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1년 넘게 지구를 뒤흔들고 있다. 지금은 그리스를 때리는 여진을 전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혹독한 경기 침체를 가리켜 ‘신자유주의의 종언’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경기순환의 한 국면이라는 말도 있다. 핵심은 이 위기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 끝은 어디에 있느냐다.
의 자매지로 5월3일 창간하는 경제 전문 월간지 도 그 해답을 찾는다. 시각이 다르면 해법도 다른 법. 는 미국과 주류 경제학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났다. 몇 발짝 물러나거나 옆걸음 한 뒤 다른 시각에서 경제 현상을 관찰했다. 때론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이를 위해 독일의 , 중국의 , 프랑스의 등 9개 매체와 손을 잡았다.
“주류 경제학계는 금융업계”창간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3인의 특별 인터뷰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자크 사피르 프랑스 파리고등사회과학원 경제학과 교수,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겸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이 참가했다. 시장의 완전성을 신봉하는 주류 경제학과 일정한 선을 긋는 학자들이다.
우선 자크 사피르 교수는 “(경제)위기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단언한다. 그는 2008년 이후 지금까지의 경제 상황을 ‘변종 바이러스’가 이동하는 과정에 빗대 설명한다. 그는 “이 위기는 모기지 신용대출에서 시작됐지만, 그 뒤에는 은행 위기로 진화했으며, 이어서 전반적인 유동성 위기로 변모했다”며 “지금은 여러 나라의 국가 부채 위기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전망은 어떨까? 암울하다. 그는 “새 국면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고 말한다. “(국가 부채 위기를 겪는) 그리스의 뒤로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이 부각되고 있으며, 그 너머엔 빚이 가장 많은 나라 미국이 몰골을 드러낼 것”이란 게 그의 전망이다. 그는 “국가 채무 위기가 달러에 미칠 때면 우리는 정말 미칠 정도로 깊은 수렁에 빠져들 것”이라고 덧붙인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 교수는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해 주류 경제학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는 “금융감독 기구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을 정당화하고, 중앙은행이 거품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는 데 사용했던 지적 틀을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경제학자”라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 25년간 경제학자는 금융규제가 필요 없다고 확언해왔다”며 “이 모든 것이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에 일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주류 경제학계를 금융업계에 비유한다. “금융인은 자신의 울타리 속에서 엄청난 보너스를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이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는 자신들뿐이다. 경제학자도 마찬가지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이성적 가정’이라고 여기는 것을 규정하고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분석 대상에서 제외해버린다.” 그는 “이번 경제위기를 통해 경제학의 흐름은 주류 이론 비판자의 주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중·일 전문가의 상호 충고 등 다양한 기획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시장 위주 금융기관’을 꼽는다. 시장 위주 금융기관이란 전통적인 상업은행을 제외한 증권회사·투자은행 등을 가리킨다. 그는 “월스트리트 중심의 시장 기반 금융기관이 거대한 자산 증권화 흐름을 일으키면서 금융시장을 주도했고 여기서 위기가 잉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산 증권화란 금융기관이 자산 보유자에게서 대출채권 등을 사들인 뒤 이를 근거로 새로운 증권을 발행·매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시장은 대체로 잘 작동해 (균형 수준으로) 맞아떨어지는데, 그 불완전한 성격 때문에 위기를 증폭하는 경향이 있다”며 “시장의 불완전을 제어하기 위해 또 하나의 불완전한 요소(규제·감독)가 시장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정 위기로 뒤뚱거리는 그리스의 이면은 ‘유령과 싸우는 그리스 시민의 비애’ 기사에서 엿볼 수 있다. 랄프 호페 사회부문 편집장이 쓴 이 기사는 그리스 아테네에 사는 얀니스 파파다키스 가족의 일상을 통해 그리스 재정 위기의 원인을 파고든 수작이다. 유럽연합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그리스의 건축업자들이 건축비를 부풀리거나, 목축업자들이 키우는 양의 수를 속이는 등 이른바 ‘도덕적 해이’가 횡행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유럽연합에 가입한 뒤 나타난 그리스의 풍경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뒤 몇 년 안 돼 금융위기를 겪은 우리나라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흥미로운 기획들도 눈에 띈다. ‘글로벌 인사이트’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경제전문가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충고를 담았다. 이토 다카토시 도쿄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위안화, 엔화 핑계 대지 마!’라는 글에서 일본이 겪은 불황의 원인은 1980~90년대 엔화 절상이 아니라 부동산 거품을 막지 못한 데 있다고 설명하면서, 중국에 위안화를 절상하는 대신 자산 가격 거품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대륙 쪽(쑤안 일본 금융 전문가)에서는 일본이 만성적 국채 발행 관행을 고치지 않는다면 스페인과 터키, 포르투갈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좌우의 시각으로 본 ‘기업이란 무엇인가’
기획 ‘우리 시대 기업이란 무엇인가’에는 대표적 시장론자인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과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참여했다. 공 소장은 “한국 대기업이 세계시장을 상대로 전개하는 변화·혁신의 성공 사례들은 나라 전체의 수준을 단시간 내에 크게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며 “대학이나 병원의 변화, 공공디자인 분야의 혁신, 각종 공공기관이 시도하는 혁신 등이 좋은 사례”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순기능을 높이 평가하는 말이다. 반면 우석훈 소장은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들어 “국정 운영에 깊게 참여한 일부 기업과 각종 위원회의 월급쟁이 회사 위원, 그 참여의 폭이 너무 깊다”며 “이제 그만 철수할 때가 아닌가 싶다”라고 지적한다. 홍 소장도 “대기업이란 그저 현존하는 유의미한 생산 활동의 모든 유·무형의 계기를 있는 대로 ‘독점’해 산업 과정의 지배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활동의 핵심”이라며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실력파 블로거들의 글도 눈길을 끈다. ‘알파헌터’라는 필명으로 이름 높은 이상헌 세무사는 “남유럽 국가의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세계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여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며 “유럽 경제는 역내 활동 비중이 높고, 미국 경제만큼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블로거 ‘세일러’는 미국과 한국에서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을 늘려도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를 쉽게 설명한다.
그 밖에 마리아나 브루네티 이탈리아 토르 베르가타대 교수 등은 여성의 결혼과 투기 성향의 관계에 대해 결혼이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던 시기에는 기혼 여성의 투자가 공격적이었지만 이혼율이 늘면서 기혼과 미혼 여성의 투자 성향 차이는 없어졌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또 존 챔버스 미국 시스코 회장은 인터뷰에서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수준의) 인터넷 1단계는 완전히 지나갔고, 동영상과 새로운 사업 모델이 등장한 2단계를 목격하고 있다”며 “(앞으로) 인터넷은 엔터테인먼트와 기업의 핵심을 차지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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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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