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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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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역주행의 진실

상하이차 기술 유출·먹튀 논란 속 팔아넘긴 정부 원죄론도
등록 2009-02-11 18:19 수정 2020-05-03 04:25

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1월23일 오후. 쌍용자동차 공장이 위치한 경기도 평택시 칠괴산업단지는 고요했다. 평택시 곳곳에서 쌍용차 살리기 서명운동을 벌이고 돌아온 노동조합 집행부 사람들이 회사 앞 식당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11일 전 협력업체들의 부품 공급 중단으로 조업이 중단됐으니 공장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지만, 노동자들 중 일부는 연휴 기간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터였다. 1954년 하동환자동차제작소로 출발한 회사는 그동안 쌍용그룹, 대우그룹, 상하이자동차그룹(SAIC) 등으로 주인이 바뀌어왔다. 한상균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만일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새로 인수 대상자가 나타나면 7번째 대주주가 등장하는 셈”이라며 “동네 이름이 칠괴동인 게 다 그런 뜻을 담고 있나 보다”고 한숨을 쉬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금속노조, 투기자본감시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월13일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 정부에 쌍용차 사태 해결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금속노조, 투기자본감시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월13일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 정부에 쌍용차 사태 해결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쌍용차는 지난 2월6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빅3보다 먼저 국내 완성차 업체가 쓰러지는 장면이었다. 쌍용차를 인수한 이래 끊임없는 기술 유출 의혹을 사왔던 상하이차는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면서 ‘기술 먹튀’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던 쌍용차에 대주주였던 상하이차는 어떤 존재였을까. 한때 쌍용차 구하기에 발 벗고 나서겠다고 천명했던 상하이차는 왜 갑자기 주식소각의 위험을 무릅쓰고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을까. 쌍용차의 진실이라는 미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내야 한다.

“GM대우엔 1조 지원, 쌍용차는 거부당해”

첫 번째 수수께끼의 이름은 ‘쌍용차 회생을 놓고 벌인 한-중 간 힘 겨루기’다. 지난해 유가 급등과 미국발 금융위기로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던 쌍용차는 12월이 되자 직원들의 월급을 절반밖에 못 줄 만큼 돈줄이 막히게 된다. 쌍용차 지원을 둘러싼 갈등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당시 쌍용차보다 먼저 자금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GM대우는 산업은행으로부터 1조원 이상을 지원받았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당시 1조원이 넘는 ‘크레디트라인’ 제공은 한국이 GM에 특혜를 준 게 아니라,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때 이미 계약 조건에 포함돼 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쌍용도 정부 지원을 기대하는 게 당연했을 법하다.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지원 요청에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며 서운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상하이차 이사회에 참석했던 최상진 쌍용차 기획담당 상무는 “상하이차 이사회는 자신들이 다른 외국계 기업들에 비해 차별받는다며 억울해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쌍용차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상하이차가 산업은행 쪽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는데, 신용도 있고 담보도 제출하겠다고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의 설명은 다르다. 쌍용차는 지난해 6월께 산업은행에 중국은행, 중국공상은행 등과 2천억원 규모의 ‘크레디트라인’이 확보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크레디트 라인은경기에 민감한 자동차 회사가 차가 안 팔려 재고 등이 쌓이는 상황에 쓸 수 있도록 확보해두는 신용공여의 한도를 말한다.

크레디트라인은 이런 위기상황에서 활용되는 법인데 왜 쌍용차는 한국 정부의 새로운 지원책을 바랐던 것일까. 중국은행 등이 쌍용차에 준 크레디트라인은 상하이차가 반드시 보증을 서줘야 작동하는데, 지난 연말 방한한 장쯔웨이 상하이차그룹 부회장은 산업은행 관계자등에게 중국정부가 이를 허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존 대주주가 회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한국정부와 은행에만 손을 벌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산업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1월8일 열린 이사회에서 쌍용차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던 상하이차는 바로 다음날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나섰다”면서 “처음부터 자기 돈을 들여 회사를 살릴 마음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기술 유출’의 진실이다. 쌍용차는 노조원들이 지난해 12월17일 대주주인 상하이차 임직원 4명을 감금했다며 평택경찰서에 고소장을 낸 상태다. 노조는 당시 C200과 관련한 기술 유출을 빼내가려 한다는 ‘첩보’에 따라 상하이차 관계자들의 차량을 가로막았다. 그 자리에서 노조는 기술 유출과 관련한 특별한 증거를 새로 발견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쌍용차 관계자는 “상하이차 쪽은 자신들이 계열회사인 쌍용차의 기술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기술 유출 논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전에 기밀제공협약을 맺는 등의 방식으로 형식적 보완장치를 갖춘다”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연혁

쌍용자동차 연혁

지난해 12월15일 쌍용차 본사에서는 ‘AS12’라고 불리는 ‘C200의 중국향 공동개발’을 논의하기 위한 최고경영진 긴급회담이 열리고, 기밀제공협약도 맺어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두달여 전부터 쌍용차의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자 상하이차에 관련 프로젝트를 서둘러 요청한 상태였다. 쌍용차 관계자는 “당시 맺은 기술자문 계약에 따라 상하이차로부터 600억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회사 쪽에서 ‘기술 자문’ 또는 ‘공동 개발’이라고 부르는 프로젝트가 노조 등이 보기엔 쌍용차의 핵심 기술을 통째로 들어나가는 행태로 비친다는 점이다. 실제 공동 개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쌍용차의 C200 원가 정보와 협력업체 부품 개발비는 물론 각종 노하우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등을 망라해 상하이차에 제공하게 돼있다. 회사가 일정한 보상을 받았다지만, 유·무형의 핵심 자산을 팔아넘긴 대가치고는 너무 싸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법정관리도 상하이차엔 남는 장사

