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애플TV와 구글TV의 시장 발표를 계기로 스마트TV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9월3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0’에서는 주요 TV 제조 업체의 스마트TV 선언이 나란히 이뤄졌다. ‘스마트TV’란 인터넷 환경을 기반으로 영상과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를 시청자가 원하는 대로 설치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으로, ‘스마트폰의 TV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font color="#006699">‘스마트 신드롬’에 올라타고 있지만…</font>
국내 업체들은 스마트폰에서 애플의 아이폰에 뒤진 현상을 스마트TV에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체 플랫폼을 선보이고 있다. LG전자는 자체 스마트TV 플랫폼 ‘넷캐스트’(NetCast)를 선보여 유료콘텐츠를 사용하거나 앱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 역시 ‘바다’ 플랫폼을 통해 삼성앱스(삼성전자 휴대전화, 스마트TV 등이 이용할 수 있는 앱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TV를 선보였다. 소니는 구글과 손잡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탑재된 ‘구글TV’를 선보이는 동시에 기존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동영상 재생이 가능했던 ‘큐리오시티’(Qriocity)까지 합쳤다.
정부는 아예 스마트TV 활성화를 위해 나섰다.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지난 9월7일 ‘스마트 TV포럼’을 발족시켰다. 포럼에는 전자업체(삼성전자·LG전자), 통신사(KT·SK브로드밴드·LG U+), 방송사(한국방송·교육방송) 등은 물론 관련 연구소들도 참여해 한국 산업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장르라는 인식을 공유한 듯하다.
스마트폰으로 촉발된 ‘스마트’라는 풍조는 확실히 지배적이어서, 이 열풍이 가장 큰 스크린인 TV로 넘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우리는 어떻게 이 사태를 구경해야 할까?
2012년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된다는 공격적인 디지털 이행 과정을 들먹이지 않아도, 방송통신기술의 최적화는 결국 디지털화다. 이는 역행할 수 없는 변화고, 이런 정책적 이행 외에도 모든 것을 인터넷 프로토콜로 만들어버리는 ‘올 IP화’가 자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미 이런 현상은 신문산업을 위태롭게 했고, 음악산업을 뿌리부터 흔들어놨다. 그다음 희생양으로 책과 방송이 거론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언젠가는 인류의 모든 정보가 네트워크로 흡수될 것이다. 그러나 이 ‘언젠가’가 예상 밖일 수도 있고, 또 ‘어떻게’가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형식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는 늘 흥미롭다. 즉 변화는 선형적이 아니라 돌발적이라는 점인데, 스마트폰은 이를 증명했다.
스마트폰은 10년 전 웹의 충격 이후 다시 업계의 지각을 흔들며 새로운 산업의 중흥을 예고했고, 실제로 수많은 신규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낳았다. 이 흥분으로 모든 것에 ‘스마트’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풍조가 시작됐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혁신은 ‘폰’을 ‘폰’이 아니게 만드는 자기 파괴적 성격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시장 질서를 유지하던 권력 구조를 무력화했다. 폰은 음성통화를 하기 위한 도구로, 전화와 전화를 이어주는 통신사 없이는 의미가 없는 공산품이라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에서 음성통화는 수많은 기능 중 단 하나일 뿐이다.
<font color="#006699">IPTV와 차별점 불명확한 스마트TV</font>그런데 스마트TV는 비록 스마트의 풍조를 따르고 싶어하지만, 스마트폰과 달리 파괴하고 재편할 대상이 모호하다. TV와 웹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표현은 지극히 매력적이지만,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TV를 위한 앱스토어를 만들어놓았지만, 이 혁명의 전선이 불분명하다. 방송사가 넘어져야 하는 것일까? 제조사가 넘어져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스마트TV가 등장하면 ‘TV 보기’는 스마트TV의 수많은 기능 중 단 하나로 절하될 수 있을까?
과거 웹은 등장하자마자 많은 콘텐츠를 유통하면서 속도와 공간을 우위로 신문 등의 기득권을 무너뜨렸다. 스마트폰은 음성정보란 정보의 일부에 불과함을 실례로 증명해버리며 통신사를 소외시켰다. 스마트TV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하지만 스마트TV가 뭘 무너뜨린 적은 보이지 않는다.
