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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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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띄우시던 분들 어디 가셨나

‘금융규제 완화와 개방의 표본’ 치켜세우던 MB와 지자체장들…
“대통령부터 온 나라가 신기루에 놀아난 셈”
등록 2009-12-10 10:53 수정 2020-05-03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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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7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금융인 단체인 ‘서울파이낸셜포럼’이 조찬 모임을 열었다.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 등 금융계 유력인사들이 보였다. 이날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창조적 금융을 위한 제언’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두바이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했다.

2007년 4월11일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배편으로 두바이 인공섬인 팜 아일랜드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07년 4월11일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배편으로 두바이 인공섬인 팜 아일랜드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주 전에 두바이에 갔더니, 두바이 왕(셰이크 모하메드)이 여러 정치 지도자를 만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내가) 두바이 왕을 한번 만나보겠다고 했더니, 실무자급에서 ‘이명박 신분이 백수라 프로토콜상 만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두바이 왕이 ‘꼭 만나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접견실에서 환담하고 있을 때 왕이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두바이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자 전화였다. 왕이 그 정도로 기업인을 대접해주고 있었다.”

두바이 왕의 행동은 외교적인 결례였지만, 이 후보는 두바이 왕의 행동에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배워야 할 자세라며 치켜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이 된 뒤 기업인 102명이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는 기업인 핫라인을 개통했다. 최고경영자(CEO) 출신답게 두바이 왕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보수 신문은 “‘CEO 출신 대통령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환영하는 재계의 분위기”를 기사로 썼다. 하지만 ‘이명박(MB)폰’은 ‘불통폰’이 됐다. 개통 뒤 한 달 동안 10통밖에 걸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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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6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실. “한국이 두바이 같은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규제 중복부터 풀고 금융 서비스의 완전한 개방을 꾀해야 합니다.” 데이비드 엘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의 금융위기는 미래의 일이었다.

두바이 국제금융센터 회장을 맡고 있던 그는 외국인으로 유일하게 인수위에 합류했다. 두바이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인사였다. 엘든 위원장이 맡은 국가경쟁력강화특위는 인수위 핵심 분과였다. 한반도 대운하와 새만금, 과학비즈니스벨트, 투자 유치 등 이명박 당선인의 주요 정책을 관장했다. 기자들 사이에 ‘MB노믹스’는 ‘두바이노믹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기자회견 뒤 인수위 주변에서 엘든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엘든의 행적을 물어보면, 인수위 관계자들 역시 그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단지 그가 홍콩, 중동, 유럽 등에서 머무르며 투자 유치 활동을 하고 있다고만 했다. 하지만 두 달 동안의 인수위 활동이 끝날 때까지 그가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인수위 출입 기자들 사이에선 그가 ‘먹튀’였다는 농담이 나왔다.

후보 시절부터 ‘두바이 본받자’ 강조

MB는 지난 대선 당시 ‘한반도 대운하 100% 민자 유치’ ‘대한민국 747’(연평균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 등의 공약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런 비판에 맞서 내놓을 수 있는 게 바로 ‘두바이 신화’였다. MB에게 두바이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공약이 실제 지상에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두바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버즈두바이 등 대형 건축물을 짓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만 한 인공섬 팜아일랜드도 만들었다. 거대한 토목·건축 공사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두바이는 금융 규제 완화와 개방으로 블랙홀처럼 외국 자본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MB는 지난 대선 기간 내내 두바이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세금이 없고, 외환거래 제한이 없고, 노동쟁의가 없고, 외국 기업 소유권에 제한이 없는 두바이 발전 모델은, MB노믹스와도 맞닿아 있다.

2007년 8월 MB는 지리산 산행 도중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최근 두바이계 펀드가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의향서(LOI)를 들고 왔다. 150억달러(약 14조원) 정도를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새만금·송도·부산신항만도 ‘두바이 타령’

