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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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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영웅 만들기

이동관·박형준·신재민 등 조·중·동 출신 ‘스핀닥터’ 3인방…
전후 맥락 감추고 ‘결단·쾌거·서민의 벗’만 강조
등록 2010-01-07 18:04 수정 2020-05-03 04:25
국가적 경사 때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연배우로 등장하고 있다. 2009년 7월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 박형준 홍보기획관(왼쪽부터)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 브리핑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가적 경사 때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연배우로 등장하고 있다. 2009년 7월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 박형준 홍보기획관(왼쪽부터)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 브리핑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른바 ‘국밥 광고’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서민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유권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정치 광고였다. 그런데 이 광고 속에서 국밥집은 서민이 주로 찾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것으로 묘사됐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등장인물은 낙원동이 아니라 강남 청담동에서 20년째 포장마차를 운영해온 할머니였다. 이 광고의 기획자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 방송특보였던 김인규(60) 한국방송 사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실은 뒤에 숨기고 이미지 포장만 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1인 사면은 대단한 자신감의 표현”

이번 이건희 전 삼성 회장 1인 사면 때도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다”는 식으로 리더십 이미지를 씌워 홍보하고 나섰다. 그동안 청와대가 “이 전 회장을 70여 명의 다른 비리 경제인들과 함께 사면·복권할지를 놓고 대통령이 고민하고 있다”고 계속 흘려왔는데, 이런 관측을 깨고 갑자기 대통령이 이 회장만 특별 사면·복권하는 용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법과 원칙을 깼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청와대는 ‘대통령의 결단’을 부각시켰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라는 점을 최대로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나중에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다면 이는 ‘이명박의 쾌거’로 대서특필될 것이다.

이에 대해 고성국 박사(정치평론가)는 “이 전 회장 1인 사면을 감행한 건 대통령의 대단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청와대의 핵심 정치홍보 전문가들이 이번 사면의 성격에서 그동안 대중한테 알려진 경제 살리기라는 점은 쏙 빼고 평창 겨울올림픽을 분명하게 설정한 뒤 대통령의 결단이란 측면을 부각시켰다”며 “정치홍보의 감각과 이미지 정치란 측면에서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것 같지만, 이들은 위험한 스핀닥터(Spin Doctor)팀”이라고 말했다. ‘스핀닥터’는 야구에서 투수가 공에 스핀(회전)을 줘 변화구를 만들어내듯 사실을 가공해 홍보에 활용하는 정치홍보 전문가들을 일컫는 용어다.

김인규 전 방송특보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현재 이명박 정부의 ‘스핀닥터’로 활약하고 있는 인물은 50대 초반의 조·중·동 기자 출신 3명이다. 이동관(53) 청와대 홍보수석, 박형준(50) 청와대 정무수석, 신재민(52) 문화관광체육부 제1차관이다. 이 대변인은 기자 출신이고, 청와대 홍보기획관을 지낸 박형준 수석은 에서 몇 년간 기자 생활을 한 바 있다. 신 차관은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정무기획1팀장을 지낸 기자 출신이다. 이들 3인방은 ‘친서민·중도 실용주의’를 만들어내는 등 ‘이명박 영웅 만들기’를 전략적으로 기획·생산·유통시키고 있는 인물들로 알려진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발전 사업 수주 등 국가적 경사마다 이들의 손을 거치면서 이 대통령은 홈런을 터뜨린 주역 배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만수씨는 “참여정부를 포함해 어느 정권에서든 대통령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홍보하려는 유혹은 항상 느끼게 마련”이라며 “다만 참여정부 때는 홍보수석실에서 발표하는 내용을 주요 언론들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 이면을 캐고 들었다면, 현 정부에서는 분명히 스핀닥터들이 발표하는 내용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는 접어둔 채 언론들이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 수주와 관련해 청와대는 한 달 전부터 원전 수주 가능성에 대해 엠바고(보도시점 통제)를 걸었다. 원전 수주가 확정됐을 때 극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원전 수주가 확정되자 다수 언론은 ‘MB 입술 부르튼 1박2일’ ‘대한민국 CEO 세일즈 외교’라는 제목 아래 이 대통령을 수주 성공의 주인공으로 묘사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대통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발표했다. 막판에 이 대통령이 직접 팔 걷고 나서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는 것이다.

‘거절에 역정’ 흘리고 ‘입술 부르튼 1박2일’ 강조

특히 이 대통령의 활약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청와대는 2009년 11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사실상 (수주) 거절 통보를 받았다”고 비관적으로 보고하자 대통령이 역정을 냈다고 언론에 흘렸다. 유 장관의 말을 일부러 대비시켜 이 대통령의 강고한 의지와 담판 외교가 일을 되게 만들었다고 홍보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통상부 쪽은 “유 장관이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보고한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 유 장관이 대통령에게 그렇게 보고했다는 언론 보도는 외교부를 통해 나간 적이 없다. 다만 원전 수주와 관련해 경쟁국과 아랍에미리트 동향 등을 청와대 등 관계 부처에 제공해왔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한국이 프랑스 등 경쟁국에 비해 원전 입찰 가격을 크게 후려쳤고 낮은 입찰가와 공기 단축 등을 앞세운 점이 수주에 크게 작용했다는 진실은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미국 정가에서 스핀닥터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실을 살짝 비틀거나 한쪽 면만 부각시키는 전문가로 불리기도 한다.

2009년 12월15일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즉 영리병원 도입이 유보됐을 때도 스핀닥터들은 또 하나의 ‘이명박 영웅’이란 작품을 만들어냈다. 당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영리병원 도입과 관련해 찬반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영리병원 도입을 유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와 관련해 는 다음날 1면 머리기사(“서민들이 의구심 갖고 있다” MB, 영리병원 제동)에서 대통령이 “서민들 사이에서 ‘혹시 가진 사람들이 더 혜택을 받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아픈데 차별까지 받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느냐”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영리병원 도입 유보가 사실은 부처 간 갈등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오히려 이 대통령이 ‘서민에 대한 애정’이란 측면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는 식으로 상황을 반전시켰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국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기획실장은 “이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영리병원 도입을 놓고 갈등해 온 가운데 오히려 대통령이 서민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식으로 쇼를 벌였지만, 현 정권 내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교체되면서 영리병원 도입은 부처 간 합의라는 모양을 띠고 시행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이데올로그를 자임하는 스핀닥터들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흘렸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고성국 박사는 “부처 간 심각한 갈등이란 팩트는 가린 채 몇 가지 에피소드만 부각시켜 대통령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다는 식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스핀닥터들에게서는 진실에 근거하지 않고 겉모습만 잘 포장해 대통령을 영웅으로 만드는 기술만 넘쳐난다”고 말했다.

“선동이 의외로 쉽게 먹히는 환경이다”

2009년 8월 박형준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국민은 주장과 의견이 강하지만 대부분 자기가 관심 있는 부분만 본다. …미디어법은 홍보를 많이 했지만 사람들에겐 그냥 ‘MB 악법’이라는 선동적 이미지만 남았다. 선동이 의외로 쉽게 먹히는 환경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오히려 청와대의 스핀닥터들이 국민들의 이런 측면을 거꾸로 활용해 국가적 경사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을 주연배우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은 “현 정부에서 모든 업적을 대통령 한 사람한테 돌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정치적 실패가 발생하는 등 둑이 터지게 되면 대통령과 별로 관련 없는 일조차 국민들이 대통령의 실책으로 돌리게 되는 등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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