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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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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고용’ 바람이 분다

스펙초월 채용 나선 공기업·대기업
등록 2013-09-12 15:00 수정 2020-05-03 04:27

올해 하반기 대졸 취업 관문이 전반적으로 좁아지긴 했지만 취업 준비생에게 반가운 변화도 싹트고 있다. 학력·영어성적 같은 스펙 대신 능력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지방대생·저소득대학생 등은 상대적으로 더 배려하는 ‘열린 고용’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들은 학력·학점·나이·자격증 등을 따지는 서류 전형을 아예 없애거나, 서류 전형 비중을 속속 낮추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청년 일자리 대책의 하나로 ‘스펙초월 채용 시스템’ 마련을 강조하고 있는 까닭이다. 대표적으로 수출입은행은 하반기 40여 명의 채용 인원 가운데 최대 10명을 서류 전형 없이 논술 점수만으로 평가해 채용하기로 했다. 한국가스공사는 하반기 150명을 채용하면서 토익·토플 등 어학 성적 기준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70명을 뽑는 한국광물자원공사는 면접 전형의 가중치를 올리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스펙초월 전형이 공기업을 비롯한 295개 공공기관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공공기관 인력 채용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모든 공공기관이 스펙을 배제하고 업무 능력만으로 인력을 채용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연말께 배포할 계획이다.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인재상을 강조해온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사이에선 지난 상반기부터 학력·나이·학점·영어점수 등에 상관없이 응시 기회를 주는 열린 고용의 유행이 시작됐다. 하반기에는 그 추세가 더 강화된다. 포스코는 서류 전형에서 출신학교·학점·영어성적은 물론 사진도 넣지 않기로 했고, 국민은행은 사회봉사나 인턴 경험을 쓰지 않도록 했다. 현대·기아차와 SK는 각 대학의 채용설명회에서 인상적으로 자기 홍보를 하는 지원자에겐 서류 전형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민간 기업에는 공기업과 달리 지방대생·저소득대학생·고졸자 등 취업 취약계층을 우대해야 할 의무가 없지만 채용 과정에서 자발적인 배려를 하는 기업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은 대졸 공채의 5%를 저소득 대학생에게 할당하고 지방대 출신도 35% 이상 채용하기로 했다. SK텔레콤도 채용 인원의 30%가량을 지역에서 뽑는 ‘지역할당제′를 처음 도입하기로 했다.
이 중에서도 스펙초월 채용은 취업 준비생이 학력이나 나이 등으로 취업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과도한 스펙 쌓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기업이 객관적인 기준 없이 주관적인 평가로 인재를 채용하는 방식이 취업 준비생에게 오히려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변지성 잡코리아 좋은일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스펙을 초월해야 한다는 이유로 객관적인 채용 기준을 갑자기 없애면 취업 준비생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취업을 희망하는 기업의 변화된 채용 절차를 충분히 숙지한 뒤 그에 따라 인재상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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