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는 올해 장사를 잘했다. 기아차의 이한응 마케팅 부장은 “쏘울에 이어 ‘K 시리즈’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현대차와 합병한 이후 옵티마·로체 등을 선보였지만 제대로 힘을 써본 적이 없다. ‘형님’인 현대차는 거대한 벽이었다. 그런 기아차가 올해 현대차를 넘어설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 배경에는 새로운 디자인을 장착한 K5(사진)와 K7으로 대표되는 ‘K 시리즈’가 있다. 그중에서도 K5의 선전은 눈부셨다. 경쟁자인 쏘나타는 1985년 첫선을 보인 뒤 중형차 1위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다. 외환위기 시절인 1997년 8월 기아의 크레도스가 한때 앞질렀지만, 이는 당시 기아가 부도난 상태에서 30% 할인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사실상 1위를 지킨 쏘나타의 위치를 K5가 흔든 것이다.
세계적 디자이너에 전권
지난 6월 K5의 판매량은 1만673대로, YF쏘나타의 9957대를 간발의 차로 앞질렀다. 5월24일 국내 시장에 선보인 지 두 달도 안 돼 역전한 것이다. 이후 7~8월 연이어 YF쏘나타를 앞질렀다. 다시 9월 이후에는 YF쏘나타에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현대차가 9월부터 150만원 정도를 깎아주는 ‘1% 초저금리 할부판매’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점 등을 감안하면 K5가 사실상 1위라고 볼 수 있다. K5가 2010년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자동차 분야 인기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잘 반영한다.
여기에 준대형차 K7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9년 11월에 선을 보인 이후 그랜저를 제치고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그랜저도 쏘나타처럼 오랜 기간 준대형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K7에 그 자리를 내준 것이다.
이같은 성공 사례는 이동통신시장에서 SK텔레콤에 밀려 줄곧 2등에 머문 KT의 부러움을 샀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지난 10월 ‘1등을 넘어선 2등 기업에서 배우는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내어 기아차의 성공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보고서는 기아차가 2006년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디자인 중심으로 브랜드 차별화에 나선 것을 성공 비결로 꼽았다. 이를 통해 차별된 디자인과 아우디(A4·A6) 같은 브랜드 네이밍 등을 통해 인기를 구가했다는 분석이다. 이어 현대차와 차량 플랫폼을 같이 쓰는 등 그룹사 간 협력으로 원가 절감과 품질 향상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또 피터 슈라이어에게 디자인에 대한 전권을 주는 등 파격적인 책임경영을 통해 전사적 역량 집중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옵티마·로체 등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장기적 관점으로 K 시리즈를 준비한 것과 북미 시장에 소형 차종을 투입하는 등 글로벌 현지화 전략을 채택한 것을 비결로 꼽았다.
연구소는 기아차의 성공에 대해 “현대차의 ‘균형 잡힌 현대인’이라는 목표 고객과 달리 기아차는 ‘자신감 있고 모험적인 젊은 층’을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끌어들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2009년 기아차의 중형차인 로체를 구입한 30대는 24.6%였다. 하지만 올해 K5를 구입한 30대는 33.8%로 늘었다. 준중형차에 비해 비싼 가격을 디자인으로 상쇄하면서 소비자의 폭을 넓힌 셈이다.
잦은 리콜 문제 남아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기아차의 성공 뒤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리콜이다. K7은 지난 10월 자동차 실내등과 관련해 리콜을 실시했고, K5도 10월과 12월에 일부 문제가 발생해 무상점검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내년에 출시된 그랜저TG의 후속 모델 등 신차와의 경쟁도 남아있다. 이에 대해 이한응 부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 감독을 맡은 히딩크 감독의 말로 현재의 기아차를 표현했다.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며 “고객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마케팅 등 아직 갖춰야 할 것이 많이 있고, 올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좋은 결과를 내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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