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인 화폐일까, 화끈한 투자처일까.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Bitcoin)의 정체가 궁금했다. 일단 비트코인부터 손에 넣어야 했다. 비트코인을 갖는 방법은 두 가지. 컴퓨터를 이용해 비트코인을 직접 발행(채굴)하거나 타인이 이미 발행한 비트코인을 거래소에서 사들이면 된다. 쉽게 가기로 했다. 국내 비트코인 거래소인 ‘코빗’에 지난 1월8일 가입했다. 휴대전화로 본인 인증 과정을 거쳤다. 원화로 2만원을 예치했다. 당시 시세로 1비트코인(BTC)은 87만1천원이었다. 주문을 냈다. 수수료 0.6%를 떼고 0.02282224BTC가 생겼다. 나의 첫 가상화폐였다.
상가 건물 임대료를 비트코인으로 받다지폐·신용카드 같은 실물이 없는 터라 비트코인을 사용하려면 입출금 계좌에 해당하는 전자주소가 담긴 ‘전자지갑’이 필요했다. 이튿날 휴대전화에 ‘전자지갑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았다. 이번엔 본인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곧 나의 비트코인 주소가 생성됐다. 거래소에 보관해둔 내 비트코인을 내 전자지갑으로 옮겼다. 은행의 계좌이체처럼 거래소 사이트의 ‘비트코인 출금’ 주소에 내 전자지갑의 주소만 치면 됐다.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넘어가는 데 2시간30분이나 걸렸다. 비트코인의 모든 거래 기록은 은행과 같은 중앙 서버가 아닌 모든 이용자의 컴퓨터 네트워크로 분산돼 공동 관리되는 터라, 새로운 거래를 장부에 기록하는 데 평균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전자지갑으로 들어온 내 비트코인은 0.02242224BTC(1만7960원)였다. 하룻만에 비트코인 시세가 떨어져 약 10%(2천원)의 손해가 난 것이다. 짜증을 억누른 뒤 비트코인으로만 결제가 되는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갔다. 1만7천원짜리 ‘원목 키친타월 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결제는 아주 간단했다. 전자지갑 앱을 연 뒤 스마트폰으로 쇼핑몰 사이트 결제창에 뜬 QR코드를 찍었다. QR코드엔 쇼핑몰의 비트코인 주소와 결제 금액이 담겨 있다. 그러고는 전자지갑의 ‘비트코인 보내기’를 눌렀다. 결제가 금세 끝났다. 신용카드번호, 공인인증서, 결제 금액, 상대방 계좌번호 등은 하나도 필요 없었다.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이렇게 현실세계로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국내에서도 2만여 명이 비트코인을 보유한 것으로 코빗은 추정하고 있다. 원화와 비트코인 간 교환되는 거래량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월 140억원 정도다. 2009년 개발된 비트코인의 총 발행량 잔액(2012년 11월 말 기준)이 145억달러(약 15조4천억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비트코인 거래 규모는 매우 작은 편이다(한국은행).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는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이 ‘화폐’로 쓰이고 있다. 인천시의 한 빵집을 시작으로 커피숍, 헤어숍, 학원 등 10여 개의 온·오프라인 매장이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인정한 것이다. 지난 1월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3층짜리 상가 건물의 임대료를 비트코인으로도 받기로 한 부동산관리회사의 직원 강동철(가명)씨를 만났다. 국내 첫 ‘비트코인 임대료’는 그의 아이디어였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세입자들의 눈길을 붙들고 싶었다. 마침 투자 목적으로 비트코인을 모으고 있던 건물주도 찬성했다. 세입자가 원할 경우 165m²(약 50평) 상가의 월 임대료 1300만원(1층 기준, 보증금 1억3천만~1억5천만원 별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비트코인으로 받기로 한 것이다. 비트코인으로 결제한 금액에 대해선 현금과 마찬가지로 세입자에게 세금계산서도 발급해주기로 했다. 비트코인 거래 수수료는 거래 금액의 1% 미만으로 신용카드 수수료(4~5%)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임대료 협상에 따라 건물주와 세입자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여기에 건물주와 세입자는 비트코인을 사거나 파는 과정에서 운이 좋으면 시세 차익을 누릴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평범하게 건물 임대 광고를 냈더니 두 달간 10건 남짓 문의 전화가 왔다. 그런데 비트코인 현수막을 내건 12월부터 한 달 사이에 50건 가까이 연락이 왔다. 그중 반은 비트코인과 관련한 문의였다.” 