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 장두건(53)씨는 현재 쉬고 있다. 일하고 싶지만 자리가 없다. KT에서 2009년 12월 명예퇴직한 뒤 계속 실직 상태다. 실업급여도 지난해 12월 끝났다. 그 뒤부터 수입이 없다. 아내가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미용실에서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해 월 120만원을 벌었지만, 손과 어깨에 무리가 와서 3개월 만에 관뒀다. 장씨는 “월 100만원짜리 일자리라도 구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명퇴자 중 재취업 38%뿐, 임금도 반토막
그는 1978년 체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체신부가 1981년 한국통신공사로 바뀌어 공기업 직원이 됐다가, 다시 2002년 KT로 민영화돼 일반 회사원이 됐다. 민영화 뒤 계속된 구조조정의 ‘칼날’을 2009년에는 피할 수 없었다. 명예퇴직금 2억3천만원을 받고 31년의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장씨는 “회사 쪽에서 ‘지금 안 나가면 지방으로 발령낸다’는 등의 압박을 해서 결국 사직서를 썼다”며 “현재는 은행에 넣은 2억원에서 나오는 월 100만원 정도의 이자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고민은 아이들 대학 등록금과 노후 대책이다. 장씨는 “명퇴금 가운데 3천만원을 떼내 대학교 4학년과 2학년인 아이들 학자금으로 준비해뒀지만, 노후 대책은 없다”며 “2억원이 마지막 보루인데 먼저 명퇴한 사람들이 ‘자영업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눈높이를 최대한 낮춰 취업하려고 한다”며 “그마저도 안 되면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한숨지었다.
함께 나온 동료들도 비슷한 처지다. 장씨와 함께 서울 서초지사에서 퇴직한 사람은 12명. 이들 가운데 장씨를 포함해 10명은 실직 상태다. 일하는 2명. 이마저도 학원 운전기사, 아파트 경비원 등 비정규직으로 월 100만원 정도를 번다.
이처럼 2009년 12월 KT에서 명퇴한 5992명 가운데 상당수가 실직 상태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0년 1월 KT 직원 6131명이 ‘기타 회사 사정에 의한 퇴직’을 이유로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을 잃었다. 이들 가운데 5992명이 2009년 12월 명퇴자들이다. 이 6131명 가운데 2011년 7월 현재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는 사람은 37.9%인 2325명이다. 요컨대 명퇴 뒤 다시 직장을 구한 사람은 10명 중 4명이 채 안 되는 셈이다. 나머지 3806명(62.1%)은 실직 상태거나 자영업에 종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명퇴자들은 고용보험 미가입자 대부분이 놀고 있고, 극히 일부만이 자영업자로 일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취업한 이들 상당수도 과거 임금의 절반 정도만 받고 일한다. 김호기(50·가명)씨는 경기도의 한 KT 하청업체 소속이다. 지난해 고물상에서 월 70만원을 받고 일을 배웠지만, 진로를 찾지 못해 KT에 재입사했다. 대신 하청업체 직원이다. 그는 전화선과 인터넷선 등이 한데 모인 분기국사를 지킨다. 이곳에 접수된 전화·인터넷의 개통이나 고장 처리를 도맡는다. 일반 가정이나 사업체로 간 현장 직원과 통화하며 전선의 문제점을 고치거나 새 전선을 잇는다. KT 정직원 시절 했던 일이다. 김씨는 “그때는 정신없이 바빴지만 이곳은 그렇게 일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한다. 일요일만 쉬고 일해 받는 돈은 월 150만원. 4대 보험과 퇴직금 등을 뗀 125만원이 그의 몫이다. 과거 400만원을 웃돌던 월급의 3분의 1 수준이다. 수입이 줄자 아내도 돈벌이에 나섰다. 4살 아래인 아내는 집 주변 대형마트에서 경리일을 하며 월 85만원을 번다.
김씨는 “수입이 줄어 외식, 신문 구독 등 씀씀이를 줄였다”며 “용돈이 월 60만원에서 25만~30만원으로 줄어 술자리에도 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를 곧잘 하는 둘째 녀석을 대학을 보낼 게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는 ‘우리 회사’ KT를 걱정했다. 김씨는 “우리 회사에는 상사 비위나 맞추며 자리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며 “그런 사람들이 우리 회사의 희망”이라고 평했다.
2001년 19.2%이던 인건비, 비중 2010년 9%로
김씨처럼 KT를 나온 뒤 다시 하청업체로 들어간 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 버림받은 이들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 다시 ‘우리 회사’ KT의 하청업체 비정규직이 되는 셈이다. 전남의 한 섬에서 일하는 최길수(가명)씨도 마찬가지다. 2009년 명퇴 뒤 섬에서 전화·인터넷의 개통 및 애프터서비스(AS) 업무를 맡고 있다. 월급도 김씨처럼 100만원대에 불과하다. 한 명퇴자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재취업이 어려워 수년간 해온 일을 반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영업자가 된 이들은 어떨까? 오영배(53·가명)씨는 지난 4월 경기도 안산에 분식점을 열었다. 매출은 월 800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오씨와 그의 아내는 한 푼도 건질 수 없다. 상가 점포를 아예 사면서 낸 빚의 이자를 갚고, 원자재·아르바이트생 임금·전기료 등을 빼면 남는 게 없다. 그는 “오픈하고 4개월 동안 아내와 함께 일하는데도 아직 한 푼도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창업하려고 1년 넘게 준비했다. KT가 명퇴자를 대상으로 마련한 창업 설명회를 비롯해 중소기업청의 창업자 교육, 창업박람회 등을 뛰어다녔다. 그런 준비에도 장사는 쉽지 않았다. 그는 “‘(회사의 퇴사 압박에도) 그냥 참고 회사를 더 다닐걸’ 하는 후회가 있다”며 “나만 고생하면 아내를 비롯한 식구들은 고생을 안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호문(45)씨는 퇴직 뒤 고향인 전북 정읍에 내려가 식당을 차렸다. 지난해 12월 ‘짬장 정육상회’를 오픈해 아내와 함께 꾸려간다. 명퇴금 2억원 가운데 1억원을 투자했다. 과거 전선을 잡던 손은 이제 칼을 잡는다. 가게를 오픈한 지 8개월째지만 수입은 많지 않다. 월세와 전기료 등을 내고 남은 200만원이 박씨 수입의 전부다. 박씨는 “큰 욕심은 부리지 않고 겨우 생활할 정도로 지내는데, 1년 정도 더 해봐야 승부가 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처럼 창업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명퇴한 동료들의 근황을 전했다.
