았다.한겨레 박종식

‘종편’은 없다. 뉴스 보도를 비롯해 드라마·교양·오락·스포츠 등 여러 장르를 편성해 방송의 다양성을 구현하겠다는 종합편성채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종편’은 있다. 지난 3월19일 방송통신위원회는 TV조선과 JTBC, 채널A 등에 대한 재승인을 의결했다.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숱한 막말로 질 낮은 편파성을 드러내온 ‘종합편파채널’이 3년의 합법적 지위를 획득했다. “종편 한두 곳은 재승인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던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이미 경질된 채로 ‘봐주기 심사’가 진행됐다.

‘보도 전문 종편’이란 형용 모순

재승인 심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종편들이 보도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을 대폭 올리겠다고 한 점이다. 2011년 출범할 때 약속했던 보도 편성 비율을 지키지 않은 채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마구 쏟아낸 종편들이 아예 보도 편성 비율을 높이겠다고 나선 것이다(표1 참조). TV조선은 출범 당시 이 비율을 24.8%로 제시했으나, 실제 방송 비율은 38%에 달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41.8%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차별화된 보도 전문 종편’이라는 말까지 동원했다. 이런 행태는 채널A도 마찬가지다. 종합편성채널이 아니라 아예 보도채널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선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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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은 그동안 시사·보도 프로그램으로 먹고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제작비를 적게 들이면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으로 시청률을 올리는 재미를 봤고, 극우적이고 편향적인 논조로 보수 언론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꾀해왔다. 2011년 개국 방송 때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인터뷰에서 ‘형광등 100개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던 TV조선은 박근혜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도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게 요즘 재미가 들리신 모양입니다. 박 대통령이 비유 표현을 쓰셔서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2월20일 ) 반대로 야권에 대해서는 ‘새정치?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3월5일 채널A ) 등 조롱과 궤변을 쏟아내기 일쑤다. “지방선거에서 대놓고 편파 보도를 하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종편국민감시단)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공정언론대책특위는 2월 한 달 동안 종편의 편파·막말 보도 사례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지난 3월17일 발표했는데, 이미 숱하게 알려진 반언론적 내용보다 오히려 제작진의 해명에 눈길이 쏠린다. “생방송이라 방송 내용이 미흡하고 돌발 상황이 많다. 패널들에게 경고 전화가 왔음을 상기시키고 앞으로 주의하겠다“ “너무 팩트에서 벗어난 발언이었다. 자제하겠다” “생방송 중이라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식이다. 특위 간사인 허영일 부대변인은 “미국에서 문제가 됐던 ‘폭스뉴스 효과’의 사례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종편의 보도 태도에 견주면 폭스 효과는 심각해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애초 기준 따르면 TV조선·채널A는 탈락

라는 책은 가 대중의 의견을 조작하는 데 여섯 단계를 거친다고 분석한다. 첫째, 보수 지향적 활동가가 대중에게 거짓 정보를 전달한다. 둘째, 전달된 거짓 정보를 가 대량의 보도로 퍼뜨린다. 셋째, 는 거짓 정보를 보도하지 않는 미디어를 집중 비판한다. 넷째, 대중매체는 미디어로서 명성을 지키기 위해 거짓 정보를 보도하게 된다. 다섯째, 거짓 정보는 더 이상 거짓이 아닌 게 되고 는 ‘사실’을 제일 먼저 보도한 매체로 인식된다. 여섯째, 이에 사용된 거짓 정보는 이용 가치가 소모된 뒤 곧바로 대중에게 잊혀진다.

보도 편성 비율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종편의 계획은 콘텐츠 투자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이미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치중해 콘텐츠가 부실하고, 재방송 비율만 치솟은 상황이다. 종편이 출범 때 약속했던 콘텐츠 투자는 이행률이 20~40% 수준에 불과하다(표2 참조). 재방송 비율은 JTBC가 무려 62.2%에 이르고, 채널A(46.2%)와 TV조선(43.5%)도 절반 가까이 된다(표3 참조).

이런 문제들은 방통위도 줄곧 지적해온 것이지만, 방통위는 문제는 덮어주고 각종 특혜는 그대로 두는 식으로 종편의 생존을 허가했다. 방통위의 의뢰로 구성된 심사기준 연구반은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과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 항목에서 배점의 60%를 넘지 못하면 탈락시키거나 조건부 재승인을 하는 ‘과락제’를 제시했으나, 방통위는 이를 50%로 줄였다. 연구반 기준대로라면 TV조선(57%)과 채널A(55.3%)는 탈락 대상이다. 방통위는 지상파 심사안보다 헐거운 기준을 적용해 감점 규모를 줄이는가 하면, 행정소송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감점 대상에서 빼주었다. 높은 재승인 점수(1천 점 만점에 기준 650점. TV조선 684.73점, JTBC 727.01점, 채널A 684.66점)는 그래서 나왔다. 이경재 위원장은 3월17일 재승인 의결안을 상정한 뒤 “각 회사들이 사업계획서를 당초에 낸 것과 많이 바꿔서 냈다. 재승인 조건을 면밀히 따지기 위해 사업계획서 검토할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며 의결을 보류하더니 이틀 만인 3월19일 재승인안을 표결에 부쳤다. 야당 쪽 추천 인사인 김충식 부위원장과 양문석 상임위원 등이 퇴장한 가운데 강행됐다.

특혜로 탄생해 특혜로 연명하는 괴물

종편이 갖고 있는 특혜는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종편은 유료 방송인데도 의무적으로 편성되는 채널이고, 출범 때부터 10번대 ‘황금 채널’을 배정받았다. 의무 전송 채널은 공공성이 강한 채널을 케이블 방송망 사업자들이 의무적으로 전송하도록 방송법에 규정한 것으로, KBS1과 EBS, 국회방송, 방송대학TV, 종교채널 등이 해당된다. 케이블 사업자(SO)들은 종편을 의무적으로 송신하면서 이들에게 수십억원대의 수신료까지 내고 있다. 종편은 방송발전기금 납부는 유예받으면서 발전기금의 지원은 받고 있다. 특혜로 탄생해 특혜로 생존해가는 종편을 두고 ‘이명박 정부가 낳고 박근혜 정부가 키우는 괴물’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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