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의 한 장례식장. 누군가 삶의 끝인 이곳에서 ‘고물상’ 정진영(52)씨의 하루는 시작된다. 간밤에 장례식장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1t 트럭에 서둘러 담는다. 매일 쓰레기 봉지를 치워주는 대신 그 속에 섞인 폐지며 알루미늄캔 따위 고물을 얻는다. 아침부터 폭염의 기세가 사납지만, 청소 아줌마의 쉴 새 없는 잔소리와 조문객들의 따가운 시선에 더 열이 난다. 땀이 뚝뚝 떨어져도 푹 눌러쓴 모자는 한 번도 고쳐 쓰지 않았다. 1시간 만에 일을 마친 그가 돌아보며 말했다. “인생이 참 서글프다”고.
20일도 안 걸렸을 걸 두 달 만에그는 기층 고물상(소상)이다. 고물 생태계에서도 밑바닥이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아온 물건들을 받아주고, 작은 공장이나 건설 현장으로 직접 고물을 떼러 다닌다. 그도 쓰레기에서 돈이 안 된다는 걸 안다. 넉 달 동안 팔아본 적도 없다. 묵직한 고철을 맘껏 주으러 다니고 싶다. 그러나 3~4개월 전부턴 고철 씨가 말랐다. 지난 두 달간 고철 5t을 모아 30만원을 남겼다. 예전 같았으면 20일도 안 걸렸을 물량이다. 곧바로 수입이 줄었다. 직원도 없이 아내 김상미(52)씨와 둘이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지만, 지난봄부터는 한 달에 300만원을 못 맞출 때도 있다. 지난해 450만원 벌이에서 반으로 떨어졌다. 가게 임대료와 유지비를 빼면 150만원 남는다. 지난 6월엔 하루벌이를 위해 건설 현장에 나갔다 무릎에 금속이 박혀 수술도 했다. 그래도 그는 2년 전 남 울리는 채권추심업계를 떠나 정직하게 돈 버는 고물업계에 들어선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경제의 밑바닥 고물업계가 또다시 위태롭다. 타들어가는 한여름에도 고물업계는 찬바람이 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고 온 ‘고물 대란’ 이후 3년 만이다. 아직은 버틸 만하지만, 속도가 빠르다. 고철·폐지·알루미늄·구리 할 것 없이 시장에 물건이 안 돌고, 가격은 내리고 있다.
그때처럼 경기둔화가 고물업계 한파의 직접적 원인이다. 경기가 위축되자 살아 있는 경기 지표인 고물 유통시장도 쪼그라들고 있다. 그중에서 건설·산업 자재를 만드는 고철(철 스크랩)은 경기에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 고물 중간 판매업자인 중상이 정씨 같은 소상에게 쳐주는 고철값(경량A)은 8월 초 kg당 390원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 100원대보다는 높지만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된 지난해 2월 480원보다는 100원 가까이 떨어졌다. 그땐 상품이면 500원 중반도 받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고물상들에게 더 중요한 건 물량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유통단계별로 고철 마진이 kg당 10~20원이다. 소상이 공장에서, 중상이 소상에게서, 대상(소비자에게 납품)이 중상에게서, 고철의 목적지인 제강·제철업체가 대상에게서 물건을 받을 때 마진이 모두 그 정도다. 오고 가는 고물이 많으면 가격이 낮아도 크게 손해는 보지 않는다.
이번에도 급격히 줄어드는 고철 유통 물량이 속을 썩이고 있다. 올해 들어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나오는 고철이 줄어들자 제강업체들이 고철 수입을 늘려 물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철근 등 제품 수요가 줄어 재고가 쌓였고, 제강업체들은 국내 고철 구매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56만t이던 고철 수입량은 지난 6월 말 84만t까지 늘어난 반면, 국내 고철 구매량은 지난해 10월 166만t에서 141만t으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물상들은 물량을 확보하려고 제살깎기식 출혈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경기도 파주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권아무개씨는 “예전에는 물건을 받아오면 10~20원의 마진을 남겼다. 그런데 요즘엔 5원만 돼도 받는다. 부가세 같은 세금을 빼고 나면 오히려 적자다. 그래도 돈이 안 된다고 거래처에 너무 짜게 값을 쳐주면 나중에는 물건을 아예 못 받는다. 이 정도라도 받아가려는 고물상들이 널렸다”고 말했다.
