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앱스토어 없는 아이폰은 장 보러 가는 벤츠

아이폰 사용기 ②
무궁무진한 정보의 세계, 그런데 어플을 다운받기까지 왜 이리 난관이 높은 거야
등록 2010-01-28 18:12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A341B1">알림- 잠재된 무공이 엄청나지만 스스로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고수가 우연히 독사에 물려 막힌 혈이 뚫린다. 각성한 그는 마침내 천하고수의 반열에 오른다. 이렇게 되면 참 좋겠지만 이런 이야기는 대개 영화에서나 등장하게 마련이다. 일주일 사이 아이폰을 ‘완전 정복’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따라서 30대 저질 유저의 ‘수박 겉핥기식’ 사용기는 계속된다. 실용적 정보는 역시 마르지 않는 샘, 인터넷으로!</font>
앱스토어 없는 아이폰은 장 보러 가는 벤츠.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앱스토어 없는 아이폰은 장 보러 가는 벤츠.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아이폰이 일방적으로 독주할 거라고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지. 그동안 애플과 동반자 관계였던 구글이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내놓았고 얼마 전에는 심지어 ‘넥서스원’도 출시했잖아. 모토롤라에서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모토로이까지 내놓았으니까 시장 상황은 좀더 지켜봐야 할걸.”

최근까지 아이폰·안드로이드폰 이야기는 나의 영혼을 아주 먼 곳 안드로메다로 출장 보내던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기술의 진보, 기계의 진화에 무심했던 내가 이쪽 업계 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데는 역시 아이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모든 정보를 영문으로 입력해야 하다니

지난 일주일간 사람을 만나면 그의 손이 닿을 만한 거리에 아이폰을 꺼내놓았다. ‘나 아이폰 쓰는 남자야’ 혹은 ‘한번 만져봐도 좋아’라는 의사표시였다. 그가 정치권 인사든, 언론계 선후배든, 기업 관계자든 대부분 나의 희고 매끈한 ‘미끼’를 외면하지 못했다.

아이폰이 등장하는 순간, 화제는 아이폰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사는 다양했다. 새롭게 쏟아지고 있는 아이폰이나 구글폰(넥서스원·모토로이 등)에 대한 궁금증부터 스마트폰 시장의 치열한 경쟁 구도에 대한 전망, 폐쇄적인 국내 이동통신 환경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해온 삼성이나 SKT에 대한 비판까지 주류 언론에서 다루는 정보 그 이상의 정보를 평범한 이웃에게 들었다.

아이폰 비사용자가 스마트폰 업계의 판도에 관심을 보인다면, 아이폰 보유자의 공통점은 아이폰 찬양에 입을 모은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찬사를 보내는 부분은 단연 아이폰이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창고, 즉 앱스토어(App Store)의 세계다.

앱스토어. 공식 명칭으로는 ‘아이튠즈 스토어’다. 아이폰과 일반 휴대전화의 결정적 차이는 여기서 갈린다. 일반 휴대전화를 완제품에 비교한다면, 아이폰은 ‘미완의 대기’라고나 할까. 자기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설치해 활용하는 것이 아이폰의 가치를 결정짓는다. 아이폰을 구매해 휴대전화로만 사용한다면 장 보러 가기 위해 벤츠를 구매하는 것과 같다.

앱스토어가 담고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전자책 등 각종 실용 정보와 디지털 음악·영화·게임부터 성경과 성인용 콘텐츠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물론 앱스토어에서 원하는 ‘어플’을 내려받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가장 짜증나는 것은 ‘아이튠즈 스토어’에 가입하는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이다. 이걸 심지어 세 살짜리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천재거나 사기꾼이다. 내 지능이 세 살짜리보다 못하지 않다면 말이다. 가장 먼저 ‘욱’하게 만든 것은 아이튠즈 스토어에 가입하려면 모든 정보를 영문으로 입력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최 기자가 한글을 사랑하는 애국자였구나’ 하고 감동받을 준비를 했다면 사과드린다. 화가 난 건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는 애플의 고압적 태도 때문이었다.

신규로 가입할 때 무조건 신용카드 정보 등록을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비자와 마스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만 요구했다. 이쯤되면 ‘욱’하는 단계를 넘어 입이 살짝 열리며 상스러운 발음이 나올락 말락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애플이 친절히 일러주지는 않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신용카드 정보 없이 가입하는 방법이 있다.

오예, 신용카드 정보 없이 가입하는 방법

가입 완료 메시지를 확인하면 ‘드디어 끝났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이게 전부라면 아이폰이 아니다. 가입 절차를 마친 뒤 어플 다운을 시도해보지만 안 된다. 되는 사람도 있다지만 대개는 안 된다. 계정을 만들 때 등록했던 전자우편으로 확인 메일이 오는데, 그 메일에 담긴 주소로 접속해야 가입이 최종 승인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불친절한 아이폰은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었다. 때로는 아이폰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KT 상담원에게 해법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이폰의 바다, 앱스토어에 풍덩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일주일간 앱스토어 항해를 통해 건진 ‘물건’의 순위를 내 마음대로 매기면 아래와 같다.

1. 네이버 뉴스캐스트 등 뉴스 어플리케이션

2. 서울버스 등 내비게이션 어플리케이션

3. 투닥과 파랑새 등 소셜 네트워킹 어플리케이션

4. 캐논 드럼 등 엔터테인먼트 어플리케이션

5. 오바마 취임 연설 등 북 어플리케이션

네이버 뉴스캐스트는 등 서비스 중인 언론사의 주요 뉴스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자신이 원하는 언론사 위주로 뉴스캐스트 화면을 구성해놓으면 기사 제목부터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다. 직업상 뉴스를 다뤄야 하는 언론계 종사자들에게 유용하다. 서울버스 어플은 말 그대로 서울버스의 운행 정보를 담았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기다리는 버스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있다. 배차 간격이 긴 버스 이용자라면 나름대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투닥과 파랑새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랜덤채팅 어플 투닥을 재미 삼아 실행해봤다. 랜덤채팅은 상대방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그저 [나]와 [너]가 만나 다짜고짜 채팅하는 프로그램이다. 생각보다 별로였다. 대화는 1분을 넘기지 못하기 일쑤였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나] 안녕하세요.”

“[너] ㅎㅇ 서로 자기소개.”

“[나] 서울에 사는 직장 남성입니다. 나이는 서른○○ 살.”

곧바로 “상대방이 대화를 종료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채팅이 끝났다. 퇴장하기 전 “우~ 아저씨”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너무 많아 상대해주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엔터테인먼트 어플은 아이폰의 ‘재미’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서 출시된 아이폰에는 본격 게임 어플리케이션이 없다. 엔터테인먼트 어플에 고스톱과 오목, 야구게임 등 몇몇 캐주얼 게임이 포함됐을 뿐이다. 캐논 드럼은 드럼 치는 프로그램이다. 쿵닥쿵닥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괜찮다.

우와, 오바마 취임 연설~

아이폰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전자책 읽기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내가 내려받은 오바마 취임 연설 어플에는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 링컨의 1863년 게티즈버그 연설, 버락 오바마의 2009년 대통령 취임 연설 등 영어로 읽어둘 만한 명문이 수록돼 있다. 물론 아직 읽지는 않았다.

아이폰의 앱스토어에는 이 밖에도 10만 개가 넘는 어플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플은 쏟아지고 있다. 평범을 거부하는 기발한 아이디어, 참신한 시도로 탄생한 어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앱스토어의 세계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것일까.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