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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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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별’이 진다네

해체 수순 밟는 동양그룹과 검찰 수사 받는 효성그룹…
총수 일가 욕심, 사적 이익 위해 금융계열사 동원 등 원인도 비슷
등록 2013-10-12 16:21 수정 2020-05-03 04:27
계열사 5곳에 대한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내면서 사실상 그룹 해체 수순을 밟게 된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왼쪽)과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의 사돈’이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활약하다가 이제는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 김경호

계열사 5곳에 대한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내면서 사실상 그룹 해체 수순을 밟게 된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왼쪽)과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의 사돈’이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활약하다가 이제는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 김경호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하나는 빛을 잃었고, 별 하나는 흐릿해져간다. 재계의 두 ‘별’ 이야기다. 동양그룹의 심벌마크는 별을 상징하고, 효성그룹의 이름은 새벽별을 뜻한다. 둘 다 그룹 총수 일가의 지나친 욕심이 화근이었다. 금융계열사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동원하는 과정도 닮은꼴이다.

“오너 경영권 방어 위해 법정관리”

재계 순위 38위(자산 기준)인 동양그룹이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9월30일 지주회사 격인 (주)동양과 그룹 지배구조를 연결하는 중간고리인 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에 이어, 10월1일엔 비교적 재무 상태가 괜찮다던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도 법원에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 신청을 냈다.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것이다. 동양매직 등 계열사를 매각하려던 계획은 실패했고, 금융계열사를 동원해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마구 팔았지만 무너진 둑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재현 회장 일가의 부도덕한 경영의 대가를 임직원들이 짊어질 수는 없다.” 그동안 묵묵히 그룹의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하던 동양증권 임직원들까지 들고일어났다. 동양증권 노동조합은 지난 10월2일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을 기각해달라”는 탄원서를 춘천지방법원에 냈다. 10월3일엔 동양증권 전국 지점장 등이 서울 성북동 현재현 회장 자택 앞에서 “고객과 직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시위를 벌였다.

오너 일가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노조 관계자는 “굳이 동양시멘트를 법정관리 신청한 건, 오로지 현재현 회장 일가의 재산을 보호하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동양시멘트는 부채비율이 196%에 불과하고, 단기 차입금 비중도 낮아 재무 상태가 우량한 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법정관리 대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어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란 예상을 해왔다. 그런데 전격적으로 법정관리행을 선택한 것이다. 동양시멘트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쪽조차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라며 당혹스러워했다. 동양시멘트 주식을 유동화한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를 추석 전날까지도 판매했던 동양증권 직원들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고 했다. 현재현 회장이 여러 차례 “절대 법정관리는 없다”며 등 떠밀다시피 판매를 독려해온 터라서다. ‘사기’ 판매를 한 셈이 돼버린 증권사 임직원들의 충격은 컸다. 제주도 지점에선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현재현 회장의 ‘후일 도모’ 차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과 자율협약을 맺으면 강덕수 STX그룹 회장처럼 경영권을 뺏길 위험이 있는 반면, 법원은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회사가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해달라고 요청한 이상화씨는 현재현 회장의 아내인 이혜경 부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동양네트웍스가 법정관리행을 택한 배경도 석연치 않다. 정보기술(IT) 계열사인 이 회사는 현재현 회장의 아들인 현승담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데다, 지난해부터 오너 일가가 특별히 아끼는 골프장·한옥 등을 사들였다. 고 동양그룹 창업주의 부인이자 현재현 회장의 장모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은 최근 동양네트웍스에 무상 대여해줬던 오리온 주식 1500억원어치를 증여해주기까지 했다. 이 덕분에 동양네트웍스의 부채비율은 700%대에서 150% 이하로 떨어졌다.

