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K5, 기아차 ‘동생의 설움’ 날릴까

한 차원 높은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현대차 아성 위협…
내수시장에서 역전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등록 2010-06-11 15:25 수정 2020-05-03 04:26
중형차 내수시장에서 치열한 ‘형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아차 K5(왼쪽)와 현대차 YF쏘나타.

중형차 내수시장에서 치열한 ‘형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아차 K5(왼쪽)와 현대차 YF쏘나타.

“오늘만 4대 팔았어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소비자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평소 하루 10팀 정도의 손님이 지점을 찾았는데, 지금은 2배 이상의 손님이 방문해요.”

기아차 서울 동대문지점의 윤춘기(48) 지점장은 지난 5월25일 출고된 K5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모터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K5는 출고된 지 일주일 만에 3552대가 팔렸다. 또 지난 4월부터 받은 예약 주문만도 두 달 만에 2만 대를 돌파했다. K5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달아오르면서 현대·기아차그룹에서 기아차가 ‘서자’의 설움을 딛고 ‘적자’인 현대차와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출고 일주일 만에 점유율 15%

기아차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7년 부도가 난 뒤 1998년 12월 현대차에 인수됐다. ‘점령군’ 치하에서 한때 “기아차 출신은 부장 진급조차 어렵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설움은 현대·기아차그룹의 오너인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 기아차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희미해졌다. 물론 아직도 남은 구석이 있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현대·기아차그룹에서 친환경차인 LPI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보일 때 아반테(현대)와 포르테(기아)가 동시에 할 수 있는데도 아반테가 먼저 나온 뒤 나중에야 포르테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보였다”며 “옛 점령군 모양새는 많이 퇴색했지만, 여전히 갈등 해결이나 신제품 채택에서 형인 현대차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차가 지난해 K7에 이어 올해 새로 내놓은 K5는 이같은 설움을 날릴 ‘구세주’로 평가받는다. K5는 2005년 11월 나온 로체 이후 4년5개월 만에 선보이는 풀 체인지 모델이다. 기아차는 K5에 4천억원을 쏟아부었다.

중형차여서 더욱 의미가 크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중형차 시장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경기 불황의 여파로 그 비중이 낮아지고 있지만 시장 규모는 여전히 크고, 중국은 준중형차에서 중형차로 시장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올 1~5월 국내에서 총 37만4863대의 승용차가 팔렸고, 이 가운데 중형차가 11만7907대(31.5%)로 가장 많다.

기아차는 그동안 옵티마·로체 등으로 중형차 시장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5월 국내 중형차 시장에서는 현대차 YF쏘나타가 9053대 팔려 39%의 점유율로 가장 많았다. 이어 르노삼성의 뉴SM5가 6960대(30%)를 기록했고 기아차 K5는 3552대(15%)였다. 하지만 K5가 올린 판매량이 출고 일주일 만의 성적인 점을 감안하면 6월에는 선두의 YF쏘나타와 팽팽한 경쟁을 치를 것으로 점쳐진다.

최고 출력·연비 캠리보다 좋아

그만큼 K5가 기아차의 기존 중형차와는 다른 단계의 디자인과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 사장 시절 직접 발탁한 아우디 수석디자이너 출신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부사장이 심혈을 쏟은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부산모터쇼에서 K5를 소개하며 “이미 초기 단계에서 확신을 가졌다. 전륜이면서도 (외제차에 많은) 후륜구동차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 느낌이 난다”라고 말했다. K5는 앞서 미국 뉴욕모터쇼에서도 현지 언론으로부터 “기아차가 맞느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디자인에서 인정받았다. 자동차 리서치 기관인 마케팅인사이트가 K5와 YF쏘나타, 뉴SM5, 토스카(GM대우), 로체 등 동급 차량의 디자인 초기 반응을 조사한 결과, K5가 총 74.8점으로 종합디자인 1위를 차지했다.

