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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차관과 다이아몬드’는 현재진행형

감사원, CNK 주가조작 ‘실세 개입’ 의혹 확인 못했다지만 신주인수권 이용한 로비 가능성 새롭게 제기돼
등록 2012-02-03 10:40 수정 2020-05-03 04:26

10개월 만이다. CNK인터내셔널(이하 CNK)의 다이아몬드, 주가조작, 그리고 정권 실세의 관련성을 감사한 감사원이 지난 1월26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엔 ‘역시나’ 정권 실세는 없었다. 감사원은 CNK의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 획득과 관련한 외교통상부의 보도자료가 허위였고, 이를 주도적으로 작성·배포한 이가 김은석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라고 밝혔다. 관련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한 정태근 의원(무소속) 등은 ‘꼬리 자르기’라며 재감사와 철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의혹 연루자가 외교부 관리뿐?
감사 결과 드러난 사건 내용은 한마디로 CNK가 기획·연출하고 전·현직 외교부 고위 관리가 주연을 맡은 ‘다이아몬드 주식 사기극’이다. 오덕균 CNK 대표는 다이아몬드 개발 사업을 설명하려고 외교부에 여러 차례 드나들었고, 관련 내용을 들은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은 2009년 이 회사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은석 대사는 CNK로부터 제공받은 다이아몬드 개발권 획득 관련 보도자료를 두 차례 외교부를 통해 배포해, 이 회사 주가를 5배 넘게 띄우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CNK처럼 민간기업이 획득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권과 관련해 외교부가 별도로 보도자료를 작성해 배포한 것은 2001년 이후 딱 한 차례밖에 없었다. 그것도 꼭 필요한 천연자원인 석유와 천연가스 탐사권 획득 내용이었다. 그만큼 CNK의 다이아몬드 개발권 관련 보도자료는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감사원은 직권남용,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허위 작성 공문서 행사 등의 혐의로 김 대사를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그렇다면 정치권 안팎에서 ‘다이아몬드 의혹의 배후’로 지목받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은 정말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감사원은 “박 전 차장을 불러 수시간에 걸쳐 강도 높게 조사했다. (그러나)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나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김 대사가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과정에 일부 협의를 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감사원은 검찰에 박 전 차관의 수사 참고자료를 제공했다. 혐의가 분명할 때 하는 수사 요청과 달리, 참고자료 제공은 혐의는 불분명하지만 정황상 수사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을 때 하는 조처다. 박 전 차관에게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감사원은 같은 이유로, CNK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과 오덕균 대표의 수사 참고자료도 검찰에 넘겼다.

김 대사는 왜 ‘차관급 논의’를 요구했을까
감사원의 감사결과 보고서를 보면, 박 전 차관이 CNK의 다이아몬드 사업을 지원한 정황이 일부 확인된다. 그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있던 2010년 2월 김은석 대사의 소개로 오덕균 대표를 만나 사업 현황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6대 전략광물(유연탄·우라늄·구리·철·니켈·아연) 말고는, 민간기업이 추진하는 다른 해외 광물자원 탐사·개발 사업과 관련해 총리실이 브리핑을 받은 것은 CNK가 처음이었다. 석 달 뒤 에너지협력외교 아프리카 대표단을 이끌고 카메룬을 방문한 박 전 차관은 ‘마이닝 컨벤션’(CNK와 카메룬 정부의 광물개발협약)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또 대표단은 광물 공동조사 논의를 위해 카메룬 정부 관계자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이후 박 전 차관은 카메룬 정부 쪽의 방한을 ‘재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0년 8월 김 대사가 주카메룬 한국대사관에 보낸 전자우편을 보면 “(카메룬) 광물부 차관의 방한을 가급적 빨리 추진했으면 합니다. 박 차관을 점심에 뵀는데 빨리 방한했으면 한답니다. 우선 초청장을 전달하시고 그런 의사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는 박 전 차관이 지식경제부로 자리를 옮겼을 때다.
같은 해 10월 김 대사가 보낸 또 다른 전자우편에도 박 전 차관의 ‘조급증’이 읽힌다. “우리 입장에서는 우선 (카메룬 광물부) 차관이 (한국에) 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재 카메룬과의 협력 문제는 장관급으로 격상해서 추진하면 우리 측에서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자원협력 문제를 시급하게 논의해야 한다면 차관이 아니라 그 윗선인 장관급끼리 만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런데도 김 대사가 논의 대상을 ‘차관’으로 못박은 건 박 전 차관이 이 일을 주도해야 하는 ‘말 못할’ 사정이 있다는 의심을 품게 한다. 자원외교의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내려 했는지, 다이아몬드 개발권에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었는지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대목이다. 카메룬 정부 대표단은 박 전 차관이 다녀간 지 5개월 만인 2010년 10월 카메룬 투자 포럼을 이유로 방한했다.
이와 관련해 김 대사는 과 한 통화에서 “장관은 아프리카 국가에 갈 시간이 없고, 차관급이라야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게다가 당시엔 장관이 ‘식물장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교체기에 있었기 때문에 박 전 차관과 함께 일한 사람이 오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그런 전자우편을 보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 장관인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은 이듬해 1월 말까지 장관직을 수행했다. ‘식물장관’이 아니었다.

CNK 다이아몬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이 지난 1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이 회사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 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정아

CNK 다이아몬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이 지난 1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이 회사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 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정아

국정조사, 재감사, 검찰 철저 수사 촉구 쏟아져

김재균 민주통합당 의원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 직후 보도자료를 내 “박 전 차관이 카메룬을 드나들면서 스스로 사업 유망성을 홍보한 것 자체가 지금의 주가조작을 불러왔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정권 실세인 박 전 차관이 직접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뚜렷한데도 감사원은 면죄부를 줘버렸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소속 정태근 의원도 “김은석 대사 이상으로, 이 문제를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과정에서 사적 권력이 동원됐다”며 감사 결과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권력 실세와 관련된 2명 이상이 이 사건과 관련한 신주인수권(언제든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을 취득가 이하로 제공받았다는 정보를 얻었다. 오덕균 대표가 보유한 200만 주 넘는 신주인수권이 과연 누구에게 제공됐는지 조사하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이 말한 신주인수권은 CNK의 전신인 코코엔터프라이즈가 발행한 247만여 주다. 이 가운데 26만여 주(1억5천만원)를 조중표 전 국무조정실장이 2009년 자녀 명의 등으로 인수했다가 모두 주식으로 전환해 매각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CNK의 다이아몬드 관련 의혹이 불거지자 이 신주인수권을 헐값에 받은 이가 조 전 실장 말고도 여럿일 것이라는 추측이 파다했다. 이들에 정권 실세 관련자들이 포함됐다는 정 의원의 의혹 제기는 신주인수권이 CNK의 로비에 쓰였을 가능성과 관련된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신주인수권 매입자 명단을 금융감독원에서 넘겨받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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