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변죽에서 울렸고, 그 끝은 정권 핵심부의 결단이다. 먼저 체육계 인사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곧이어 정계·재계 인사들도 나섰다. 명분은 국익이었다. 일부 언론이 확대재생산했다. 한나라당 인사들이 호응했다. 공은 정권 핵심부로 던져졌다. 결단은 이명박 대통령의 몫이 됐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스포츠계 건의
바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특별사면(특사) 논란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하는 강원도와 스포츠계는 그야말로 한목소리로 이 전 회장의 특사론을 주장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도 이 전 회장을 포함한 기업인 대사면을 정부에 공식 건의하기로 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 전 회장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도 12월11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사회적 공감대만 형성되고 국민들이 관대한 마음으로 선처를 베푼다면, (이 회장의 특사가) 국익을 위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건희 전 회장은 차명계좌를 보유하면서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지난 5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앞서 이 전 회장은 2008년 7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에게 자진해 일시 자격 정지를 요청했다. 삼성특검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 관한 재판이 지난 8월 모두 끝났지만, 이 전 회장이 자격을 회복하려면 사면·복권이 선행해야 한다.
이 전 회장 특사론이 부풀어오르면서 삼성 안팎에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삼성과 청와대의 ‘빅딜설’이 관심을 끈다. 삼성이 세종시로 본사 또는 계열사를 이전하는 대신 MB 정부가 이 전 회장을 특사해준다는 설이다. MB 정부는 세종시 원안을 백지화하는 대신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타이밍설’도 나온다. 내년 6월엔 지방선거가 있어 현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느낄 수 있으므로 세밑이나 연초에 특사를 받으려 한다는 설이다. 여기에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이기면 특사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MB 정부가 힘이 있을 때 추진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 재계 인사는 “삼성이 특사를 서두르는 이유는 올해 안으로 이 전 회장에 대한 법률적 이슈를 모두 마무리짓고, 내년부터 소유구조 개편과 승계구도 작업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 쪽은 “삼성이 특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특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성탄절 또는 신년 특사 형식으로 이 전 회장을 사면·복권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특사에 관한 시각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론을 살펴야 하는 정무 라인은 특사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많고, 경제 라인은 특사에 좀더 적극적이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단다. 여론이 부담이다. 이같은 부담을 덜기 위해 생계형 범죄자를 특사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세종시·4대강·예산안 등 현안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특사에 따르는 후폭풍을 맞을 수 있는 것도 곤혹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최종 결정은 MB에게 달려 있다.
“노조·재벌에 ‘다른 잣대’가 MB식 법치인가”
이런 상황에서 특정인을 위한 봐주기식 특사가 MB 정부가 내세우는 법치주의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거세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MB 정부의 슬로건이 법치주의다. 힘없는 국민과 노조는 법치주의를 엄격하게 적용받았다. ‘이 전 회장에게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과연 MB 정부식 법치주의인가’라는 비판을 겸허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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