기술 유출과 관련한 또 하나의 핵심 이슈는 ‘디젤 하이브리드’와 관련돼 있다. 돌아보면 상하이차가 쌍용차 인수 직후인 2006년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후, 중국계 자본에 넘어간 기업들에서 잇따라 터져나온 기술 유출 논란은 이듬해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이 제정된 원인이 됐다. 그런데 지난해 7월 검찰은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평택 쌍용차 자동차종합기술연구소를 압수수색했다. 지금은 사실상 수사 결과가 나온 상태에서 발표만 미뤄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문제는 쌍용차가 가져간 디젤 하이브리드가 단순한 쌍용차의 기술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국책 과제라는 점이다. 상하이차 이사회는 검찰의 디젤 하이브리드 수사에 대해 여러 차례 불만을 표출해왔는데, 이는 그만큼 사태 해결의 까다로움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수수께끼의 이름은 ‘투자 불이행과 먹튀 논란’이다. 이는 쌍용차를 기술력이 낮고 시너지를 기대하기 힘든 중국 기업에 팔아넘겨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쌍용차 경영진은 매년 특별 노사 합의를 통해 생산설비 확충을 위한 4천억원 투자와 신차 및 새 엔진 개발, 영업 애프터서비스 네트워크 향상을 위해 2009년까지 매년 3천억원 안팎의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정명기 한남대 교수(경제학)는 “2007년 쌍용차의 신차 개발과 연구비 지출이 1291억원이었고, 2008년에는 1879억원에 그쳤다”며 “2006년 연구개발 총투자액은 총매출액의 3.9%였으나 2007년엔 2.9%로 그 비중이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투자 약속이 공염불이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쌍용차 홍보실 관계자는 “대주주인 상하이차와 쌍용차 경영진은 매년 매출의 6~7%를 연구개발에 투자했으며, 다만 경기 상황 등에 따라 해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다”고 반박했다. 한데 상하이차는 지난 연말 C200 기술개발자금 명목으로 600억원을 추가로 쌍용차에 지원하라는 산업은행의 권고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마지막 관문에서는 ‘법정관리 이후 쌍용차의 경쟁력 회복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만나게 된다.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은 “후진국에 제조기업을 시집보낼 때는 기술 유출을 피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면서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이른바 핵심 관계사로 키우기 위해 인수자금 5900억원을 썼을 리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상하이차는 쌍용차 인수를 통한 완성차 제조 기술에 관심이 컸고, 이걸 제대로 관철했다면 그들 방식으로 경영을 잘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쯔웨이 상하이차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12월26일 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과 쌍용차 회생 방안에 대한 논의를 마친 뒤 경기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빠져나오고 있다. 당시 임 차관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들어 정부가 쌍용차 문제에 직접개입하기 힘들다는 뜻을 밝혔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장쯔웨이 상하이차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12월26일 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과 쌍용차 회생 방안에 대한 논의를 마친 뒤 경기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빠져나오고 있다. 당시 임 차관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들어 정부가 쌍용차 문제에 직접개입하기 힘들다는 뜻을 밝혔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그렇다면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될지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법정관리를 신청한 까닭은 무엇일까.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상하이차는 그리 손해 볼 일은 없다.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입는 손실은 대주주(51.3% 보유) 지분 가치인 800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대출금과 전환사채(CB) 등 6500억원 규모의 쌍용차 부채에 대한 상환 의무는 사라진다. 2004년 10월 쌍용차 인수 이후 상하이차는 이 액수를 훨씬 웃도는 기술을 배워갔다. 상하이차 인수 뒤 쌍용차는 3대의 신차를 내놓았다. 차 1대당 연구개발비가 3천억원 정도인데, 상하이차가 중국형 카이런 생산기술 이전에 지급한 돈은 250억원에 그쳤다. 쌍용차를 앞세운 기술 개발은 여러모로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법정관리 이후에도 상하이차는 쌍용차와의 이른바 ‘공동 기술개발’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쌍용차 전 경영진이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낸 회사재산보전처분명령신청서를 보면, 이들은 쌍용차가 그동안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그룹과 차량 및 플랫폼 공동 개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고, 앞으로도 이런 시너지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지원료 수입 등 이익을 누려 (쌍용차) 회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쌍용차 노조는 “법정관리인에 상하이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현 경영진 중 1명인 박영태 기획재무담당 상무가 선임된 것은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국유화나 산업 재편 방안 필요”

지난 4년여 동안 상하이차그룹과 쌍용차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모를 밝히는 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 상하이차가 쌍용차에서 손을 뗀다고 쌍용차의 부활이 보장되는 것도 아닐 터다. 2005년 14만450대를 판매하는 등 2004년 이래 12만 대 수준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린 쌍용차는 지난해 판매량 9만2665대로 크게 주저앉은 상태다. 지난 1월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82% 감소한 1664대에 그쳤다. 정부는 쌍용차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되살아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수만 명의 쌍용차 및 부품사 종사자 가운데 상당수를 정리해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쌍용차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력 구조조정이 회생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현 노조집행부도 “비정규직을 아우른 총고용을 보장하면, 다른 임금·복지 조건의 후퇴를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고정비용을 줄이는 데에도 협력하겠다는 말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의 정종남 기획국장은 “쌍용차의 몰락의 가장 큰 책임은 중국 자본에 완성차 업체를 팔아먹은 당시 정부에 있다”면서 “정부가 전면 국유화하거나 지분율을 가지는 방안 등을 통해 성장을 위한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대형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해온 쌍용차는 그동안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단순히 구조조정을 논하기 보다는 빅2, 빅3 등 형태로 국내 자동차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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