금융계열사 ‘개인 금고’처럼 이용

이와 관련해 현재현 회장은 10월3일 기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는 전날 현금 5억원을 빌려 부도를 막을 만큼 긴박한 상황에서 결정됐고, 수백여 중소 협력사들의 연쇄 부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동양그룹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현재현 회장과 이혜경 부회장 두 사람 다 손에 쥔 걸 놓지 못한다. 몇 년째 구조조정한다고 했다가 뒤로 미루기만 했다. 한마디로 경영 판단 능력이 없는 거다. 그래서 그룹 전체가 망가졌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올라갔지만, 계열사 매각은 번번이 오너의 ‘욕심’ 탓에 거래가 깨졌다. 나중에 지분을 되찾아올 수 있는 우선매수권(콜옵션)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부채비율이 1300%가 넘는 등 회사가 어려움에 빠진 가운데 2011~2012년 오너 일가를 비롯한 등기임원의 연봉을 크게 올린 것도 이런 욕심의 한 단면이다. 오너 일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인의 장막’도 문제였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동양그룹과 일을 추진하려면 이혜경 부회장의 핵심 측근인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이사를 통해야 한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며 “그룹에서 바른말 하는 사람이 다 쫓겨난 것도 현재현 회장이 현실 판단을 제대로 못하게 된 배경”이라고 귀뜸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의 사돈 기업’으로 빛났던 효성그룹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사정 당국이 벼르는 1순위 기업’이 돼버렸다. 최근 국세청은 10여 년 동안 1조원대에 육박하는 분식회계를 저질러 법인세를 탈루하고, 회사 임원들 이름을 빌려 차명재산을 보유하며 소득세를 탈루한 혐의 등으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0월1일 이 사건을 특수2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나섰다. 특수2부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구속 기소한 ‘칼잡이’('특수통'을 뜻하는 검찰 은어) 부서다.

조석래 회장과 그 아들들이 금융계열사를 ‘개인 금고’처럼 이용한 것도 꼬리가 잡혔다. 금융감독원은 효성그룹 총수 일가가 (주)효성의 고동윤 상무 등 임원들 이름으로 효성캐피탈에서 수십억원의 차명대출을 받은 사실을 적발하고 제재 절차를 밟기로 했다. 총수 일가가 회삿돈을 마음대로 쓴 건 처음이 아니다. 조석래 회장의 첫째아들인 조현준 사장은 효성아메리카의 돈 10억여원을 빼내 미국에서 빌라를 산 혐의로 지난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가, 올 1월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자, 둘째아들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선긋기’에 나섰다. 지난 2월 보유한 지분 대부분을 매각하고 경영에서 손을 뗐던 조 전 부사장은 “더클래스효성 등 본인이 주주로 있는 효성그룹 계열사 4곳의 회계장부를 열람하게 해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형과 동생이 최대주주로 있는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비상장 계열회사 두 곳의 등기이사를 사임했다는 절차를 이행해달라는 소송도 냈다. 효성캐피탈에서 본인 명의로 50억원이 대출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개인돈으로 갚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 전 부사장의 한 측근은 “기업 지배구조를 공부한 변호사 출신인데 분식회계나 차명대출에 연루될 가능성은 애초부터 만들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조석래 회장으로 향하는 ‘연결고리’

검찰은 2009년에도 효성건설 비자금 의혹을 수사했지만 효성건설 대표이사와 임원을 구속 기소하는 선에 그쳐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엔 조금 달라 보인다. 조석래 회장의 ‘금고지기’ 격인 고동윤 상무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 상무는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한 3명 가운데 한 명이고, 금감원도 고 상무의 자금 추적 결과 총수 일가로 흘러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2010년 효성건설 비자금 판결문을 확인해봤더니, 여기에도 고 상무의 이름이 등장한다. 효성건설 대표이사가 만들었다는 비자금 77억원 가운데 10억원을 ‘굳이’ 고동윤 상무 방에 비치된 금고에 맡겨놨는데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의심스럽다고 재판부가 써놓은 대목이다. 당시 검찰 수사에서는 ‘끊겼던’ 조석래 회장으로 향하는 ‘연결고리’가 이제 하나둘 이어져나가는 분위기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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