트렌드는 결국 통제권이 움직이면서 따라 움직인다. 신문사에서 포털로, 통신사에서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로 시장을 통제하는 권력이 이양되고 그 과정에서 기회가 싹트고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스마트TV는 이 흐름이 명쾌하지 않다. 편성권은 이미 IPTV나 P2P, 웹하드에 의해 스마트TV 없이도 알아서 개인화되고 있다.
통제될 지역구가 만들어지려면 대세가 되는 제품의 대규모 시장 참여가 일어나야 하지만, 스마트TV가 이른 시일 안에 스마트폰처럼 팔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스마트TV는 정보기술(IT) 혁명의 총아를 자처하는 품목 중 거의 유일하게 개인용이 아니다. 내년부터 출시될 스마트TV와 일반 발광다이오드(LED) TV의 가격차만큼의 효용을 가정에 입증해야 하는데, 과연 쉬운 일일지 알 수 없다. 지름신이 가족 구성원에게 동시에 강림해야 한다. TV는 여전히 가족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죽치고 앉아 있거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화면 가득 띄워놓고 좋아하다가는 구박받기 십상이다.
세월이 조금 지나 지금의 젊은 세대(디지털 네이티브)가 독거 세대주가 되었을 때 54인치 스마트TV를 즐기는 풍경이 연출될지 모르겠지만 아직 그때는 아니다. 물론 그 사이에 스마트TV를 사고 싶어 안달이 날 만한 무언가가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그런데 지금은 위치 기반 서비스같이 스마트폰이 아니면 나올 수 없었던 ‘킬러 앱’의 전조가 TV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흥미로운 혁신의 대부분은 더 가벼운 창들에서 먼저 가볍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부담스러운 일이다. 차별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TV는 이 혁신 도구들의 보조적 모니터로 끝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손에 들고 소파에 앉은 상태에서 또다시 스마트TV를 조작할 이유란 무얼까? 이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스마트TV의 숙제가 될 것이다. 더욱이 ‘스마트폰은 손맛’이라는 말이 있듯이 스마트폰은 상당히 새로운 사용자 체험을 주었다. 그러나 현재 스마트TV의 리모컨들은 아이디어는 만발이지만 웹서핑조차 여전히 불편하다.
<font color="#006699">방송을 넘어설 혁신적 앱이 관건</font>
스마트폰은 지적 능력을 자극하는 물욕을 통해 실제로 사용자에게 스마트해지려는 강력한 의지를 지니게 했다. 그러나 스마트TV가 소파에 거의 누워 있는 시청자에게 과연 그런 의지를 가지게 할까? 아직은 ‘글쎄’다. ‘비디오 온 디맨드’(VOD·보고 싶은 영상을 바로 구입해 시청하는 방식) 정도라면, 이 정도의 혁신은 이미 한국의 IPTV에서도 이뤄졌던 일이다. 현재 선보이는 스마트TV는 기존 제품에 비해 큰 차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현재 방송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채널이다. 아무리 트위터에서 떠들어도 방송에서의 한마디만 못하다. 방송의 우위는 콘텐츠에서 비롯된다. 반면 스마트TV는 혁신적인 애플리케이션이 없는 이상 방송에 대한 우위를 넘보기 힘들다. 맞상대가 안 되는 이 싸움은 우리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스마트TV는 아직 등장도 하지 않은 셈이다.
김국현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검찰,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이재명 5번째 기소
“비명계 움직이면 죽이겠다”던 최민희, 논란 일자 “너무 셌다, 인정”
‘세계 1% 과학자’ 4년째 재판에 묶어둔 ‘검찰 정권’
한동훈 대표, 왜 이렇게 오버하나? [11월19일 뉴스뷰리핑]
소나무 뿌리에 송이균 감염시켜 심는 기술로 ‘송이산’ 복원
박지원 “한동훈, 머지않아 윤·국힘에 버림받을 것”
보이스피싱범 진 빼는 ‘할매 AI’…횡설수설, 가짜 정보로 농락
한동훈, 연일 ‘이재명 리스크’ 공세…국정 쇄신 요구는 실종
검찰, 과일가게 등 수백곳 ‘탈탈’…불송치한 이재명까지 엮어
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