강씨의 경험담이다. 실제 그는 인터뷰를 하는 1시간 동안 2통의 새로운 문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화폐보다는 투자 기능에 크게 치우쳐 있다. 앞으로 비트코인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란 투자자들의 기대 심리 탓이다. 비트코인은 일본의 거래소인 ‘마운트곡스’ 기준으로 1월9일에는 1BTC당 956.99달러에 거래됐다. 지난해 11월 말에만 해도 1200달러를 웃돌았지만 얼마 못 가 중국 등이 규제 조처를 발표하면서 최근엔 주춤한 상태다. 그러나 2010년 7월에만 해도 0.05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투자 넘어 투기에 가까운 과도한 확신지난 1월7일 만난 직장인 황춘수(37·가명)씨는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비트코인 시세와 관련 국제 뉴스를 수시로 확인했다. 지난해 9월 미국에 거주하는 지인의 권유로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한 뒤 생긴 습관이다.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사들인 비트코인은 최근 30BTC(2670만원)까지 늘었다. 총수익은 1천만원이 넘는다. “비트코인은 발행 한도가 2100만 개로 제한돼 있다. 공급은 정해져 있는데 수요는 계속 늘어나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주식 투자를 했다가 수천만원을 날린 경험이 있지만 비트코인은 완전히 다르다. 10년 이상 장기 투자한 뒤 자식이 결혼할 때쯤 선물로 줄 생각이다.”
웹디자이너인 이창훈(32·가명)씨도 비트코인 투자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 처음부터 그런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일찌감치 2010년에 비트코인을 접했다. 호기심으로 인터넷상의 지하세계로 불리는 ‘딥웹’(Deep Web)에 드나들 때였다. 그곳에서 마약, 무기, 성인 동영상 거래에 비트코인이 활용되는 것을 봤다. 비트코인은 중앙 통제 기관 없이 개인 간 거래가 이뤄지는 덕에 어떤 정부도 쉽게 추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대서는 안 되는 ‘검은돈’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뒤 비트코인이 정상적인 결제 수단으로 변신하는 것을 보면서 투자를 결심했다. 지난해 12월에는 1BTC(당시 120만원)도 구매했다. “지금 1BTC가 100만원 정도지만 몇 년이 지나면 1억원까지도 갈 거라고 생각한다. 돈이 생기면 더 투자할 거다. 예전에 주식 투자를 할 때는 초단타 매매를 했지만, 비트코인은 전망이 확실하니 묻어두려고 한다.” 투자를 넘어 투기에 가까운 과도한 확신이다.
세금 탈루 등에 악용되기 쉬운 구조비트코인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현상에 대해 금융 당국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 “화폐도, 금융상품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정리한 정도다. 그러나 다른 정부들은 비트코인이 새로운 화폐인지, 정상적인 금융상품인지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다. 세금을 제대로 걷기 위해서다. 독일은 비트코인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고 자본이득에 대해 세금을 물리고 있다. 노르웨이도 비슷한 과세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행법대로라면 한국에선 비트코인 매매에 따른 자본이득세를 매길 수 없는 것은 물론, 비트코인으로 결제된 상품·서비스에 대한 부가가치세·소득세 납부도 사업자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가뜩이나 검은돈의 전력을 갖고 있는 비트코인이 세금 탈루 등에 악용되기 쉬운 구조다. 이에 대한 국세청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지난해 11월부터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가격 등락이 너무 심해서 세금 탈루 목적의 비자금 은닉 수단으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아직은 과세 역량을 집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정체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그 존재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 낯선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된 걸까.
글·사진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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