기능 역시 동급인 혼다의 캠리 2.5와 비교해도 최고 출력이 26마력 높고, 연비도 ℓ당 13km로 1km가 좋다. 또 △세계 최초로 발열 기능을 갖춘 최첨단 원단을 써 시트 전반에 균일한 열이 발생하는 바이오 케어 온열 시트 △운전대가 90도 이상 돌아간 상태에서 시동이 걸리면 이를 알려주는 핸들 정렬 알림 기능 △방향을 틀 때 자동 점등돼 더 넓게 비춰주는 스마트 코너링 램프 등도 자랑할 만하다. 대림대 김필수 교수(자동차공학)는 “기아차는 현대차에 인수되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독특한 색깔이 사라졌는데, K5는 현대차와 차별화를 이룬 차량”이라며 “간결하면서도 혁신적인 디자인을 갖춘데다 편의 사양까지 좋아 기존 기아차와 달리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좋은 성능과 외관을 갖춘 K5의 약진은 현대차가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내수시장에서 기아차가 역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낳는다. 5월 기준으로 기아차는 내수시장에서 4만14대(34.6%)를 팔아 현대차(4만9228대·42.5%)를 바짝 추격했다. 전년 같은 달 3만8074대를 팔아 현대차(6만3718대)와 큰 격차를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약진세다. 6월부터 K5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온다면 역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새 강자의 탄생으로 중형차 시장 구도가 바뀔 수도 있다. 중형차 시장은 1강(쏘나타)·1중(SM5)·2약(로체·토스카) 구도였지만, K5의 등장으로 1강(쏘나타)·2중(SM5·K5)·1약(토스카) 혹은 2강(쏘나타·K5)·1중(SM5)·1약(토스카) 구도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이 현대·기아차그룹에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같은 회사가 같은 시장에서 경쟁해 제 살을 깎는 ‘카니발라이제이션’(간섭효과) 때문이다. 이미 정몽구 회장은 올 초 대형차 오피러스 후속 모델과 관련해 “내년에 출시할 기아차 초대형 세단은 현대차 에쿠스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가야 한다. 디자인부터 다시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제 살 깎기 양상은 이미 발생했다. 5월에도 기아차의 K7은 5332대가 팔려 현대차 그랜저(2358대)를 제쳤고, 기아차 스포티지R는 4859대로 현대차 투싼ix(3719대)를 넘어섰다. 반면 YF쏘나타는 9053대로 출시 이후 처음으로 판매가 월 1만 대를 밑돌았다. 여기에 르노삼성이라는 외부의 적과도 싸워야만 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YF쏘나타는 유선형의 독창적인 디자인과 중형차 최초로 2등급 연비(ℓ당 12.8km) 등을 내세워 순항 중이다. 지난해 9월 출시돼 4월말까지 11만3203대가 판매되는 등 최단기간 10만대 판매 기록을 갖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지난 5월 1만8000대가 팔리며 여전한 인기를 과시한다. 채영석 편집장은 “호불호가 뚜렷한 YF쏘나타와 유럽형 디자인의 K5가 서로 경쟁을 하면서 중형차 시장을 늘리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내 경쟁, 소비자에겐 혜택

소비자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동안 현대·기아차가 신차를 출시하면서 계속 가격을 올려 소비자들의 불만이 컸다. 그럼에도 경쟁 차량이 적다보니 현대·기아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K5 출시에 따라 내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대차가 가격 할인에 나섰고, 다른 경쟁사도 할인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차는 4월부터 쏘나타 구매 때 30만원 할인 조건을 내걸었다. 르노삼성의 뉴SM5도 기존 르노삼성차 구매 고객이 재구매할 경우 20만원을 추가 할인하고, GM대우는 2010년형 토스카 구입 고객에게 150만원을 할인해주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김필수 교수는 “K5의 등장으로 현대차가 많이 긴장하고 있다”며 “쏘나타의 독주를 견제할 만한 K5의 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자에게 좀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