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몰랐노. 왜 나만 몰랐노.”
박성자(65)씨의 통곡은 더 커졌다. 지난 인터뷰(858호 표지이야기 ‘그건 돈이 아니고 내 목숨이거든’ 참조) 당시에는 언론 노출이 부담스러워 실명 공개도 꺼리던 박씨였다.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박씨는 달라져 있었다. 피해자들의 시위 모습을 잡은 방송 화면에는 종종 “내가 파출부 일해서 모은 피 같은 돈”이라는 박씨의 통곡이 배경음처럼 깔렸다. “한 달이 지나도록 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노!” 기자를 원망했다.
“매각이 우선이 아니다”
김옥주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비상대책위원장이 확성기를 들었다. 그의 쟁쟁한 목소리도 그대로였다. “일부 VIP들은 이미 1월25일부터 돈을 빼기 시작했답니다.” 웅성거리던 여기저기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명박 정부는 책임져라!” 하소연할 데 없는 외침들이 쏟아졌다. 부산저축은행 초량동 본점 점거 사흘째인 지난 5월11일. 영업팀과 해외영업부가 쓰는 3층, 총무부와 임원실이 있는 4층은 200여 명의 농성자들로 가득했다.
예금 피해자들이 은행을 점거한 것은 부산저축은행의 매각 작업을 막기 위해서였다. 김 위원장은 “매각이 우선이 아니다”라며 “금감원의 오랜 부실 검사와 대출 비리 등으로 이번 일이 발생했으므로 이에 대해 책임을 규명하고 예금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정부가 나서서 5천만원 이상의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보유자에 대한 원금보장 대책을 확실히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피해보상 대책을 밝히지 않는 한 농성을 풀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200여 명은 비대위가 ‘조직’한 농성자가 아니었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보고 모여들었다. 민심이 급한 국회의원들은 피해자를 돕는 입법을 한다고 나서고, 정부에서도 언론을 통해 일부 지원을 검토할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지만,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피해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시각, 은행 밖에선 은행 직원들과 예금보험공사 직원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농성자들과의 대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은행 매각을 위해 은행 자산가치 조사작업을 하던 금융감독원과 예보에서 파견한 회계사들은 대책위의 요구로 5월10일 오전 2시께 자진 철수한 상태였다. 예보 관계자는 “매각 작업을 위한 실사작업이 늦어지면 예금자들의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며 “매각 시점이 늦어질수록 저축은행의 가치만 더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미 예금자들의 농성이 불법이라며 자진 해산할 것을 통보했다. 강제 해산을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의 속내는 다르다. 비대위원장과 면담을 시도하던 부산의 한 경찰 관계자는 “민심을 고려하면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몰래 속 태우는 직원들남몰래 속을 태우는 사람들도 있다. 부산저축은행 직원들이다. 부산저축은행에 다녔다는 사실만으로도 돈을 미리 빼돌린 죄인 취급을 받는다. 부산저축은행 근처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도 아는 사람 만날까봐 고개를 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도 후순위채권과 예금 1억5천만원을 영업정지로 날릴 위기에 처했다. “동료가 퇴직하며 직장 내 비리를 볼모로 돈을 뜯어낸 것도, VIP들을 불러세워 돈을 찾아준 것도 정말 몰랐다”며 하소연했다. 그는 연이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조사로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부산=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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