KT에서 직장인들이 대규모로 내몰린 일이 2009년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03년에도 5505명이 명퇴했다. 또 2001년과 2008년 KT 업무의 일부를 외주화하면서 관련 직원들이 자회사로 옮겼다. 그 결과 2001년 4만4094명이던 직원이 2008년에는 3만5063명으로 줄었다. 특히 2009년에는 2500여 명이 일하는 KTF와 합쳤는데도 명예퇴직의 여파로 그해 말 3만841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2010년에는 3만1155명으로 300명가량 소폭 늘었다. 해마다 눈에 띄게 직원 자리가 없어지면서 매출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은 급격히 낮아졌다. 2001년 19.2%이던 인건비 비중이 2009년 12.5%, 2010년 9%로 낮아졌다.
한 달 새 3명이 숨지며 사망률 폭증
그사이 KT 민영화 과정에서 주식의 절반에 가까운 49%를 소유한 외국인은 많은 배당을 받았다. 2003년 이후 배당성향을 살펴보면, 2006년과 2007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50%가 넘는다. 배당성향은 당기순이익에서 현금 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율로, 이 비율이 높을수록 주주 몫으로 돌아가는 배당 규모가 커지게 된다. 특히 명퇴를 실시한 2009년은 퇴직금 때문에 순이익이 줄어들자 배당성향이 94.2%까지 높아졌다. 해마다 벌어들이는 수익의 절반 이상이 주주 몫이 되고, 그 절반은 외국인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대신 회사에 남아 있는 이들은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떠난 사람 몫까지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9년 대규모 명퇴 뒤 16명이 숨진 것도 같은 이유라는 지적이 많다.
KT노동인권센터 자료를 보면, 사망자 16명 가운데 자살이 3명(자살 추정 1명 미포함), 돌연사가 6명에 이른다. 나머지 사망 원인도 뇌출혈·심근경색 등 흔치 않은 질병이다. 올 7월에만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7월16일 숨진 강아무개(50)씨도 그중 1명이다. 그는 휴일에 출근했다가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자살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유족은 “업무가 바뀌어 익숙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에서 계속 해고 등의 압력을 넣는다고 스트레스를 호소해왔다”며 “스마트폰 개통 등 실적을 내는데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가 서울 신촌지사에서 은평지사로 옮긴 것은 지난 1월6일. 일터를 옮기자 업무도 바뀌었다. 애초 데이터 전송장비를 관리하는 일에서 각 가정이나 사업장을 찾아가 전화·인터넷을 개·보수하는 일을 맡았다. 유족은 산재를 주장하지만, 회사 쪽은 업무와 상관없다며 ‘산재 인정서’를 써줄 수 없다는 태도다. 강씨 외에도 지난 7월3일과 11일 유아무개(47)씨와 이아무개(52)씨가 급작스럽게 숨을 거뒀다.
이에 대해 KT노동인권센터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2002년 완전 민영화 이후 계속된 구조조정으로 인력은 줄어들고 충원이 되지 않았다”며 “특히 2009년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직원들이 관리자로부터 받는 인사평가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고과연봉제가 도입되면서 개인 간 경쟁이 심해졌고 업무 스트레스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조 집행위원장은 “KT 노조마저도 직원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포기해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 갑자기 숨지거나 자살하는 일 등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KT 홍보실은 “직원의 절반가량이 40대 중반 이상이어서 그 연령대에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위원장은 “2009년 5992명을 내쫓은 뒤 그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사망률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며 “7월에만 3명이 숨질 정도로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것은 이석채 회장의 경영 방식이 ‘살인경영’임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노총 산하 새 노조 설립 신청해상황이 이렇게 급속도로 악화하자 KT에 새 노조가 생긴다. 기존 KT 노조는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이 실시될 때 아무런 성명을 내지 않았다. 김은혜 전무를 비롯한 ‘낙하산 인사’가 임원으로 내정될 때도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았다.
‘KT 새 노조 준비위원회’는 7월28일 고용노동부 서울 서부지청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서류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8월2일 노조 설립 신고필증이 나온다. 이해관 준비위 위원장은 “KT 내부에서도 외국인 주주에게 몰아주기식 배당을 하고, 낙하산 인사를 영입하는 등 KT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과 함께 KT 새 노조를 세워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낙하산 인사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판 여론이 조성되는데도 당사자인 노조가 침묵하는 등 기존 노조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새 노조는 직원들의 고충을 해결하고 구조조정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KT 새 노조는 현 노조와 달리 민주노총 산하에 들어갈 계획이다. 현 KT 노조는 민주노총에 속해 있다가 지난 2009년 탈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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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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