개별 업체→중상·대상→제강업체 구조 깨져고물 대란 후유증도 크다. 대형 제강업체들이 철 스크랩 수급 불안을 겪은 뒤 달라졌다. 최종 소비자에 머물렀던 제강업체들은 자체 수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국내 최대 고철 소비자인 현대제철이 대표적이다. 현대제철은 2~3년 전부터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계열사는 물론 협력업체에서 나온 철 스크랩을 직접 공급받고 있다. 예전엔 개별 업체들이 각자 알아서 고철을 중상·대상에 팔면, 고철은 여러 제강업체로 흘러들었다. 변화의 계기는 2010년 일관제철소 준공이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이때 ‘자원순환형 제철소’를 선언했다. 예컨대 현대·기아차에서 나온 고철을 전기로에서 녹인 뒤 철근으로 만들어 그룹 내 건설자재 등으로 재활용하는 구조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관련해 나온 고철은 유통시장에서 거의 머물지 않고 곧바로 회수되는 것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고급 철 스크랩의 사용량이 늘어 (고철) 납품업체들이 자동차 부품업체의 철 스크랩 구매를 늘려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에도 변화가 있었다. 포스코그룹에서 나오는 철 스크랩은 100% 회수하는 원칙을 정했다. 철 스크랩이 나오는 협력업체 숫자는 많지 않지만, 포스코는 이들 협력업체에도 철 스크랩 납품을 독려하고 있다. 다만 건설 분야는 건설 현장마다 고철 판매 시스템이 있어온 터라 예외로 했다. 포스코는 철 스크랩 수집·가공 과정을 전문적으로 통제하려고 이 업무를 계열사인 포스코P&S(옛 포스틸)에 맡겼다. 포스코P&S 관계자는 “연간 철 스크랩 200만t을 쓴다. 이 중 25~30% 수입하고 있지만 최대한 국산율을 높여가기로 했다. 포스코 계열사와 협력사에선 철 스크랩이 많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나오는 물량은 전부 회수하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제강업체들의 경영 혁신은 고물 생태계엔 독이 됐다. 계열사나 협력업체로부터 고철을 받아오던 중상·대상들은 거래처를 잃었다. 고철은 대형 제강업체에 납품할 특권을 가진 30여 개 대상과 이들에게 물건을 대는 소수 중상들의 손만 거치게 됐다. 안 그래도 막강했던 대형 제강업체들의 고철 가격 결정력은 더 커졌다. 지난 3월부터 제강업체들이 지속적으로 구매 가격을 낮추고 있지만, 납품업체는 손해를 보고서라도 물량을 맞춰주고 있다.
너도나도 살기 팍팍해지니 수십 년간 쌓아온 유통망은 쉽게 깨졌다. 가진 것 없어도 남의 밥그릇은 넘보지 않는다는 고물업계였지만, 이젠 옛날 얘기다. 대상이 중상 일에, 중상이 소상 일에 손을 대기도 한다. 30여 년 전 고물업에 발을 들여 대상이 된 박혁규(가명)씨는 최근엔 작은 고물상에서도 종종 물건을 받는다. 내 일, 네 일 가릴 여유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을 때도 종종 손을 스쳐가던 대기업 계열사와 협력사의 물건을 이젠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제강업체가 요구하는 납품 중량을 맞추려면 닥치는 대로 물건을 모아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2008년 위기 때도 금방 회복돼서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힘들다. 우리는 양으로 먹고사는데 물건이 너무 없다. 게다가 지금 납품하는 제강업체들이 경기가 어렵다고 가격을 너무 후려친다. 마진이 5~8원이다. 매출이 1년 전보다 60% 넘게 줄었다.”
늘어나는 폐가전 제재로 범죄자 되겠네정부 정책도 고물상이 설 자리를 좁게 만든다. 정부는 그간 방치해온 고물상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2~3년간 진행하고 있다. 초점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고물상에 대한 통제와 규제다. 경제위기가 반복되며 2007년 9800개이던 고물상이 2010년 1만2천 개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변두리에 있어 조사가 안 된 곳이 많아 실제 고물상 수는 2~3배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정부에 각종 민원을 유발하는 골칫덩어리다. 도시 미관 저해, 악취 유발, 환경오염 발생, 집값 하락 등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고물상 규제는 다양한 수위로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돼 폐지와 고물에 ‘폐기물’이라는 지위가 새로 생겼다. 이에 내년부턴 폐기물을 다루는 재활용업체가 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터를 확보해야 하고, 매달 폐기물 처리 실적도 보고해야 한다. 영세한 고물상들은 이런 의무에서 제외되지만, 공공 입찰 참여가 제한되는 등 불이익이 따른다.
폐기물이 아닌 가전제품을 취급하는 고물상에 대한 제재는 나날이 엄격해지고 있다. 고물상에서 냉장고나 TV 같은 폐가전을 팔다 적발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전에도 이런 규정은 있었지만,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광산’(폐가전 제품에 축적된 금속자원을 추출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1~2년 전부터 단속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게 고물상들 불만이다. 충북 음성의 화성산업 나기정 사장은 이렇게 해석한다. “폐가전이 쓸모없다고 봤을 때는 소비자가 구청에 가서 돈을 내고 딱지를 사야 수거해갔다. 그럴 때 몰래 버린 가전을 우리가 수집해 처리할 때는 아무도 별말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폐가전에서 희토류 같은 게 돈이 된다는 걸 아니까 환경오염을 핑계로 지자체나 기업이 돈을 주면서까지 수거해간다. 그리고 이젠 우리를 범죄자로 만든다.”
일부 지자체들은 고물상 입지에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다. 경기도 화성시가 지난 5월 가장 먼저 관련 조례 시행에 들어갔다. 화성시에 새로 고물상을 내려면 공동주택, 학교, 병원, 연수시설 등에서 500m 떨어져야 한다. 또 경계 담장을 3m 이상으로 설치하고, 담장 밖에는 2m 이상의 녹지도 조성해야 한다.
‘바닥 친 사람도 새 삶을 얻고 나가’는 재활용업급기야 고물상들이 연대에 나섰다. 지난 5월엔 소상이 주축이 된 자원재활용연대가 출범했다. 화성시의 입지 제한에 대해 헌법소원을 준비하는 등 흩어져 있던 고물상들의 목소리를 모아낼 계획이란다. 김종선 자원재활용연대 정책분과위원은 이렇게 따져물었다. “삶의 기반이 흔들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게 고물 일이다. 고물상에선 못 쓰게 된 고철만 재활용되는 게 아니다. 바닥을 친 사람들도 재활용돼서 새 삶을 얻고 나간다.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못 만들어주면서 고물상마저 내몬다면 이들보고 그냥 죽으란 소리냐.” 경제 밑바닥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누구에게도 그 바닥을 밟을 권리는 없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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