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을 넘어 동반성장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공유한 의미 있는 자리.”(전국경제인연합회) “동반성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계기가 될 것.”(한국경영자총협회)
“근본 대책이 아닌 알맹이 없는 미봉책.”(경실련)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떠나갈 듯 요동치더니 뛰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뿐).”(경제개혁연대)
정부가 지난 9월29일 발표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 대책을 놓고 경제단체와 시민단체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럼 당사자 격인 중소기업들의 시각은 어떨까?
“대통령이 중소기업 대표들을 직접 만날 정도로 관심이 높아 기대가 컸지만,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다”(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납품단가에 문제가 있을 때 개별 중소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단체가 (대기업에) 조정을 신청하고 협상까지 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신청권만 허용됐다.”(한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
한마디로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한다. 이렇듯 삼인삼색(三人三色)의 반응은 이번 동반성장 대책의 성과와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납품단가 집단교섭권·3배손해배상제 제외그럼에도 재계·시민단체·중소기업계의 평가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은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추진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전경련의 황인학 산업본부장(상무)은 “대기업이 1등을 하려면 중소기업의 부품도 1등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상생으로)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을 모두가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도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 중심에서 대·중소기업 상행협력으로 정책기조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추진 대책을 둘러싸고는 평가가 갈린다. 대기업들은 대체로 “자율적 해법을 강조한 대책으로, 과거보다 훨씬 정교하고 구체적”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단지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깎았다는 입증책임을 중소기업 대신 대기업이 지도록 한 것 등에는 “사실상 납품단가를 더는 깎지 말라는 뜻”이라며 부담스러워했다.
반면 시민단체와 중소기업들은 핵심 대책이 빠졌다고 입을 모은다.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핵심인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와 원자재값 상승분의 납품단가 미반영 문제를 획기적으로 풀기 위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정부가 유명무실화된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조정신청권을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부여하기로 했지만, 결국 (실제 조정 과정에서는) 하도급업체가 개별 회사의 힘만으로 대기업과 직접 교섭해야 하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며 ‘눈 가리고 아웅식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중소기업들이 근본 대안으로 제시한 ‘납품단가 연동제’(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자동적으로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최소한 업종별 협동조합에 조정신청권이 아닌 협의권을 부여해 집단교섭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불공정한 하도급거래로 피해를 입은 하도급업체가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3배손해배상제’(대기업의 불법행위로 중소기업이 손해를 입었을 때 3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이나 ‘공정위의 전속고발권(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제도) 일부 제한’ 등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시장 실패’에 정부 개입은 당연”
동반성장 정책 수립 과정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 이민화 중소기업 호민관은 △납품단가 감액의 정당성 입증책임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전환 △원가자료 확인을 위한 대기업의 일방적인 중소기업 사업장 실사 금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자료 요구시 서면요청 의무화 등을 3대 핵심 대책으로 꼽았다. 그는 “지난 7월 이후 3개월 만에 이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을 보면 한국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면서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대한 납품단가 단체협상권 부여와 3배손해배상제 도입이 실현되지 않은 것은 미흡하지만, 전체적으로 100점 만점에 70점 이상으로 합격선은 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언론들의 입장도 극과 극이다. 보수 성향 언론은 “지나친 정부 개입에 따른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거나 “동반성장의 근본 해법은 중소기업의 자생력 강화에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진보 성향 언론은 “대기업 규제 없는 상생 대책은 허구”()라거나, “반쪽짜리에 그친 상생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와 시민단체 간 시각차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중소기업 동반성장과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법과 제도를 통한 정부의 주도적 역할 대신 대기업의 인식 전환을 통한 자율적 협력 유도를 강조한 데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시장경제를 무시하고 정부가 (동반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참여정부에서 공정위의 최고위직을 맡았던 한 인사는 “하도급거래의 근본 문제는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공정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시장경제를 내세워 개입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납품단가 연동제와 3배손해배상제는 즉각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도 “(정부의 동반성장 전략은) 대기업의 시혜적 조처에 의존하는 것으로, 결국 대기업에 ‘착하게 살라’고 얘기하는 데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7월 이후 ‘대기업 때리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시정과 사회적 책임 이행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또 동반성장 대책 발표를 애초 8월 말에서 9월 말로 한 달이나 미룰 정도로 고심을 거듭했다. 이번 발표 내용을 놓고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쪽이나 반대로 정부의 좀더 신속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하는 쪽 간에 뚜렷한 견해차를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 내지 동반성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시점이 됐다는 점이다.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글로벌 경제에서의 경쟁 단위가 개별 기업에서 기업 네트워크로 전환되면서 대·중소기업 네트워크의 경쟁력이 중요해졌다”면서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상생 대책은 양극화의 예방약
이번 정부 대책이 실효를 거둔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중소기업이나 시민단체의 우려처럼 한국 경제의 고질병(양극화)이 치료되지 않고 더욱 악화된다면, 앞으로 국가경제는 물론 개별 산업이나 기업들이 더 큰 치료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 경제에 일본의 ‘도요타 쇼크’에 버금가는 강한 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