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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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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스펙터클, 화나는 진부함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
웅장한 스케일의 재난영화지만 스토리는 가족 재결합 등 뻔한 공식 답습
등록 2009-11-11 16:42 수정 2020-05-03 04:25

일단 종말론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2012년 종말론은, 마야의 예언부터 인터넷의 최첨단 미래분석까지 다양한 근거를 들고 있다.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행성이 십자형으로 늘어서면서 큰 변화가 온다던 1999년 종말론 등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다. 그보다는 인류의 종말을 한 인간의 죽음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사실 45억 년의 지구 역사에서 우리가 처음이자 유일한 인간이자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오만일 수 있다. 마야는 지금의 세계가 6번째 문명이라고 말하고, 성경에서도 대홍수로 한꺼번에 문명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틀란티스나 무대륙처럼 초고대 문명이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즉 지금 우리가 구가하고 있는 문명이 한 순간에 멸망한다 해도 그건 자연의 섭리이고, 유한한 생명체의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영화 〈2012〉

영화 〈2012〉

좀더 거대하고 전 지구적인 재난 다뤄

영화 에서는 태양 표면의 거대한 폭발로 생산된 중성미자가 지구 내부의 핵을 가열시켜 지각판을 뒤흔들어놓는다고 말한다. 1953년 미국의 학자인 햅굿이 주장한 대륙이동설의 미래판인 셈이다. 아프리카의 오른쪽과 남미의 왼쪽 해안선을 맞춰보면 거의 들어맞는 것처럼, 오래전 지구에서 거대한 지각변동이 몇 번 있었다는 사실은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 의 설정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믿어보자. 재난영화는, 어떤 이유로든 재난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으니까. 이유를 몰라도, 하여튼 재난은 온다.

보통의 재난영화라면 화산이나 지진 등 국지적인 지역에서 벌어지는 천재지변을 묘사하면서 중심 코드로는 가족의 화해가 펼쳐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2시간 내내 재난만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에 재해를 극복하는 인간의 드라마가 필요한 것이다. 가 성공한 것도 쓰나미 자체보다 사람들의 지지고 볶는 일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 재난영화의 기본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의 재난이 좀더 거대하고, 전 지구적이라는 점이다. ‘사이즈가 중요하다’고 때부터 굳건하게 주장해왔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의 재난을 보다 몇십 배는 더 강화시킨다. 감탄이 절로 나올 만한 스펙터클한 재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는 성공적이다. 전반부에서 캘리포니아 지역이 말 그대로 ‘박살’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짜릿하다. 정말 끔찍한 비극임을 알면서도, 이 거대한 세계가 붕괴하는 광경을 보는 것은 근원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에는 찰리라는 인물이 나온다. 캠프차를 타고 다니면서 개인 라디오 방송을 하는 찰리는 음모론의 신봉자다. 로스웰부터 마릴린 먼로의 죽음 그리고 2012년의 종말을 앞둔 정부의 음모까지 찰리는 모든 것을 까발린다. 모든 ‘진실’을 폭로하고 종말을 설파하던 찰리가 죽음을 맞는 장소는 거대한 활화산으로 변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리고, 용암이 솟구치면서 불벼락이 내리치는 상황에서, 찰리는 황홀경에 빠져 생중계를 한다. 이제 세상의 종말이 도래했다면서, 나의 진실이 이제야 입증되었다면서, 찰리는 감격에 겨워 울부짖는다. 감히 인간 따위가 개입할 수 없는, 세계의 거대한 변화를 눈앞에서 지켜보며 찰리는 극한의 엑스터시를 경험한다.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풍경을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곧 종말을 맞이할 보통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그것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했던 자의 최상의 즐거움이다. 비록 구원이 아니라 죽음을 예언하는 선지자이긴 하지만.

뻔한 인물들의 유치원생 수준 이야기

재난영화로서 는 본분에 충실하다. 가장 상식적인 차원에서 종말이 다가올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단순하게 진행한다. 종말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권력집단은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노아처럼 방주를 만들고, 그 안에 문화재와 동식물들을 옮겨놓는다. 그리고 군인과 과학자, 엔지니어 등 반드시 필요한 인력을 제외하고는 방주의 건설에 필요한 돈을 내는 부자들만을 승선시킨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 과정에서 소수만이라도 살아남아 인류의 영속을 꾀해야 한다는 합리주의자와 인간이란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사랑과 박애이기에 더 많은 이를 구해야 한다는 이상주의자의 충돌도 있다. 그리고 위대한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이 가족과 함께 고군분투하며 살아남는 이야기도 있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필수 요소인 ‘가족의 재결합’은 에서도 핵심이다.

다만 에서 진한 감동이나 여운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등을 만든 롤랜드 에머리히는 사실 천박하다. 주인공 일행은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벗어나고, 이야기는 진짜 유치원생 수준이고 인물들도 얄팍하기 그지없다. 인간이라는 종의 종말을 그리면서도 새로운 시선이나 자극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에머리히는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는 소재를 선택하고, 확실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감독일 뿐이다.

종말은 정말로 올까? 그것은 확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종말이 온다고 한들, 보통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돼 있다는 것. 그러니 지금 이대로 정진하는 것이 제일 좋은, 종말을 맞이하는 법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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