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에 자원이 넘치나 마을엔 가난이 넘치는 모순의 땅, 버마(미얀마). 도처가 자원개발 사업 중이다. 어떤 이들에겐 ‘복음’이 될 법하지만, 개발이 지나는 곳마다 ‘폐허’다. 가난마저 짓밟는다. 부패한 군부 아래 토지몰수, 강제이주, 강제노동 등 다양한 인권유린을 자행·묵인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 기업이 사업자로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이 한국가스공사, 버마 현지 업체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끄는 ‘버마 가스 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국제시민단체 ‘지구의 권리’ 등은 사업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 실태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지난 3월29일 서울에서 열었다. 그들이 지난 2년간의 현지 조사를 토대로 한 실태보고서를 공개했다. ‘지구의 권리’ 소속 폴 도노위츠 변호사(미국)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한국 기업의 잠정적 사업 중단”이라고 말한다.
- 보고서 내용은 무엇인가.
= 심각한 인권침해다. 가스 사업 설비 과정 등에서 적절한 보상도 없이 땅을 강제 징발했다. 아라칸주 마다이섬 주민 3천여 명이 이전을 강요받았다고 말한다. 군부나 버마 기업이 필요한 땅을 확보하는 데, 대우인터내셔널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주민들이 보상액에 만족하고 서명했다’고 설명하지만, 주민들은 ‘군부 통제 아래 한 푼도 못 받을까 싶어 판 것’이라고들 한다.
사업 정보도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아라칸주 해안에서 시추한 가스는 내륙으로 793km에 걸쳐 관통하며 중국까지 수송된다. 어느 현장에선 10명 중 9명꼴로 전혀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가스 개발사업은 대우인터내셔널이 최대 지분(51%)을 갖고 있다. 내륙 수송사업은 중국석유공사가 50.9%, 대우인터내셔널이 25.04%의 지분을 갖고 있다. 가스 생산시설은 현대중공업이 짓는다.)
- 대우인터내셔널은 2000년 사업개발권을 얻었다. 이후 국제단체나 현지 활동가들이 몇 차례 회사를 비판했다. 그런데 왜 다시 지금 한국에서 문제를 제기하는가.
= 그간 가스 탐사, 시추, 수송관 계획 등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올해부터 마다이섬을 위시로 내륙의 가스 수송관 건설이 본격화했다. 아라칸주 연안에 가스 터미널을 짓거나 우기를 피해 강 구간에서 먼저 진행 중인 수송관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비밀리에 파헤친 보고서도 때마침 나왔다.
현지에서 수차례 경고하고 불만을 제기했으나 기업들은 요지부동이다. 문제가 확대되고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알아야 한다.
- 강제노동, 토지 강제수용 등은 버마 군부의 오래된 만행 아닌가.
=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정부다. 한국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원하더라도 군부와 사업하는 한 불가능하다. 한 예로 대우인터내셔널이 버마에서 공익 차원에서 병원을 지었는데 여기도 강제노동이 동원됐다. 회사도 몰랐다며 난처해한 것으로 안다. 기업이 없다면 사업이 없고, 사업이 없을 때 강제노동도 없다.
- 기업이 버마 정부의 문제까지 고려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지 않겠나.
= 1990년대 미국 기업 유노칼이 타이로 가스를 수송하는 ‘야다나 사업’을 벌였다. 마찬가지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국제시민단체들이 미국 연방법원에 유노칼의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유노칼이 버마 현지에 내보낸 직원은 3명밖에 되지 않았다. 사업 지분도 대우보다 적다. 인권침해는 군부가 저질렀다고 했다. 법원은 원고를 익명으로 한 소송이 가능하고, 인권침해 연루 증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2005년이다. 유노칼은 본소송으로 가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제시했다.
당시 연방법원은 현장의 강제노동을 ‘현대판 노예제’에 빚댔다 한다. 유노칼의 최종합의 내용은 비밀이라 알려지지 않는다. 사업에 동참한 기업 토탈도 프랑스 내 소송에서 졌다. 인권경영 이전에 상식경영을 하라는 명령인 셈이다. 2010년 전후부터 한국에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화두다.
