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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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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도 시장주의 틀 내에서

초과이익공유제 지상 논쟁 ①…

제도 도입보다 공정거래 규율과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호소해야
등록 2011-03-24 15:27 수정 2020-05-03 04:26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정부 때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권오승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그동안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온 에 의견을 보내왔다. 권 교수의 글과 함께 기업 간 양극화에 주목해온 학자인 홍장표 부경대 교수(경제학)의 기고도 싣는다. 두 학자가 펴는 논지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앞으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한층 진일보한 논쟁의 토대가 되길 기대한다. _편집자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 경제도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 경제는 비교적 빠른 기간에 위기에서 벗어나 성장세를 회복하고 있다. 이러한 회복세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활약하는 몇몇 대기업들의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만약 대기업들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 경제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실현 가능성 가늠 어려운 ‘초과이익공유제’

문제는 대기업의 성과가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이나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1년간을 돌이켜보면 일부 대기업들은 수조원의 이익을 낸 반면,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이익은커녕 영업을 지속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서민들은 일자리 문제나 전·월세를 비롯한 물가 상승으로 생활이 더 팍팍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정운찬 위원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추진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이른바 ‘초과이익공유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초과이익공유제(Profit Sharing)란 대기업이 연초에 계획한 이익목표치를 넘기면, 그 이익의 일부를 협력업체에 돌려주자는 것이다.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고 있는 기업은 영업활동으로 얻은 이익의 일부를 연말에 주주들에게 배당금 형태로 지급하기도 하고, 임직원들에게 보너스라는 이름으로 인센티브로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익의 분배 범위를 협력업체에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정계와 재계에서 찬반양론이 격돌하고 있어서,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한나라당과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는 “이윤을 협력사와 나누라는 것은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면서 정 위원장을 공격했다.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은 “내가 어려서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도 경제학 공부를 했는데 그런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면서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아니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익공유제가 동반성장에 부합된다고 하더라도 그 절차와 방법을 따져봐야 한다”면서 “기업과 기업 간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운찬 위원장은 이익공유제는 시장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반박하면서, 그 방식으로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기금을 조성해 협력업체의 기술 개발이나 고용 안정을 돕도록 하겠다고 주장했다.

독점규제법·하도급법으로 규율 가능

이익공유제를 둘러싸고 이처럼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에 달했음에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은 엄청난 초과수익을 내는 반면 중소기업은 계속 열악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대기업의 초과이익이 주로 대기업의 연구·개발이나 시장 개척에 기인한다면 이를 협력업체에 나누어주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협력업체의 새로운 아이디어나 부품 개발 및 공정 개선에 힘입었다면 이를 협력업체에도 나누어주자는 주장은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것을 밝히기는 쉽지 않으며, 그 해답도 한결같지 않거나 복합적인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문제는 사실(fact)에 관한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치판단의 문제인 동시에 역학관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관계를 공정하게 규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윤리나 사회적 책임에 호소하는 것이다. 전자는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지만, 후자는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초과이익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에서 지속적인 단가 인하나 기술 탈취 등과 같은 사유로 인해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적절한 대가를 받지 못해 생겼다면, 이는 독점규제법상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이나 불공정거래 행위로 규율하거나 또는 하도급법상 불공정한 하도급거래로 규율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카이스트 이민화 교수가 “이익공유는 중요한 화두이나 순서상 공정거래 확립 이후에 논의할 일”이라고 한 것은 적절한 지적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초과이익이 적법한 거래를 통해 얻은 것이라면,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 존중의 원칙에 비추어 대기업이 스스로 이를 동반성장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지 않는 한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법적 강제와 자발적 참여 구별해야

이런 실증적 분석이나 그 대안에 관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운찬 위원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추진하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다고 그 자금이 나올 수 있는 곳은 막대한 초과이익을 얻고 있는 대기업밖에 없다고 판단해,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촉구하려는 의도로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을 주장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나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용어 선택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익공유제는 여러 기업이 실제로 시행하고 있는 성과공유제(Benefit Sharing)와 달리, 당사자 간의 거래와 결제가 끝난 상태에서 대기업이 얻은 이익을 중소기업에 다시 돌려주자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 위원장이 현 정부에서 차지하는 지위로 보아, 대기업은 이를 단순히 그의 개인적 주장이 아니라 정치적 압력으로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와 법치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반드시 시장경제와 법치주의 원리에 부합해야 한다. 이를 선택할 때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과 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것을 엄격히 구별해, 전자는 법적으로 집행하고 후자는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는 차원에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

권오승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공정거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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