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부 프로젝트’(이하 어어부). 장영규와 백현진으로 구성된 2인조 밴드. 어어부는 특출한 능력을 가진 밴드다.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 그들의 음악은 그들의 노래 가사대로 “이빨에 껴 있는 닭고기 조각”처럼 찝찝한 기분을 던져준다. 과연 그 누가 유쾌함의 상징이던 트위스트 김과 의 성우 송도순을 데리고 그런 기괴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이런 기괴함과 불편함은 연주곡마저 방송금지곡이 되는 전무후무한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즐기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찾고자 계속 그들의 음악을 듣게 하는 것이 바로 어어부의 매력이다.
“박수를 치지 말아달라”어어부의 공연이 열린 10월13일, 얄궂게도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가 벌어진 날이었다. 뼛속부터 ‘곰빠’인 나는 당연히 어어부보다 두산 베어스를 더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어어부의 공연은 경기 관람을 포기하고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공연이었다. 영화, 연극 음악, 미술, 솔로 음반 등 각자의 활동으로 함께할 기회가 적었던 두 멤버가 오랜만에 어어부란 이름으로 가진 공연이었고, 거기에 10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4집 앨범 의 모든 곡을 미리 들어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은 지극히 어어부적인 앨범이다.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콘셉트에 맞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일거리가 줄어든 (나그네란 이름을 가진) 탐정의 1년치 일기 가운데 무작위로 고른 일기의 날짜를 제목으로 정하고 그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앨범에 담았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기록된 정확한 시간과 상황들이 결국 우연적 혹은 우발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실시간이 갖는 덧없음과 무상함을 표현”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공연장인 서울 LIG아트홀에는 다른 공연들과 다르게 (두 멤버의 활동과 연관이 있을 듯한) 외국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고, 범상치 않아 보이는 예술 계통의 사람들도 적잖이 섞여 있었다(놀랍게도 이효리가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불이 꺼지고 멤버들의 요청으로 박수를 치지 말아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서 공연은 시작됐다. 공연은 한 편의 연극처럼 보였다. 영화배우 백종학이 먼저 무대에 올라 “뭉개진다”는 말을 반복하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이 ‘뭉개진다’는 표현은 어어부를 드러내는 불편함, 또는 불협화음과 같은 말들과 일맥상통했다. 그리고 이어 녹음된 문성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탐정 나그네의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어어부는 이 일기의 내용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변칙적인 음악과 무대 세팅을 보여주는 어어부답게 무대는 기존 밴드들이 갖는 구성과는 달랐다. 드럼을 대신해 다양한 타악기들이 자리했고, 기타 대신 피아노나 클라리넷이 주 멜로디를 이끌었다. 가끔씩 장영규는 베이스 기타를 놓은 채 키보드 자리로 가 아예 베이스 기타와 드럼을 배제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공연은 앨범의 수록곡 순서 그대로 진행됐다. 첫 곡으로 들려준 과 두 번째 곡인 를 연주할 때 백현진은 갖가지 포즈가 동반된 우스꽝스러운 액션을 선보였는데, 그 모습이 (요즘 인터넷 용어로) ‘병신 같지만 멋있었다’(이는 철저히 계획된 연출로 보였다).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 동작 하나하나도 미리 준비된 동작처럼 보였다. 이런 모습들은 이 공연을 더욱 단순한 음악 공연이 아닌 행위예술이 포함된 한 편의 연극처럼 보이게 했다.
소설인 노래 가사, 번뜩이는 문장백현진 특유의 위악적인 목소리 역시 여전했는데, 그의 노래(?)는 이제 어느 경지에 올라섰다. 비록 그가 톰 웨이츠의 영향 아래에서 시작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곡의 해석이나 표현력, 그리고 에서 짧게 들려준 허밍은 이제 백현진에서 시작하는 또 하나의 계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품게 만들었다. 작사가로서 백현진의 장점도 자연스레 드러났다. 그처럼 ‘이야기’를 노래로 만드는 이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노래 가사가 운문이라면 그의 가사는 산문이고, 대부분의 노래 가사가 시라면 그의 가사는 소설이다. 그래서 그만이 “빵과 우유값 1700원”이라는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가사에 담을 수 있다. 그 와중에 “나는 바람을 마구 가르며/ 예쁜 여자를 귀가시키고 있다/ 나는 바람을 마구 가르며/ 예쁜 여자를 떠나보내고 있다”()와 같은 번뜩이는 문장을 들려주기도 한다.
음악은 기존 어어부의 색깔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록 세션을 기반으로 다소 난해한 사운드를 들려줬던 2집 와 비교적 듣기 편한 음악을 담고 있던 3집 의 절충처럼 들리기도 했다. 프리 재즈, 혹은 아방가르드의 끝을 보여주는 듯한 사운드를 들려주다가도 나 과 같은 대중친화적(?)인 노래를 들려주기도 한다. 현악기 우쿨렐레가 연주를 주도한 은 심지어 아기자기하게까지 들렸다. 불편하지만 계속 듣게 만드는 어어부의 마력은 새 앨범에서도 계속 이어질 듯하다. 이 모두는 어어부 음악의 핵심인 장영규의 공이다. 다수의 영화음악과 연극, 현대음악 등의 작업을 하면서 얻게 된 노하우를 이번 앨범에 더욱 세심하게 담아낸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공연장 옆 대형 TV에서 야구 연장전 중계를 하고 있었다. 11회 말 투아웃 만루, 삼성의 공격. 손시헌의 끝내기 실책으로 두산이 지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내 머릿속에는 손시헌이 실책하는 모습보다는 백현진이 무대에서 춤을 추고 마이크 스탠드를 걷어차는 모습이 더 많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곡으로 들려준, 가장 기괴한 장송곡이 될 듯한 12월26일의 일기 가 자꾸 맴돌았다. 뼈아픈 패배를 잊기 위한 도피였을까? 천만에. 그건 인상적인 공연을 보고 난 뒤에 따라붙는 기분 좋은 여운 때문이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