한 달 뒤인 그해 9월 MB와 한나라당 지도부가 전북 부안의 새만금 현장을 찾아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장 벽면에는 ‘새만금을 두바이처럼 경제 대통령 이명박’이란 구호가 내걸렸다. MB는 “새만금 개발계획을 국제화해야 한다. 외국 자본과 외국인들도 들어와야 이 사업이 된다”고 강조했다. 전주방송 등 지역 4대 언론사 초청 대담에선 “새만금에 중동의 오일달러를 끌어오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해 11월 제주를 찾은 MB는 제주를 홍콩이나 두바이 못지않은 명실상부한 국제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MB의 두바이 사랑은 대통령 당선 뒤에도 이어진다. 2008년 5월 MB는 업무보고차 전북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두바이에서도 (새만금에) 30억달러 투자를 준비하겠다는 공식적인 연락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MB는 그해 9월 새만금 연구단체 발족식에 보낸 축사에서 “새만금이 ‘동북아의 두바이’를 넘어 세계인이 감탄하는 메카로 성장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MB 정신을 잇는 후계자들도 속속 나왔다. 안상수 인천시장은 인천 송도 신도시를 ‘한국의 두바이’로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허남식 부산시장도 부산신항만을 ‘한국의 두바이’로 만들겠다고 강조해왔다. 민간에서도 두바이 따라 하기는 이어졌다. 롯데가 잠실에 112층 규모로 짓겠다는 제2롯데월드는 두바이 열풍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용산 역세권의 150층 규모 드림타워와 서울 상암동의 133층짜리 서울랜드마크 빌딩 등 초고층 건축 계획이 속속 나왔다.

투자 뜻 밝혔다는 ‘두바이 펀드’ 정체는?

하지만 지난해 9월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진 뒤, 두바이는 휘청했다. 제조업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외부에서 투자를 받아 지탱하던 두바이는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자금 경색을 불러일으키면서 1년 만에 부동산 가격이 반 토막났다. ‘사막의 기적’이 ‘사막의 신기루’였음이 드러났다.

보수 논객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띄운 ‘MB의 모델 두바이, 드디어 무너지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과 더불어 ‘세계적인 탁월한 CEO’라고 했던 두바이 통치자의 허황된 돈놀음에 세계가 속았던 것”이라며 “대통령은 물론이고 온 나라의 정치인과 사업가, 그리고 언론이 두바이를 배우자고 아우성친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밖에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MB가 두바이 투자 유치에 애쓰고 있지만, 금융계 안팎에선 두바이 펀드의 실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전문가는 “투자자유지역인 두바이의 사모펀드는 실체가 불분명한 투기적 금융자본에 속한다”고 말했다. 영국 금융회사인 바클레이스도 아부다비 왕가의 투자사인 인터내셔널 페트롤리엄 인베스트먼트 코프(IPIC)의 ‘먹튀’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올해 6월 는 바클레이스의 중동 최대 주주 가운데 하나였던 IPIC가 35억달러 상당의 바클레이스 보유 지분을 팔아 상당한 투자수익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IPIC가 바클레이스에 투자했을 당시만 해도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나얀 IPIC 회장이 “장기적인 전략적 투자”라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바클레이스가 중동에서 매력적인 조건으로 신규 자본을 조달했다며 열광했지만, IPIC는 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철수해버렸다.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사막뿐인 땅에 세계 최고의 건축물을 짓고 부동산 붐을 일으켰던 두바이의 성장 동력은 자유화와 개방화였다. 한쪽에서는 넘쳐나는 자본을 서구에서 끌어들이고, 다른 쪽에선 아시아에서 쏟아지는 값싼 노동력을 수입해 대규모 부동산 건설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금융과 건설이 ‘잘못된 만남’을 통해 버블을 일으키면 위기가 온다는 것이 바로 ‘두바이의 교훈’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허브와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추진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바이 위기설이 나돌던 올해 초부터 전라북도는 새만금 기획서에서 두바이라는 용어를 빼버렸다. 그동안 도청 강당 건물에 걸려 있던 ‘두바이 걸개그림’은 다른 현수막으로 대체됐다. ‘새만금에서 제2의 두바이를 창출하자’는 시내버스의 두바이 광고도 사라지고 있다.

언급 회피하며 ‘두바이 지우기’ 모드로

두바이는 11월25일(현지시각) 사실상 파산했다. 두바이 재무부는 “최대 국영회사인 두바이월드와 자회사 나킬의 채무 상환을 내년 5월30일까지 유예해줄 것을 채권단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국가 재정이 거덜났다는 것을 굴욕적으로 밝힌 셈이다. 두바이월드의 부채는 590억달러, 우리돈으로 약 68조원에 이른다. 두바이 전체 부채 800억달러의 7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11월30일 MB는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최고위원들과 조찬 회동을 하며 “두바이에서 터진 문제가 유럽과 아시아로 옮겨갈 수 있어 불안하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위기관리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당시 두바이를 한국의 롤모델로 강조하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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