- 기업은 왜 인권경영을 해야 하나. 기업 이윤에 도움이 되나.= 나이지리아에선 다국적 석유기업들의 행태에 저항하며 주민들이 파이프를 폭파하고 직원을 살해하기도 한다. 멕시코 내 수력발전 사업은 국외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상태였는데 주민들 반대로 무산됐다. 사회적 책임이 조금만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세계화 시대, 5분이면 기업 정보는 퍼진다. 10년 명성을 5분 만에 잃을 수 있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도 많아지고 있다. 평판을 잃고 거액의 손해배상도 하게 된다. 사회적 책임은 평판을 유지하는 일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생산품을 보호하는 수단이다. 장기적으론 예방이 더 저렴하다.
- 노르웨이 정부의 연기금 운용사가 2008년 대우인터내셔널에 ‘인권 존중’을 요구하며 투자 철회 의사를 밝혔다. (847호 표지이야기 ‘인권경영, 미흡하거나 침묵하거나’)
= 연기금이 투자되고 있는 버마 자원개발 사업 관련 15개사의 기업활동 자료를 만들어 지난해 노르웨이 정부에 제출했다. 면담도 했다. 현재까진 투자가 유지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우인터내셔널 사업은 해안 가스 채굴에 치중해 있었다. 올해 내륙의 수송관 설치 사업이 본격화했으니 다른 조처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가스는 버마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나.= 대부분이 중국으로 수출된다. 지역 주민들이 혜택을 보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석유 수송관 사업은 중국석유공사가 주도하고 있는데, 100% 중국으로 건너간다. 야다나 사업으로 버마 정부가 매년 10억달러씩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게다가 버마의 경우 (사회적 협의 없이) 수송관이 내륙을 관통해 밀림숲 같은 자연이 파괴되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민주화를 위한) 무장투쟁 그룹들도 위협을 받고 있다. 사실상 휴전 상태인데, 군이 사업을 계기로 공격하고 있다. 무장투쟁 그룹은 어느 한 조직이 공격을 당하면, 함께 연대한다는 약속이 돼 있다. 수송관이 반정부세력 말살의 수단이 될 수 있다.
2010년 미 의회는 “기업은 인권경영의 책임, 인권경영의 능력이 있기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런 논리로, 석유·광산·가스 채굴 회사들은 미 정부나 외국 정부에 지불하는 사업 비용을 공개해야 하는 법률안까지 통과됐다. 법안을 지지하는 미국 내 연기금·투자사들의 투자 규모는 1조4천억달러다.
- 최종 목적이 뭔가.=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사업의 혜택이 나눠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 군부 아래선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사업 자체를 잠정적으로 중단해야 한다. 할 수 없다면 인권·환경적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을 즉각 기업이 마련해야 한다. 사업계획을 포함해, 군부에 가는 사업 대가나 세금, 임금 토지 보상 등에 대한 정보를 투명화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소가 현지에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직접 이곳을 찾기 쉽지 않다. 주민들이 기업에 고충을 얘기하고, 기업이 이를 ILO에 전달하는 캠페인에 동참해야 한다. 강제노동 현장을 ILO가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기업이 정부를 압박·지원해야 한다. 대우인터내셔널에 요구할 것들이다.
‘지구의 권리’와 국내 연대단체인 국제민주연대 등은 4월1일 대우인터내셔널 실무자와 만났다. 대우인터내셔널 쪽은 에 “5~7개월 기간을 걸쳐 충분히 설명하며 토지 보상을 완료했다”며 “시민단체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 발생한 문제들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가스공사 법무팀도 만났다. 실무자는 “지분도 적고 현지 직원도 없다”며 “대우인터내셔널과 얘기하라”고만 말했다고 한다. 지난해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포스코 쪽과도 만나고자 했다. 한국에 머문 일주일 남짓 세 차례 서한을 보내고, 다섯 차례 전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회신받지 못했다. 도노위츠 변호사는 말했다. “유럽이나 미국 기업은 사회책임 문제를 제기하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변하는 쪽이다. 하지만 한국은 책임이 없다고 한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제 사회적 책임을 말하고 있다. 하고 있진 않지만.”
아리칸주 주민들을 “보물섬의 가난뱅이”라고들 한다. 4월1일 ‘거짓말’ 같은 모순을 떠올리며 ‘지구의 권리’는 한국을 떠났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